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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투위 결성 47주년 성명] 언론개혁국민운동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닙니다
등록 2022.03.0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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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은 1984년 12월 19일 창립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전신입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는 박정희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다 해직된 조선일보 해직기자들로 결성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와 동아일보·동아방송 언론인들로 결성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해직된 언론인들로 구성된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가 주축이 되었습니다. 3월 6일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결성된 지 47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언론민주화 정신을 함께하고자 47주년 성명을 싣습니다.

 

언론개혁국민운동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닙니다

 

‘언론의 길’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보수 언론의 행태가 국민들의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해도 너무 한다는 분노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공정성을 상실한 편파보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언론의 이런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많은 존경을 받는 종교계의 한 지도자도, 저명한 역사학자도 진영논리에 빠진 정파적 언론을 개탄한 바 있습니다. “사회현실에 대한 이성적, 개관적 진실과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여야 할 언론이 시민들에게 올바른 식별의 잣대를 제공하기보다는 진영논리를 증폭시키거나 편향되고 왜곡된 정보를 남발하여 시민들이 오리무중에 빠져 판단의 기준을 상실했다”(강우일 주교의 2021년 12월 17일자 칼럼) “사실을 비틀고 왜곡시키는 기사가 비일비재하며 이런 언론일수록 정파성을 노골화한다. 거짓 보도와 가짜뉴스는 오늘도 우리 공동체를 의도적으로 분열시키고 갈등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2020년 3월 13일자 칼럼). 모두가 지금의 ‘주류언론’이 저지르고 있는 폐해를 지적한 글입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길게 말할 것 없이 사실과 진실을 보도하는 것입니다. 이성의 힘을 가지고 냉정하게, 편견 없이,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언론이 비난받는 것은 언론이 이런 보편적인 원칙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선 보도에서 드러났듯이 ‘주류언론’을 자처하는 보수 언론들은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위해 편파 보도를 거리낌 없이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극우 언론사인 조선일보입니다. 정치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그것을 더 높은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바로잡아 주어야 할 책임이 언론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문은 그런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 ‘언론’의 이름으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언론사인지 또 다른 형태의 정치집단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언론사가 ‘언론’을 포기하고 자신의 특권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말입니다. 이 신문은 “이제 야당이 대통령.여당 복 누릴 때가 되었다”는 제목의 칼럼(2021년 5월 29일자 사내 고위 간부의 글)을 실은 바 있습니다. 한 신문이 특정 정당과 후보를 이렇게 공공연하게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 칼럼 제목의 취지대로 이 신문은 선거운동에 가까운 편파적 보도와 주장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언론이 허위보도나 정파적 보도로 선거에 임하는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착오를 일으키게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거짓보도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선거 자체를 해치는 행위가 됩니다. 민주주의와 나라를 해치는 범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대한 행사라면 언론 또한 그 중요성에 걸맞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후보들이 미래의 우리나라와 국민들을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는지, 그들이 보여주려는 5년 후의 우리나라와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그런 비전을 갖게 하고 그 비전을 밀고 가는 철학은 무엇인지, 제시한 정책들은 올바르고 타당하며 실현 가능한 것인지, 네거티브 스캔들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후보가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등 언론이 철저하게 묻고 검증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선거 보도의 중심이 돼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은 철저한 팩트 체크와 논리적 분석보다는 네거티브 스캔들을 증폭시키는데 열을 올려왔습니다. 언론이 진작부터 정책 중심으로 선거를 다루고 검증 작업을 충실하게 했던들 우리 국민들이 지금 같은 혼란에 빠져 있진 않을 겁니다.


