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아님 말고 식 ‘난민 혐오 조장 보도’를 멈춰라인천과 서울 일부지역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물은 시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따라서 면밀한 조사와 정확한 대처가 필요하며, 섣부른 추측을 통해 시민의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행위는 지양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붉은 수돗물’ 사태를 두고 “일부 이슬람 난민 중 일부 극단주의자 소행일 가능성'을 주장한 기사가 등장했다.
문제의 보도는 시사뉴스 <문래동도 붉은 수돗물…“일부 이슬람 난민 소행일수도”>(6/21 오주한 기자, 6/26 현재 삭제)이다. 이 기사는 따옴표 처리로 이슬람 난민 소행 가능성을 부각한 제목도 악의적지만, 기사 내용에서 제시한 근거도 한심한 수준이다. 시사뉴스는 “인천에 이어 서울 문래동에서도 ‘붉은 수돗물’이 발생하면서 시민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이 가운데 근래 국내에 급격히 유입 중인 ‘이슬람 난민’ 중 일부 ‘극단주의자’ 소행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21일 정보당국 관계자는 ‘붉은 수돗물’ 사태 원인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테러일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관동대지진 당시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먼저 1923년 일제강점기 일본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거나 일본 여자들을 성폭행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로 인해 재일(在日) 조선인 수천명이 학살당했다.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상수도를 오염시켰다'는 소문은 근거없이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누군가’가 사회적 소수자가 지목되었을 때, 그 소수자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붉은 수돗물'이 ‘이슬람 난민 중 일부 극단주의자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한 시사뉴스의 보도는 관동대지진 당시 헛소문과 큰 차이가 없는 ‘혐오 조장 보도’에 가깝다.
‘관계자’ 말에 전적으로 의존, 실종된 교차검증, 개연성 없는 근거들
그렇다면 이처럼 충격적인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라도 있는 것일까? 보도에서 제기한 근거는 익명의 “정보당국 관계자”뿐이다. 기자가 정보당국자에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테러일 가능성을 묻자, 정보 당국 관계자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발언을 한 정부 당국자가 있다는 것 자체를 믿고 싶지 않지만, 백보 양보해 실제 그런 발언을 한 정보 관계 당국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 기사는 문제가 있다. 이 정도의 중대한 사안이라면 근거도 없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애매한 답변만을 근거로 제목뽑기를 할 것이 아니라, 추가적 취재를 통해 교차검증을 한 뒤 신중하게 보도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사뉴스는 이 당국자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가지 정황을 나열했지만, 모두 ‘이슬람 난민 수돗물 테러 가능성’을 뒷받침하기에 개연성이 현격히 떨어진다.
예컨대 18년 전 9‧11테러 직후 FBI나 군사전문가가 쓴 책에 나오는 익명의 소식통들이 ‘상수도도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는데, 이것을 지금 상황과 연결시킨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에 가깝다.
또한 시사뉴스는 6월 예멘 난민 중 한국에 적대적인 무장반군 후티 조직원들이 섞여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고도 덧붙였는데 이 ‘가능성’은 출처조차 밝히지 않았다. 시사뉴스가 밝히지 않은 출처는 아마도 같은 기자가 작성한 투데이코리아 기사 <단독/예멘 난민 중 ‘한 적대시’ 무장반군 포함됐나>(2018/6/28 오주한 기자)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예멘 난민 중 한국을 적대시하는 무장반군이 포함됐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근거는 “제주 예멘 난민 수백명 중 시아파 교도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안다”는 익명 제주도관계자의 전언뿐이었다. ‘시아파 교도’가 전부 예멘 무장반군이라고 단언할 수 없음을 감안하면 역시 부실한 근거다. 부실한 ‘이슬람 난민 수돗물 테러 가능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또 다른 부실한 ‘난민 무장반군 가능성’ 보도를 가져온 것이다.
