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MBN의 ‘자본금 차명거래 의혹’, 방통위는 주체적으로 나서라
등록 2019.09.23 13:33
조회 5322

한상혁 신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허위조작정보 대책 마련’을 내놓고 ‘방송통신이용자 권익 증진을 위한 소비자단체 대표자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으나 당장 더 시급한 현안이 있다. 바로 종합편성채널 MBN의 자본금 차명대출 및 재무제표 허위 작성 의혹이다.

 

지난달 26일과 27일에 걸쳐 경향신문, 한겨레의 보도로 MBN이 2011년 12월 종편 출범 당시 필수 요건이었던 최소 자본금 3000억 원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은행으로부터 600여 억 원을 대출 받아 이를 직원 및 계열사에 다시 빌려주고 직원 및 계열사가 그 돈으로 MBN 주식을 매입한 정황이 알려졌다. 회사가 우회적으로 자기 주식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2017년이 되어서야 재무제표에 기록하기 시작해 은폐 의혹도 강하게 일고 있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명백히 부정한 방법으로 종편 승인을 얻은 것이기 때문에 방송법‧금융실명제법 등 위반으로 승인 취소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출범 당시부터 특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종편 방송사가 승인요건을 충족시키는 과정마저 불법적이었다는 정황이 무려 10년이 지나서야 알려진 것이다. 여기에는 유관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와 금융당국의 과실이 크다. 2013년과 2014년, 김상조 당시 한성대 교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이끈 ‘종편승인검증TF’가 MBN의 주주 구성을 분석해 차명 거래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당시 방통위는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MBN은 ‘차명거래 방식’을 유지한 채 2014년과 2017년 종편 재승인 심사를 통과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방통위는 올해 1월이 되어서야 사태를 인지하고 진상조사를 시작했고 <MBN 종편 승인 시 자본금 차명대출 관련 보고> 문건까지 작성했으나 역시 지난달 말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공론화하지 않았다. 최소한 불법 행위를 은폐했고, 나아가 MBN을 감싸준 것은 아닌지 책임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2017년 9월부터 재임한 최흥식 전 원장 시절 이미 MBN의 분식회계 혐의를 포착하고도 최근까지 조사를 미뤘던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9일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산하 감리위원회에 MBN 사태 안건을 보고하면서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 등 연루된 전현직 경영진의 해임 권고 및 검찰 고발을 건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해 2차 회의를 예정하고 있다. 이 안건이 감리위에서 의결되더라도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 최종 확정되기까지 최소 수 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검찰이 수사를 해도 판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방통위가 과거 여타 논란들처럼 금융당국이나 사법부의 판단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린다면 종편을 포함한 언론 개혁은 재차 유예될 수밖에 없다.

 

차명거래를 통한 편법적 종편 승인이 알려지자 MBN은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주주로 참여한 것’이라며 의혹을 부인했고 “차명이란 용어로 내용을 호도하거나 악의적으로 기사를 보도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스스로가 언론이면서 언론 보도를 협박한 이러한 과민반응은 방통위가 더 적극적으로 조사해야 할 필요성을 반증한다. 금융감독원역시 MBN의 해명을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MBN 및 계열사 직원 10여 명이 사측으로부터 각각 30~50억 원씩 빌려 MBN 주식을 취득했고 이 경우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월 이자만 수 천 만원에 이르기 때문에 언론사 직원으로서는 ‘자발적으로 대출을 받아 회사 주식을 샀다’는 주장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MBN이 금융당국에 제출한 대출 약정서에는 이자율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주식을 샀다는 직원들이 자필로 쓴 서류도 없었으며 대출이 이뤄진 2011년이 아닌 2012년에 이사 간 주소가 기재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MBN의 차명거래 의혹과 정황은 더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상혁 신임 방통위원장은 지난달 청문회에서 “(MBN 관련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도를 살펴봐야겠으나 (승인 취소)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고 엄밀한 조사를 약속했다. 더불어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제기한 ‘방통위 내부 감사 필요성’도 부인하지 않았다. 언론개혁은 법과 원칙을 엄정히 집행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며, 금융당국에 의해 불법 차명거래 정황이 드러난 MBN에 대한 조사 및 조처는 개혁의지의 시금석이다.

 

방송계의 직접적인 관리‧감독 기관으로서 방통위는 조사권을 핑계로 금융당국의 판단을 마냥 기다릴 일이 아니다. 명백한 위법 정황을 보고도 주체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직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며 불법적 상태가 지속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신임 위원장이 약속한대로 방통위는 MBN이 출범부터 불법으로 얼룩졌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법에 따라 승인 취소를 포함한 엄격한 조처를 취함으로써 잘못된 관행과 불법의 적폐를 청산하는 개혁의 시발점으로 삼길 바란다.

<끝>

 

2019년 9월 23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comment_20190923_041.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