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박원순 시장 사망 사건’ 언론은 취재·보도에서 기본을 지켜라
등록 2020.07.1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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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생중계에서 자살방법·시신훼손상태 묻는 기자들

경찰 수색 중 쏟아진 사망 오보, 근거 없는 추측보도

‘세월호 참사’ 당시 잔인한 질문을 벌써 잊었는가

한국 언론은 왜 ‘기레기’로 불리는지 다시 성찰하라

 

“사안을 좀 더 조사하셔야 되겠지만 목을 맨 건가요, 떨어진 건가요?”

“휴대폰하고 소지품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랬는데 외모가 심하게 손상됐나요, 그러면?”

“그러니까 외모를 확인할 수 있었나요? 소지품 말고 외모를 확인할 수 있었나요?”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10일 새벽 2시 경찰의 현장브리핑에서 나온 기자들(일부 유튜버 포함)의 질문이다. 브리핑을 담당한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이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고려해서 확인해 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고인이 사망에 이른 방법과 시신훼손 상태가 전국으로 생중계될 뻔한 기막힌 순간을 우리는 목도했다.

 

현장브리핑 영상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기자들의 몰상식한 질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찰이 브리핑을 시작하며 시신발견 장소를 공표했지만 기자들은 “발견장소는 어디냐고” 계속 되물었으며, “성곽높이는 어떻게 되느냐” “대략적으로 3m 이상이냐” 등 불필요한 질문을 반복했다. 이날 브리핑 현장에 모인 사람들이 취재윤리를 배운 기자들이 맞는지 의심하게 하는 ‘잔인한’ 질문과 상식 이하 취재태도는 한국 언론의 현 수준을 그대로 보여줬다.

 

‘박원순 사망’ 오보냈다가 삭제한 월간조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갑작스런 박 시장의 죽음과 관련해 언론의 취재 및 보도경쟁이 뜨거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박 시장의 죽음이 확인되지도 않았고, 경찰 수색이 한창 진행 중인 9일 저녁에 일부 언론은 ‘박원순 시장 사망보도’를 쏟아냈고, 근거 없는 섣부른 추측보도가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월간조선 인터넷판에서는 오후 6시 45분경 “[속보] 박원순 시장 시신 발견, 성균관대 부근에서 발견”이라고 보도했다가 스스로 삭제했다. 사망 오보는 로톡뉴스, 투데이코리아, 충청리뷰, 서울일보, 뉴스에듀신문, 브레이크뉴스, YBS뉴스통신, 동양뉴스 등에서 계속 나왔고 인터넷매체 펜앤드마이크는 유튜브 라이브방송을 통해 “[속보] 박원순 시신 성대 후문 와룡공원 근처서 발견”이라는 자막을 띄우며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내보냈다.

 

공익적 목적에서 벗어난 질문 왜 던지나

언론의 무분별한 사망 의혹 보도는 확인된 사실을 근거로 기사를 써야 하는 ‘사실보도 원칙’에 위배되며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되어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기 때문에 위험하다. 고인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 고소 건이 있는 이번 사건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특히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 모방·추종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더욱 신중해야 한다. 전국으로 생중계된 현장브리핑에서 기자들이 던진 몰상식한 ‘나쁜’ 질문은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 금지하는 내용이자 어떤 공익적 목적도 없다.

 

한국기자협회가 보건복지부 등과 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따르면 “자살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거나 묘사하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살에 관한 정보나 암시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범죄사건을 다루듯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한 “고인의 인격을 침해하거나 비밀을 노출하는 보도는 고인과 유가족의 법적 권익을 해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기자들이 살아남은 학생들이나 실종자 가족에게 던진 잔인한 질문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기자들은 간신히 세월호를 빠져나온 생존자들에게 무턱대고 마이크를 들이밀어 심경을 물었고, 병실까지 따라 들어가 취재경쟁을 벌였다. 참사 첫날부터 보험금을 계산했으며, 희생자들의 책상을 뒤져 물품 등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고도 ‘안산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를 비롯해 ‘아니면 말고’식 오보가 속출했다.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한국 언론의 무의미한 특종 및 속보경쟁 관행이 낳은 씁쓸한 단면이다. 그때부터 국민들은 기본적인 취재윤리도 지키지 않고, 허위사실과 선정적 과장보도로 저널리즘 수준을 떨어뜨리는 기자들을 ‘기레기’로 부르기 시작했다.

 

박원순 시장 사망 사건 보도를 보면서 다시금 한국 언론에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기자들은 왜 ‘기레기’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가. 국민 5명 중 4명이 불신한다는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왜 세계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가. 지금처럼 취재윤리 기본도 지키지 않고, 저급한 취재행위가 되풀이된다면 바닥까지 떨어진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복구될 수 없다. 한국 언론에 최소한의 품격이라도 남아 있길 기대한다.


2020년 7월 1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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