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방송사 ‘위험한’ 연말 시상식은 멈춰야 한다연일 방역단계 격상 촉구하면서 대규모 시상식 강행이라니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닷새 연속 1천 명을 넘으며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으로 고비 극복에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언론도 일제히 방역단계를 격상해야 한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연일 ‘확진자 역대 최다’ 등을 보도하며 방역비상을 강조하고 있는 방송사들이 정작 자신들은 방역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공연‧방송출연 등은 마스크 의무화 예외상황이라는 이유로 ‘노마스크’ 방송을 지속하며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하더니 지상파방송 3사는 다수 연예인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벌이는 연말 시상식을 강행하고 나섰다.
12월 18일 KBS가 <가요대축제>를 열었고, 이튿날 SBS도 <연예대상>을 진행했다. 지상파방송 3사는 오는 31일까지 예정된 연기대상, 연예대상, 가요대전 등 각종 시상식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급기야 서울시가 12월 21일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행정명령까지 발표했지만, 방송은 집합금지 적용예외를 빌미로 시상식 개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시상팔’ ‘얼굴마스크’, 코로나 웃음거리 만든 SBS
지상파방송 3사의 시상식 강행이 우려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방송‧연예계에서도 연이어 확진자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KBS <가요대축제>가 열리기 하루 전인 12월 17일엔 남성 아이돌그룹 골든차일드 멤버 1인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해당 그룹과 같은 미용실을 사용하는 아이돌그룹들이 검사를 받았다. 이밖에도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여성 아이돌 가수가 다른 가수들과 모임을 한 사실이 알려져 해당 가수들이 잇따라 검사를 받기도 했다. MBC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6개 프로그램의 방송이 중단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가 연말 시상식을 강행할 경우 감염병 확산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폐쇄된 공간에서 많은 연예인이 참석하는 시상식과 가요제는 밀접접촉이 불가피하다. 다수 인물이 단시간에 같은 공간을 지나가는 레드카펫 행사, 상을 주고받는 행위 등도 감염병 확산에 취약한 구조다. 그런데도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로 무마하고 있다.
12월 19일 SBS <연예대상>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의식했는지 긴 막대기를 이용해 상패를 전달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하지만 이날 시상식은 가장 기본적인 방역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출연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다닥다닥 붙어 앉았고, 수상소감을 말하면서는 마스크를 벗고 여러 명이 하나의 마이크를 공유해 사용했다. 결국 SBS는 우스꽝스러운 ‘시상팔’, 코로나19 시대에 걸맞은 특수제작 마스크라고 홍보한 ‘얼굴마스크’ 등으로 방역수칙 준수를 보여주기에 이용했고, 엄중한 코로나 시국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해외는 축소하는 시상식, 한국 방송사는 왜 고집하나
지상파방송 3사 연말 시상식 강행은 해외 시상식과 비교할 때 더 두드러진다. 미국 방송계 시상식인 에미상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올해 행사를 온라인 위주로 바꿔 진행했다. 각 부문 후보들은 자택에서 온라인으로 참석했고, 수상자 이름이 담긴 봉투를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도 올해 노벨상 시상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수상자가 시상식 장소에 가지 않고, 상을 받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세계의 권위 있는 시상식들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앞다퉈 시상식을 간소화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 방송사만 감염병 확산의 위험을 안고 시상식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말 시상식에 집중된 막대한 광고수익 때문일 것이다. 다수 연예인이 출연하고, 축하공연과 수상자 발표 등 시청률이 집중되는 연말 시상식은 많은 광고가 몰리는 프로그램이다.
SBS 미디어렙 자회사 SBS M&C가 발행한 올해 12월호 <CRE@M>은 자사 연말 시상식이 타사보다 시청률이 높다며 광고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SBS M&C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연예대상> 시상식 1부의 15초 광고단가는 1,350만 원, 2부 광고단가는 1,500만 원이었다. 지상파방송 3사의 시상식 강행이 광고수익 창출 때문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는 지난 8월 광화문집회가 코로나19 전국 집단감염 재확산의 기폭제가 되었을 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국민일보 등 주요 신문이 총 42회에 걸쳐 해당 집회 광고를 대대적으로 실어 주최측 확성기 역할을 하며 방역위기를 초래한 뼈아픈 경험을 했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상황에서는 언론보도뿐 아니라 광고가 미치는 영향도 이렇게 클 진데, 하물며 대중적 영향력과 전파력이 강한 방송프로그램의 역할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방역에 무책임한 방송의 모습은 어린이, 청소년, 노인층 시청자의 코로나 경각심을 무디게 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시민들과 의료진은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재난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할 지상파방송 3사가 광고수익을 위해 코로나19 확산 속 연말 시상식을 강행한다면 언론의 신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정부에게만 과감한 결단을 촉구할 때가 아니다. 이제라도 방송사의 ‘위험한’ 연말 시상식은 멈춰야 한다.
2020년 12월 2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