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조선일보, 지상파의 공정성 회복이 두려운가
지난 2월 11일 월요일, 조선일보는 <지상파 라디오들 文정부에 주파수>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지상파 때리기에 나섰다. 이후 연이은 기사들은 가히 지상파 라디오와 TV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학살을 방불케 한다. <MBC는 편향성 강하고 KBS는 기계적 중립>, <TV 시사프로, 사실보다 정파적 주장 쏟아내> 등 10여개 이상의 기사를 쏟아내며 지상파, 특히 시사프로그램에 칼날을 휘둘렀다. 이들 기획기사는 모두 지상파의 공정성을 겨냥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지상파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잔인하게 훼손할 당시, 조선일보는 이를 지적조차 하지 않았다. 공영방송 노동자들이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파업을 조직하자 조선일보는 <사설/KBS‧MBC 노조와 민주당이 합작한 '공영방송' 파업>(2012/3/8)에서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기에 방송사 노조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공정 방송 깃발을 쳐들고 줄지어 파업에 들어가고 민주당이 파업 응원단을 조직해 적극 지원에 나선 것“이라고 악의적으로 왜곡했다. 게다가 이 기간 동안 조선일보는 TV조선과 종편의 승승장구를 노래하였다.
그런 조선일보가 지상파 방송사들이 방송의 적폐를 청산하고 힘겹게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는 때에 뜬금없이 공정성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강조할 필요 없이 조선일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상파의 공정성 회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선일보가 사회적 그리고 공론장의 흉물스런 무기, 흉기라는 사실이다.
기사와 지식의 암묵적 거래
조선일보의 <공정성 잃은 지상파> 기획기사의 핵심 근거는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기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 평가 연구”라고 하는 연구보고서이다. 그런데 이 연구는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가 지난해에 서울대 윤석민 언론정보학과 교수에게 발주하여 수행된 것이다. 지상파의 공정성에 문제를 삼는 일련의 기사들이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작년부터 체계적으로 기획된 것이라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더구나 이 연구를 수행한 윤석민 교수는 조선일보 독자권익위원회의 전직 위원이고, 현재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즉, 조선일보는 검증되고 확실한 자신들의 정치적 공동체 내부에 있는 학자에게 연구를 의뢰한 것이다. 윤 교수는 <조선칼럼/무능과 보복이 판치는 사화(士禍)의 시대>(2018/12/24)라는 칼럼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의 공정성 회복을 위한 일련의 조치를 “정치보복”이며 “경쟁의 과실을 승자(勝者)가 독식”하는 행위로 치부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연구의 발주처와 수주처가 명백히 ‘지적으로 이해가 상충’하고 있으며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음을 증명한다.
연구 윤리 규정은 연구를 발주처의 이념과 가치, 지향점이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의 그것들과 부합될 경우 이를 회피하거나 또는 연구를 수행할 경우 그 이유와 발주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①지상파의 시사 프로그램에 의도적으로 흠집을 내기 위해 작년부터 계획적으로 ②연구 윤리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지적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연구자를 통하여 ③지상파를 저격한 것이다.
이 연구는 조선일보의 정치적 목적에 동원하기 위해 연구의 외피를 쓴 도구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보고서에서는 시사방송 프로그램의 ‘논쟁적 속성’이라는 유목은 프로그램의 아이템이 논쟁적인지 아닌지를 평가하고 있다. 이는 논쟁 그 자체와 여야 논쟁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사회적 논쟁 사안에 대해 저마다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드러내고, 이 논의를 미디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활성화해 공론화 과정에 기여하는 데 있다. 비(非)논쟁적이며 비정치적인 시사보도프로그램이 문제지 그 반대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적폐정권 시기 공영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선 비논쟁적 사안을 50% 이상 다뤘다. 이는 적폐정권 시절 방송저널리즘이 스스로 시사보도 기능을 포기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현재의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들에서 논쟁적 이슈를 발굴하고, 여야 간의 견해 차이를 확인하며, 대안을 논의하는 사례가 증가했다는 사실은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기능이 회복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조선일보는 오히려 그것이 문제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분석 결과를 해석하고 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입맛대로 갖다 붙이는 것이다.
