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최초의 ‘보도 개입’ 유죄 판결, 언론 개혁 시금석 삼자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이 단지 선언적 가치가 아니라, 현실에서 보장하기 위해 원칙을 못 박아야할 생동하는 가치임을 증명한 판결이 나왔다. 1월 16일,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서 KBS 보도와 편성에 개입해 방송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던 이정현 의원의 벌금 1,000만원 형을 확정했다.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방송법 4조 2항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1987년 이 조항이 제정된 이래 첫 유죄 판결이다. 전두환 군부 독재의 보도지침 등 언론이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제정됐던 법이 32년 만에야 처음으로 살아있는 법으로 인정된 역사적 판례다. 이로써 언론을 악용하고자 했던 정치권력의 관행을 철폐할 결정적 계기를 마련됐다. 또한 이 판결로부터 우리가 상기해야 하는 더 중대한 의미도 있다. 언론 개혁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현재, 언론은 이렇게 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스스로 과연 잘 지키고 있느냐는 본질적인 물음이다. 방송법 4조 2항과 헌법 등 우리 법체계는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특유의 민주주의적 책무를 위해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적인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 권리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수익과 생존을 위해, 또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번 판결을 발판 삼아 언론계도 성찰해야 한다.
박근혜 청와대의 ‘보도 개입’, 당시 KBS도 손뼉 맞췄다
이정현 의원이 KBS에 불법적 압력을 가했던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박근혜 정부에 장악됐던 KBS도 공범이나 다름 없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21일과 30일,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김시곤 당시 KBS보도국장에 전화를 해 그날 세월호 관련 해경 비판 보도가 많았다면서 “내용을 바꿔달라”, “다시 녹음해 만들어 달라”, “뉴스 편집에서 빼 달라”, “10일 후에 어느 정도 정리된 뒤에 (보도)하라”라고 고성을 질러대며 압박했다. KBS보도국장은 이에 당혹해하면서도 “아니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했는데 여기에는 많은 함의가 있다. 청와대가 KBS뿐 아니라 다른 언론에도 보도 압력을 가했으며 KBS가 그 중 ‘많이 도와준 데’였을 가능성이다.
실제로 KBS는 이정현 의원의 세월호 참사 보도 개입에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 보고서를 보면,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이 전화를 건 2014년 4월 21일과 30일은 KBS가 실제로 정부․해경 비판 보도를 각각 8건, 11건으로 비교적 많이 낸 날이었다. KBS의 정부․해경 비판 보도량은 통화 이전 평균 4.6건에서 통화 이후 3.3건으로 감소했다.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덮어버렸던 유병언 관련 보도는 통화가 이뤄진 4월 21일부터 KBS에서 폭증하기도 했다. 21일 첫 전화 이후 일주일간 KBS의 유병언 관련 보도량은 34건으로, 세월호 참사 당일(4/16)부터 5월 8일까지의 기간 중 유병언 보도량의 74%가 이 때 집중되었다. 공영방송 KBS가 청와대의 보도 개입에 순순히 따랐던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정황들이다.
‘보도 개입’ 불법으로 못 박은 판결, 만시지탄이다
이같은 권력의 보도 개입과 방송 편성 개입은 사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일상이었다. 김시곤 당시 KBS보도국장은 이정현 의원과의 통화한 지 한 달만에 직을 던졌고 그 후 세월호 보도 개입은 물론, 박근혜 정부 당시 길환영 KBS사장을 통해 지시가 내려왔던 부당한 보도 개입 사례들도 폭로했다. 대통령 동정 및 홍보 보도를 우선시하고 정부 비판 보도는 축소하라는 지시가 대부분이었다. 이를 충실히 따라 일선 기자들에게 지시한 길환영 KBS사장을 비롯, 정권에 부역한 KBS 내부자들이 박자를 맞췄기에 이전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과 보도․편성 개입도 가능했던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KBS․MBC에 자행한 인사 개입과 노조 탄압, 비판적 프로그램의 대거 폐지는 모두 정부 인사들의 지시나 압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이를 고려하면 방송 보도․편성 개입을 금한 방송법 조항으로 유죄를 인정한 첫 사례가 이 시점에서야 나온 것은 만시지탄에 가깝다. 방송을 장악해 친정부적 목소리만 내도록 만들어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방송법을 위반한 정치권 및 방송계 인사들이 아직까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송사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에 행동대장 역할을 했던 국정원, 정부의 입맛에 맞게 노조원들을 해고하고 비판적 프로그램을 폐지했던 공영방송의 경영진 중 그 누구도 방송법으로 처벌받은 바 없다. 김장겸 전 MBC 사장 등 일부 경영진만 부당노동행위, 노조활동 방해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추후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권력의 모든 압력과 언론계 내부의 ‘부역’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언론 내부에서 외부와 유착하여 ‘보도․편성 개입’을 직접 집행한 이들도 방송법으로 처벌해야 한다. 이번 판결이 그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방송 독립’의 가치, 언론인들 모두가 되새기길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치권력의 보도․편성 개입을 방송법 위반, 즉 범죄로 규정한 판결이 나온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형량을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에서 벌금 1,000만 원으로 감형하면서 “실제 방송 편성에 영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관행으로 생각해 범행에 대한 인식 부족”을 참작해준 것은 불필요했다. 앞서 살펴봤듯이 이정현 의원의 보도 개입이 실제로 이행됐음을 보여주는 모니터링 결과가 있으며, ‘보도․편성 개입’을 ‘관행’으로 만든 ‘보도지침’의 역사를 방지한다는 것이 방송법 4조 2항의 입법 취지였기 때문이다.
판결을 이보다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개혁의 시금석으로 삼아야할 주체는 단연 KBS를 비롯한 언론인들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판결 직후 성명을 발표하며 “경영진과 이사회도 법이 보장한 ‘방송 독립’의 소중한 가치를,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엄중하게 인식하길 바란다”고 밝혔는데, 비단 경영진과 이사회만 ‘방송 독립’의 가치를 되새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 정부에서 ‘방송 독립’을 깨뜨린 경영진의 수족이된 KBS 구성원들도 많았다. 방송의 독립을 지키기는커녕 굴복하거나 적극적으로 권력에 부역했던 언론인들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언론인들 역시 이번 판결을 성찰과 개혁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2020년 1월 1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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