한국의 ‘주류언론’, 특히 극우보수언론은 이밖에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변함없이 계속되는 반민중적 태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민중은 국민들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보통사람들’입니다. 사실상 우리 국민의 주체나 다름없기에 이들의 처지를 살피고 보호하며 이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임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세금문제에서 보았듯이 이들 언론은 절망에 빠져 있는 집 없는 다수 시민들의 처지가 아니라 소수 기득권자들의 입장에 섰습니다. 김용균씨 이후 여러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잇달아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있는데도 이들은 경영자들의 말을 빌려 중대재해법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합니다. 안전의무를 소홀히 해 사망사고를 낸 기업주가 처벌받는 것은 안타깝고 일하다가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 것은 괜찮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이런 반민중적 입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과거 전태일 분신사건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똥물을 뒤집어쓰고 절규하는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동일방직 사건 등 수많은 노동인권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문제도 그렇습니다. 반세기 이상에 걸친 남․북 적대관계 속에서 서로 증오를 키워가며 나라와 민족의 에너지를 무한정 소모하다가 그 무모함을 깨닫고 마침내 도달한 것이 ‘한반도의 평화’입니다. ‘평화’가 올바른 시대정신이란 것을 깨닫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통과 비용을 지불하면서 멀고 험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극우보수언론은 이렇게 얻은 ‘평화’에 적대적입니다. 안보를 튼튼히 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과 남북 간에 적대관계를 조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남북관계는 적대관계여야 한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긴장과 적의와 증오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역사 인식도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큰 죄를 짓고도 한 번도 반성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엔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박정희 유신독재를 옹호하며, 살인자 전두환을 찬양한 것이 이들입니다. 과거의 과오를 망각하거나 반성할 줄 모르면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배신행위가 지금도 거듭되고 있습니다. 일제하 강제징용 배상문제에서 보듯이 지금도 한일 간에 ‘역사전쟁’이 진행 중인데, 이들은 지난 역사를 바로잡아 정의를 세워보려는 우리의 노력을 ‘반일 죽창가’를 부르는 것이라 조롱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언론은 저널리즘의 고귀한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한국의 언론엔 고결한 영혼(혼)이 없습니다. ‘상업주의’가 그 ‘혼’인가요? 지금 한국의 언론에 냉엄한 이성과 지성이 작동하고 있나요? 언론의 가치를 ‘신성한’ 것으로 받들며, 사실과 진실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진짜로 알고 있나요? 언론을 존엄한 것으로 알고 그 자존과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나요? 오늘의, 미래의 올바른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찾아보려고 진지하게 노력해본 적이 있나요? 지금 누리는 언론자유가 어떻게 얻어진 것인가를 알고, 자유를 누리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이런 언론이 아닙니다.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권력을 지키고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고귀한 언론을 더럽히면서 진흙탕 속에서 추하게 싸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입니다. 21세기 대명천지를 맞은 지 오래인데도 이들은 변함없이 반세기 전의 어둡고 음산한 극우 이데올로기로 세상을 보며 언론을 만들고 있습니다. 극우에 폭력성이 더해지면 파시즘이 됩니다. 언론 폭력 또한 큰 폭력이어서 폭력적인 극우 언론을 가리켜 사람들은 ‘파시즘 언론’, 또는 ‘파시스트 언론’이라고 부릅니다. 극우언론이 나라와 사회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무지개를 보려면 하늘을 보아야 하는데, 이들은 계속 땅을 보라고 말합니다.


이제 이런 언론을 바로잡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론계 내부에서 스스로 개혁운동, 자정운동이 일어나 바른 언론, 새로운 언론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반세기 가까이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언론이 스스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국민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의 진정한 주인은 언론 소비자인 국민입니다. 언론 소비자 없이 언론이 어떻게 존립할 수 있나요?


언론은 우리의 영혼, 우리의 정신이 먹는 음식입니다. 독이 든 음식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불량식품은 거부하면서 왜 불량언론을 거부하지 않나요? 우리가 정신건강을 지키길 원한다면 불량언론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나쁜 언론, 악한 언론의 힘을 박탈해야 합니다. 언론개혁이 우리 시대의 가장 중대하고 시급한 국민적 과제로 등장해 있습니다. 뜻있는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국민운동 차원의 언론개혁 운동이 ‘지체 없이’ 전개돼야 합니다. 우리는 언론에 의해 지금까지 막심한 피해를 입어 왔습니다. 언론개혁을 미루면 머지않아 더 큰 재앙을 맞게 될 것입니다.


2022년 3월 4일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