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호반건설은 서울신문 독립성 침해하는 부당간섭을 즉각 중단하라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일간지 서울신문의 편집권이 위협받고 있다. 1904년 독립운동가들이 항일구국 기치를 내걸고 창간한 대한매일신보 후신인 서울신문 118년 역사에서 대주주 비판기사가 일괄 삭제되는 ‘사변’이 일어났다. 일제 한일병탄 이후 총독부 강압으로 제호가 변경되고 식민지 치하 기관지로 전락하거나 정부 대변지였던 과거는 있으나 이유 없이 기사를 대량 삭제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서울신문은 1월 16일 편집국 부장단 회의에서 2019년 연속보도한 호반그룹 검증 기획기사 50여 건을 삭제하기로 결정하고, 다음날 홈페이지와 포털에서 모두 내렸다. 호반건설이 2019년 포스코 지분 19.4%를 매입한 데 이어 지난해 9월 우리사주조합 지분 29%까지 사들여 서울신문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편집권을 좌지우지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결국 현실화된 것이다.
호반건설은 우리사주조합과 대주주 협상을 하며 편집권 독립을 약속했지만, 곧장 무용지물이 됐다. 호반건설이 대주주로 등극한 지 2개월도 안 된 지난해 11월 서울신문은 호반건설 비판 기사 말미에 넣은 제보 안내 문구를 뺐고, 12월엔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카테고리를 삭제했다. 지난해 10월 “편집권은 걱정하지 말라. 책임지고 막겠다”던 황수정 신임 편집국장은 이젠 기사 삭제가 “편집권 부분이 아니”라거나 “상생을 위한 판단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편집국장 자격조차 없는 언어도단이다.
독립언론을 향한 서울신문의 여정은 기나긴 세월을 거쳤다. 1998년 치욕의 과거를 단절하고 정도(正道) 언론으로 돌아가겠다며 ‘서울신문사 뿌리되찾기 위원회’를 구성해 창간 시절 제호인 ‘대한매일’로 바꾸는 등 탈바꿈을 시도했다. 2000년엔 노조 활약으로 편집국장 직선제를 이뤄내기도 했다. 2001년엔 이승만 정권 시절 정부 기관지로 편입된 이후 반세기 넘게 관영신문 신세를 면치 못하다 우리사주조합이 1대 주주가 되면서 민영화 단초를 마련한 바 있다.
정부나 공기업 등이 언론사 지분을 보유한 공영적 소유구조는 과거와 달리 긍정적 효과도 있다. 족벌·재벌 등 자본의 지배와 부당한 개입으로부터 미디어 공공성, 공익성을 지켜내는 방패막이 되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서울신문의 독립성 보장을 약속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9년 사실상 정부 소유인 포스코 지분 매각을 시작으로 서울신문의 공영적 소유구조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적 자본이 투입된 공영적 소유구조 언론사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지분 매각은 어떤 이유로든 자본의 손에 언론을 넘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이번 사건 역시 언론의 공영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대책도 없이 지분 매각부터 추진한 정부에 그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서울신문 구성원들의 책임 역시 무겁다. 사원주주형 소유구조를 이뤄내기 위해 20여 년 넘게 고군분투한 노력이 왜 좌절됐는지 서울신문 구성원 스스로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언론의 온전한 독립은 쉽지 않은 과제다. 구성원들의 뼈를 깎는 헌신과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서울신문 기자들은 대주주 호반건설 비판 보도 일괄 삭제에 기수별로 성명을 내며 편집권 침해를 강력 규탄하고 있다. 대표적인 언론현업단체인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기자협회도 대주주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편집권, 저널리즘 원칙을 잃어버린 경영진, 편집국장에 대한 실망감, 기자로서 상실된 자존감은 서울신문을 넘어 기자 사회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일갈했다.
우리는 기자 정신과 저널리즘 본령을 지키려는 양심적 언론인들에게서 한국 언론이 살아있다는 희망을 본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자본의 손아귀에서 언론의 독립성과 편집권을 지켜내려는 언론인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하며 연대할 것이다. 또한 언론을 대주주의 소유물로 여기는 호반건설에 엄중 경고한다. 서울신문은 공익을 위해 치열하게 취재하는 기자들과 열독으로 응원하는 시민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호반건설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부당한 간섭을 당장 중단하고, 서울신문이 공영언론으로서 역할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하라.
2022년 1월 2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