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창간 100주년 앞둔 동아일보, 언제까지 동아투위를 외면할 것인가
등록 2019.04.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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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섰다는 이유로 해직된 이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를 만들어 투쟁을 이어가다 긴급조치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故)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과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에 대해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는 이부영 이사장과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이 이사장에게 3억 6200여만원을, 고 성유보 전 위원장의 유족에게 2억 8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이사장 등이 영장 없이 강제 연행돼 불법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기소될 때까지 변호인을 접견하지 못한데다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로 자백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국가는 불법행위로 원고들과 그 가족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국민의 인권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국가가 오히려 자유언론 실천을 주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언론인들을 탄압하고 위헌적인 가해 행위를 자행한 역사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판결은 과거 가해자였던 국가로부터 피해를 입은 이부영 이사장과 고 성유보 전 위원장에 대한 경제적 배상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양승태 체제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을 거들기 위해 내린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은 과거사 피해자의 경우 국가에 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판례를 바로잡는 하급심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민주화운동 보상금에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는 포함되지 않는 만큼 국가배상 청구를 금지하는 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는데, 법원은 헌재의 이 같은 결정 취지에 따라 이 이사장 등이 불법행위에 따른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한 것이다. 즉, 이번 판결은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재판까지도 정부와의 거래 대상으로 삼았던 양승태 체제 대법원 시절의 부끄러운 과거를 바로잡는 과정의 일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더 큰 의미는 사법부가 일관되게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동아일보 등 언론인들의 무더기 해직 사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후에도 이어진 탄압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다.

시작은 노무현 정부에서 구성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2008년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언론인들이 대거 해직당한 건 사실이라며 국가와 동아일보사에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권고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양승태 체제 대법원 시절이던 2014년 재판부는 소송을 제기한 동아투위 위원 103인 중 진실화해위에 진상규명을 신청한 50인만을 판결 대상으로 삼겠다고 한 뒤, 그 중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은 36명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겨우 14인의 위원에 대해서만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기이한 판결을 내렸다. 언론자유 실천을 위해 투쟁했다는 이유만으로 40년이 넘게 생존권을 박탈한 국가가 14인의 동아투위 위원에게 각 1000만원씩 배상하라는, 책임을 진다고 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판결이었다.

하지만 이 부족한 판결에서조차 재판부는 “국가가 불법 행위를 저질러 언론인을 해임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일련의 판결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고 해서 동아일보사의 책임이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동아일보사는 양승태 체제 대법원으로부터 언론인 대량 해임 관련 정권과 동아일보사의 책임을 함께 물은 진실화해위 결정에 대해 일부 취소를 받아낸 이후 책임을 면피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상식의 선에서 판단해도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싸우던 언론인들을 무도하게 쫓아낸 책임에서 결코 동아일보사는 자유로울 수 없다. 동아일보사의 적극적이 협력이 없었다면 아무리 독재 정권이라 하더라도 언론인들을 강제로 내쫓을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천직으로 여기던 기자직을 잃고 평생의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아투위 위원들과 가족들의 복직, 명예회복 요구를 외면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이다.

수십 년 간 동아투위 위원들 해직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며 거짓으로 역사를 덮으려 했던 국가와 함께 이장폐천(以掌蔽天·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림)에 대해 동아일보사는 지금 당장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동아투위 위원 전원에 대한 복직과 명예회복에 나서야 한다. 또한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2020년)을 맞아 거짓으로 점철된 역사를 자랑할 게 아니라 동아일보사로 인해 40년 이상 고통을 겪은 동아투위 위원들과 가족들, 백지광고 사태 당시 십시일반 성금을 냈던 시민들, 그 시절의 동아일보를 응원했던 독자들 앞에 참회록을 써야 한다. 비뚤어진 치부의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 100주년을 맞을 순 없는 일 아닌가. <끝>

 

4월 2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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