논평_
국민의힘은 공영방송을 권력다툼 수렁으로 몰아넣지 마라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공영방송 독립성을 훼손하고 방송인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는 공영방송의 신뢰를 훼손시켜 장악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란 의구심을 사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4월 5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정권은 친정권 인사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MBC, KBS, YTN 등 공영, 준공영 방송을 정권의 홍보 나팔수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는 3월 16일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정방송감시단과 불공정방송국민감시단이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이번만큼 방송이 편파적이고 특정 캠프의 대변인, 스피커 역할을 한다는 느낌까지 든 적은 처음”이라며 공영방송 편파성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 발언은 기본 사실관계조차 틀렸다. 먼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영방송 사장으로 선임된 이들은 KBS 양승동‧김의철, MBC 최승호‧박성제, YTN 정찬형‧우장균 등이다.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해선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들이 친정권 인사라는 주장은 정파적 편견에 사로잡힌 근거 없는 망언일 뿐이다. 이들은 방송현업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전문성을 쌓았을 뿐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영방송 탄압에 맞서 저항한 양심적인 방송인들이다. 그럼에도 김 원내대표가 이들을 싸잡아 ‘낙하산 사장’으로 매도하는 것은 KBS, MBC, YTN 등 공영·준공영방송에서 방송인들의 정치적 독립 의지를 무력화시키고, 공영방송의 독립성 자체를 부정하기 위한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공영방송이 문재인 정부 들어 정권홍보 나팔수로 전락했다는 식의 거짓 언동은 차기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책동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방송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지배구조 개혁 등 핵심 논의는 뒤로 하고 고작 꺼낸 것이 ‘정권 나팔수’, ‘친정권 낙하산’ 등 구시대적 수사다. 이렇게 되면 공영방송 개혁은 물 건너가고, 공영방송은 또 다시 권력다툼 수렁으로 빠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런 불행한 역사를 경험한 바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국민의힘 계열 한나라당은 정권을 잡자마자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공영방송 장악에 사활을 걸었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언론사 주요 간부 정치성향을 파악하며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언론인 사찰로 물의를 빚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 들어설 정부가 현재 공영방송이 이전 정부 나팔수라고 여기는 한, 또 다시 방송장악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국민의힘은 방송장악이니 낙하산이니 운운할 자격조차 없다. 이명박 정권은 당시 KBS 사장에 배임 혐의를 걸어 강제 해임했고 정권 하수인을 MBC 사장으로 앉혀 간부진을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로 교체했다. 비판적인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은 폐지되거나 관련 아이템은 줄줄이 불방 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미디어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켜 거대 신문사들에 종합편성채널 개설을 허가해줬다. 그 결과, 보수성향에 기울어진 지금의 미디어 지형이 탄생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공영방송 사장 인사가 이어졌고, ‘세월호 보도개입’ 같은 언론통제가 자행되었다.
김 원내대표의 석연치 않은 공영방송 비난 발언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주변에 포진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언론장악에 관여한 인사들, 윤석열 당선자가 대선기간 보여준 편협하고 적대적인 언론관 등으로 미뤄볼 때 차기 정부가 또 다시 공영방송을 정권 손아귀에 두려고 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언론과 정치 모두 양극화되는 상황에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공영방송 역할 재정립과 시민참여를 통한 사정선임 등 지배구조 개편 논의는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차기 정부와 집권여당은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당장 멈춰라. 공영방송을 진정한 주인인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논의부터 시작할 것을 촉구한다.
2022년 4월 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