‘문자 소개가 있는 아이템’이라는 유목을 설정한 것도 보고서의 의도성을 의심케 한다. 민주당에 우호적으로 문자 소개가 편향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전체 청취자의 반응이 보여준 경향성 여부와 관계없이 기계적 균형에 맞춰 동일하게 문자를 소개하는 것이 옳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현실과 무관하게 마치 세상에 균등한 여론이 존재하는 양 소개하는 것 자체가 현실 왜곡이고, 이것을 균형적이라고 전제하는 연구 자체가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연구는 연구 설계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분석 결과의 해석에서 과도함을 보이거나, 당시 섭외 현실을 무시한 채 출연진의 빈도만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등 여러 곳에서 해석의 문제도 노출시켰다. 또 일반 연구에서 보기 드문 코더 간 신뢰도 0.95를 내세우면서 연구의 신뢰성을 주장하지만 보고서에서는 코더 간 신뢰도를 측정하거나 코더 교육자료 등과 관련한 정보가 부실하여 코더들의 판단에 의구심만을 야기했다. 이외에도 연구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사 프로그램이 다루는 현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프로그램 내용의 ‘결과’만을 수량화해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편향성’이라는 개념으로 결론 내리는 연구 설계 자체가 현실을 편향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조선일보의 정치 공학
이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팀은 연구의 목적을 “우리나라 주요 지상파방송 (라디오 및 TV)이 드러내는 공정성 약화에 대한 우려를 실증적으로 검증하는데 목적이 있음”으로 밝히고 있다. 이는 조선일보가 <Why/김어준의 '아니면 말고' 방송, 이번 희생양은 최진기?>(2018/9/8)에서 지상파에 대해 언급하면서 “정권 교체 후에도 이전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불리한 주제에만 천착하고 현 정권은 감싸는 전형적인 진영 논리”를 떨치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조선일보는 이번 연구보고서 결과와 상관없이 이전부터 ‘지상파 편향성’ 프레임을 통해 언론사 진영 논리를 주요 어젠다로 구축해 오고 있었다.
이번 연구보고서는 그러한 조선일보의 언론사 진영 전략의 효과적인 근거로서 활용되고 있다. ‘외부 아닌 외부 전문가’의 ‘엄정한’ 분석 결과는 조선일보와 정확하게 지적으로 이해가 부합되는 것이다. 미디어오늘 <‘공정성 잃은 지상파’ 조선일보의 빅픽처>(2019/2/15)의 소제목처럼 조선일보는 이러한 지적이해부합을 계기로 “‘친정부 지상파는 혜택, 정부비판 언론은 탄압’ 프레임으로 자유한국당과 연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혹은 조선일보가 지상파 보도에 대해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까지 끌어들이며 비난 수위를 급상승 시키고 있는 데서도 더욱 분명히 확인된다. 보고서가 발표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은 <만물상/‘권력의 스피커’ 라디오>(2019/2/11)에서 “나치의 선전책임자 괴벨스는 대중은 처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 우리 라디오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라고 일갈하였다. 나치 선전부의 수장이자 전범인 괴벨스를 인용하면서 우리나라 지상파 보도를 전체주의 국가의 언론으로 매도하고 지상파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그들의 노림수는 전체주의에 부역한 지상파 방송과 집권여당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대중이라는 프레임으로 엮는 것이다.
‘지상파:지상파 시청자:정권’을 연결시켜 하나의 동일한 담론 진영으로 묶고 그 진영의 대척점에는 조선일보를 위시한 현 정권과의 정치적 반대 진영을 암묵적으로 세우고 있다. 조선일보가 구축하고 있는 언론을 중심으로 하는 담론 진영이 분명히 정치적 진영의 성격을 갖는 이유이다.
이번 연구의 분석대상에서는 하루 종일 시사보도를 편성하고 있는 TV조선 등 종편은 아예 빠져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드러낸 친정부적인 정치적 담론 진영 프레임을 통해 기획하는 것은 드러나지 않은 정부 비판적 정치적 담론 진영이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정치와 언론의 분열을 통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새롭지 않다.
그러나 이번 조선일보와 그 세력들이 연구로 포장하여 벌인 도발은 실패한 작전이다. 자신들의 편향성과 정치성만 노출시키고 국민들로부터 더욱 고립을 자초한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공정성을 저격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신뢰만 저격한 오발탄일 뿐이다. <끝>
2019년 2월 1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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