근거 |
내용 |
정보당국 관계자 (2019/6/21) |
21일 정보당국 관계자는 ‘붉은 수돗물’ 사태 원인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테러일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FBI 입장 (2001/10) |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9.11테러 직후인 지난 2001년 10월 “상수도도 테러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군사·테러 분석가요세프 보단스키 저서에 나오는 소식통 (2001/10) |
같은 달 미국의 군사·테러 분석가인 요세프 보단스키(Yossef Bodansky)는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전기(傳記)에서 “1998년 초여름부터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분자들은 칸다하르 근처 비밀요새에서 빈 라덴, 파키스탄 정보부 지원 아래 생화학·방사능무기 이용 대형 테러공격을 적극 준비했다”며 “소식통에 따르면 이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인 무기는 상수도를 오염시키는 유독물질 등”이라고 밝혔다. |
이탈리아 내무부 (2017/8) |
이탈리아에서는 실제로 ‘상수도 오염’을 계획한 무슬림이 적발됐다. 2017년 8월 이탈리아 내무부는 자국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37세 튀니지인을 테러모의 등 혐의를 적용해 본국으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이 튀니지인은 다른 수감자들에게 이슬람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사상을 전파하는가 하면 “로마 상수도망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튀니지는 국민의 99%가 이슬람 신자다. |
출처 밝히지 않음 (2018/6) |
국내에 체류 중인 예멘 난민 중 한국에 적대적인 무장반군 후티(Houthis) 조직원들이 섞여있을 가능성이 작년 6월 제기됐다. 우리나라는 후티가 예멘 내전에서 맞서 싸우는 정부군(軍), 사우디군 등에 현궁 대전차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공급한 바 있다. 후티로서는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적군에 무기를 제공한 한국을 충분히 ‘적대시’할 수 있는 셈이다. 후티는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고 있다. |
중앙선데이 보도 (2018/8) |
앞서 8월 중앙선데이는 국내 체류 예멘인 18명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총기무장’ ‘이슬람 테러조직 지지’ 등 사진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
△ 시사뉴스 <문래동도 붉은 수돗물… “일부 이슬람 난민 소행일 수도”>(6/21)에서
난민 중 일부 이슬람 세력이 소행일 것이라는 근거로 나열한 이야기들 ⓒ민주언론시민연합
시사뉴스는 몇몇 지자체가 하는 상수도 테러훈련, 문재인 정부 들어 급증한 난민 신청 외국인 수, 중앙일보의 자매지 중앙선데이가 작년에 보도한 <단독/제주 ‘예멘 난민’ 페북엔 총 든 사진도 있다>(8/25 임장혁 기자)도 정황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이 역시 ‘수돗물 테러’라는 의혹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먼저 인천 등 일부 지자체가 실시한 ‘상수도 테러 대응 훈련’은 난민의 상수도 테러 대비용이 아니었다. 지난해 3월 ‘정수장 제어시스템 사고 위기대응 훈련’을 실시한 인천시는 “사이버·통신 사고를 대비해 정수장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시민에게 단수 없이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하고, 각종 제어시스템 사고 발생 시 신속·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실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 들어 난민 신청 외국인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상수도 테러’로 연결시킨다는 것도 억지이다. 시사뉴스가 언급한 예멘 난민은 484명 중 고작 2명만 인정되어 난민인정률이 0.41%에 그쳤다. 여기서 시사뉴스는 “이들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내륙 이동’이 가능하다”고 보도한 다음, 중앙선데이 보도인 “‘총기무장’ ‘이슬람 테러조직 지지’ 등 사진이 확인”된 ‘국내 체류 예멘인’을 연결했다. 그러나 중앙선데이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국적을 ‘예멘’, 현재 체류지를 ‘제주’라고 표시한 이들 중에서 50명을 추출”했다고 밝혔다. 내륙 이동 가능한 사람들의 사례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사뉴스가 ‘국내 난민의 상수도 테러 가능성’을 부각하기 위해 개연성 없는 타사 보도까지 무리하게 끌어다 쓴 셈이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조장 보도 근절해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을 유포하는 것은 다른 오보들보다 그 위험성이 더 크다. 무고한 소수자들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범죄자 취급하는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권 침해인 동시에, 엄청난 대립과 갈등, 혐오범죄를 불러올 수 있다. 지난해부터 난민 이슈는 우리 사회의 갈등 사안으로 자리 잡았으며 여기에는 부정확한 보도로 사실과 다른 ‘난민 공포’를 부추긴 언론의 책임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붉은 수돗물’에 ‘이슬람 난민 소행’을 운운한 보도까지 버젓이 등장했다. 이는 우리 사회의 혐오 조장과 혐오 표현이 도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충격적인 ‘난민 보도’를 하면서도 기사에 정작 실제 ‘난민’의 목소리는 아예 배제됐다. 심층적인 취재도, 당사자의 입장도, 소수자 인권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혐오를 조장한 이 보도의 심각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사회적 소수자의 차별을 심화시키고, 전 국민의 인권의식을 훼손하는 흉기 수준의 혐오조장 보도는 즉각 사라져야 마땅하다.
2019년 6월 25일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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