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TV조선은 ‘노환중 문건’ 부적법한 입수 사과하고 취재윤리 재고하라TV조선이 ‘국민적 관심사’, ‘공익’이라는 이유로 위법적 취재를 감행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TV조선은 지난달 27일 <단독/“대통령 주치의 선정에 깊은 역할” 문건 발견>(8/27 하동원 기자)에서 “오늘 압수수색을 받은 노환중 부산의료원장 방에서 매우 의미 있는 문건이 하나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노환중 부산의료원장은 조국 후보자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지도교수였으며, 그에게 장학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TV조선은 “검찰은 노 원장이 쓰던 컴퓨터에서 이메일과 문서 등을 확보했습니다”라더니 “이 가운데 한 문서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치의가 양산부산대병원 소속 A교수가 되는데 (자신이) 깊은 일역을 담당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라고 전했다. 또한 TV조선은 “‘노무현 대통령 퇴임과 동시에 봉하마을의 건강관리에 10년 동안 헌신했고, 최근 4년간은 권양숙 여사와 가족들의 건강관리도 했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노 원장이 지난 7월, 오거돈 부산시장을 면담하기 직전에 이 문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등의 내용을 덧붙였다.
문제는 TV조선에서 보도한 시점이 노환중 부산의료원장실을 압수수색한 검찰 압수 수색팀이 서울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온 것이며, 이 내용은 사건 당사자 또는 압수수색을 진행한 수사 기관만이 알 수 있었던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이 여론 재판을 위해 의도적으로 수사 기밀을 TV조선에 흘린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등 파문이 커졌다.
TV조선은 여론몰이를 위해 압수수색 대상인 개인 컴퓨터까지 무단으로 뒤지나
그러자 며칠 후 TV조선은 자사 홈페이지에 <알려드립니다>(8/30)를 띄워 취재 경위와 보도 이유를 설명했다. TV조선은 “당일 검찰의 부산의료원 압수수색이 종료된 뒤, 부산의료원 측의 허가를 받아 해당 사무실에 들어가 다수의 타사 기자들과 함께 켜져 있는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보도된 내용이 담긴 문건을 확인했습니다. TV조선은 이번 사안이 국민적 관심사이고 공익을 위해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라고 밝혔다. 검찰 또한 TV조선이 자체적으로 보도한 사안이고 검찰이 수사 자료를 흘리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즉, TV조선 스스로 압수수색 현장에 들어가 타인의 컴퓨터를 뒤졌다는 것은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적법하게 원장실로 들어가 취재했다는 TV조선의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 압수수색을 마친 원장실 촬영을 허가한 것 뿐이지, 타인의 컴퓨터 자료를 뒤지는 것까진 허락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산일보 <노환중 부산의료원장, ‘대통령 주치의’ 선정에 개입했나>(8/28)는 “해당 문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부산의료원은 무척 당혹스러워하고 있으며”, “특히 의료원 측은 27일 검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취재진이 원장실에서 해당 자료를 빼돌렸는지 기자들에게 연락해 확인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오마이뉴스 <‘조국수사’ 피의사실 공표? “TV조선 기자가 마우스 잡더라”>(9/2)에도 당시 부산의료원은 압수수색을 마친 노 원장 집무실 상황을 촬영하겠다는 취재진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만 나온다. 내부를 ‘수색’하라고 허가한 적은 없는 셈이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던 타사 기자들은 “TV조선 기자가 마우스를 잡더라”, “저는 못 들었는데, 문서파일을 열려는 모습을 본 타사 기자가 ‘하지 말라’고 말렸다더라”고 증언했다. 당시 집무실에는 부산의료원 관계자는 없었고 기자들만 남아있었고, TV조선 기자는 마우스를 움직여 문서 파일을 열고, 내용을 확인한 뒤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까지 찍었다고 한다.
취재과정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라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은 ‘기자에게는 다른 어떤 직종의 종사자들보다도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며 기자들이 지켜야 할 행동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네 번째 ‘정당한 정보수집’ 항목에서는 ‘우리는 취재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TV조선의 모회사인 조선일보의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에도 제1장 취재단계의 제1조 불법적 취재 금지 ③항으로 “녹음과 촬영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취재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라고 볼 수 있을까? 먼저 정보통신망법 제49조에서는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에 의하여 처리·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도용 또는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적고 있다. 법원은 ‘정보통신망에 의하여 처리, 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비밀’에는 정보통신망으로 실시간 처리, 전송 중인 비밀뿐만 아니라 나아가 정보통신망으로 처리, 전송이 완료돼 원격지 서버에 저장된 것, 더불어 정보통신체제 내에서 저장, 보관 중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도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타인의 비밀’이란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로서,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노환중 원장 방 컴퓨터에 있던 문서자료는 정보통신망법에서 규정하는 ‘타인의 비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하는지, 열람하여 보도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는지를 논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타인의 개인용 컴퓨터에 접근하여 문서를 무단으로 열람하고 이를 촬영, 유출하는 것은 범죄적 행위인 것이다.
아무리 취재라고 할지라도 주거 공간, 개인의 휴식 공간, 개인의 업무 공간 등은 관계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 없이는 기자의 출입이 금지된다. 출입과 취재는 관계자의 동의를 받았다하더라도 개인의 컴퓨터를 열람한 행위는 동의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한 언론사 기자가 취재를 위해 수사검사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에 보관된 문서를 프린트하다 발각돼 구속된 일이 있다. 1998년 국민일보 기자가 대구대 비리사건 취재를 위해 서울지검 동부지청 수사검사 사무실에 들어가 참고인 진술조서를 프린트했고, 이를 출근한 검사에게 들켰다. 담당 검사는 해당 기자를 절도 미수 및 건조물 침입혐의로 구속했다가 국민일보와 언론노조 등이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처사’라고 항의하자 풀어주었다.
TV조선은 얼마 전에도 비슷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해 드루킹 사건 당시 TV조선 기자가 USB 등을 절도했다가 불기소 처분된 바 있다. 당시 TV조선 기자는 드루킹이 운영하던 출판사에 들어가 무단으로 태블릿PC와 휴대폰, USB를 들고 나왔다. TV조선은 이를 인정하고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까지 했다. 물건을 다시 가져다 놓은 점 등이 감안되어 불기소됐다고는 하나 명백한 무단침입이며 절도였다.
일각에서는 JTBC의 태블릿PC 보도 역시 불법 취재였다고 오랫동안 비난해왔으나 JTBC의 태블릿PC 보도는 JTBC가 불법으로 취득하려는 의사가 없었고, 취득 과정이 당시 건물관리인의 진술로 분명히 확인된 사안이었다. 당시 건물관리인은 자신에게 ‘다 버려진 거니까 가져가려면 가져가라’고 했다는 진술을 남겼고 이에 따라 JTBC는 사실상 물건을 양도 받은 건물관리인의 동의 하에 태블릿PC를 취득한 것이 됐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건물관리인의 출입 허가 및 취득 과정까지 낱낱이 사실로 확인되고 적법성이 밝혀진 JTBC 태블릿PC 건과 절도에 가까운 TV조선의 취재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TV조선의 취재윤리에 대한 성찰과 재발방지 시스템을 마련하라
이번 노환중 원장 문서 유출은 명백한 취재윤리 위반이다. 특히 타인의 컴퓨터를 뒤져서 파일을 열어보는 것은 사생활 침해이다. TV조선은 ‘국민적 관심사’, ‘공익’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그들이 말하는 ‘관심사’와 ‘공익’은 사생활 침해까지 허용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서 노 원장 집무실을 취재한 다른 기자는 “기사로 나가면 문제가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왜 TV조선의 기자와 데스크는 이런 판단을 하지 못하는가. 왜 번번이 위법적 취재를 감행하는가.
TV조선은 취재 과정에서 부적절한 방법이 동원된 상황에 대해서 노환중 원장과 부산의료원, 그리고 시청자에게 백배 사죄하라. 또한 향후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TV조선의 취재윤리에 대해 성찰하고 재발방지 시스템을 마련하라. <끝>
2019년 9월 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