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조선일보, 이제는 성 평등·인권 교육까지 훼방인가법원이 한 초등학교 교사의 교육 방식을 문제 삼은 조선일보 보도의 상당 부분을 허위로 판단하며 정정보도와 함께 해당 교사에게 손해 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정정보도와 손해 배상 대신 ‘불복’을 선택했다. 제대로 된 취재나 사실 확인 노력 없이 일부의 주장을 진실인양 보도함으로써 한 개인의 인권과 명예를, 자주성을 갖고 교육 활동을 하는 교사의 권리를 침해한 사실이 명명백백 드러났음에도 사과와 반성 대신 항소를 택한 것이다. 언론 보도의 피해자인 힘없는 개인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명백한 잘못에도 오기만 앞세우는 조선일보의 모습에서 자본과 권력은 있지만 언론으로서의 책임과 양심은 고민하지 않는 오만한 언론 권력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2017년 8월 25일자 신문 12면에 게재한 <수업시간 ‘퀴어축제’ 보여준 여교사…그 초등교선 “야, 너 게이냐” 유행>(https://bit.ly/2Dru3N8)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해당 교사의 발언과 교육 방식을 문제 삼았다.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1)해당 교사가 2017년 7월경 수업시간에 퀴어 축제 동영상을 보여준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야, 너 게이냐?” 등의 말이 유행했고 (2-1)해당 교사가 남성 혐오 커뮤니티 회원이며 (2-2)소셜 미디어에서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2-3)스스로 소셜 미디어에서 남성 혐오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임을 밝혔으며 (3)자신에 대한 비판이 불거지자 소셜 미디어에 올린 남성 혐오 관련 글 1000여 건을 삭제했다고 전했다. 또 (4)학부모들이 해당 교사가 평소 남자 아이들에게 ‘말 안 듣고 별난 것들은 죄다 남자’라고 질책한 일을 문제 삼았으며 (5)수업시간에 퀴어 축제 동영상을 보여준 이후 열린 간담회에서 학부모 220여 명이 항의하며 해당 교사의 수업 중단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법원은 조선일보에서 보도한 이 같은 내용의 상당 부분을 허위라고 봤다. 우선 조선일보 보도에서 (1)해당 교사가 퀴어 축제 동영상을 보여줬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야, 너 게이냐?” 등의 말이 유행했고 (4)남자 아이들에게 ‘말 안 듣고 별난 것들은 죄다 남자’라고 질책했다는 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허위’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조선일보는 2017년 8월 해당 교사의 징계를 요구하는 입장인 학부모대의원회에서 작성한 자료를 제공받아 이 같은 내용을 기사화했지만, 사례수집 기간이 제한적이었을 뿐 아니라 구체적 작성자나 진술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자료의 정확성·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또한 (2-3)해당 교사가 소셜 미디어에서 스스로 남성혐오 커뮤니티 회원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음에도 이를 입증할 소명 자료를 조선일보 측에서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3)해당 교사가 자신에 대한 비판이 불거지자 소셜 미디어에 올린 남성 혐오 관련 글 1000여 건을 삭제했다는 보도 내용에 대해선 ‘막연한 추측에 의해 작성됐을 여지도 많은 점 등을 종합할 때 허위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또 (5)학부모들이 해당 교사의 수업 중단을 요구했다는 보도 내용에 관련해 재판부는 양성평등 교육과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 금지 교육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는 해당 교사의 교육 방식을 지지하는 학부모도 있었을 뿐 아니라 간담회 당시 참석자의 신분이나 인원수를 제대로 파악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허위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2-1)해당 교사가 남성 혐오 커뮤니티 회원이라는 보도 내용에 대해선 원고(교사)가 입증해야 할 부분이라며 허위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2)소셜 미디어에서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부분에 대해 원고인 교사는 관련 표현이 있는 글을 리트윗(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전달하는 기능)했을 뿐 직접 해당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리트윗은 해당 글 전체만이 아닌 일부 내용에만 공감하거나, 심지어 반대할 때도 사용하는 기능이지만, 재판부는 리트윗을 직접 의사 표현으로 간주했다.
재판부의 판단에 일부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분명한 건 재판부가 조선일보에서 해당 교사의 발언과 수업 방식 등을 문제 삼기 위해 동원한 논거의 대부분을 허위로 판단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재판부는 조선일보가 기사에서 해당 교사의 발언이나 수업 방식 등을 문제 삼으면서도 정작 당사자인 교사의 입장을 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조선일보는 사실 확인과 반론권 보장이라는 언론의 기본 윤리와 의무를 내팽개친 것이다. 그로 인해를 피해를 본 건 문제의 기사에서 표적이 된 교사만이 아닌, 지금도 양심과 신념에 따라 성 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교육하고 있는 교사 전체다.
조선일보는 지금이라도 오만한 언론의 모습을 보이는 대신 항소 계획을 철회하고 한 교사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함은 물론 교육 현장 전반의 위축을 부를 수도 있는 허위 기사를 내놓은 것을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민주언론은 못 되더라도 민주시민 교육까지 훼방 놓진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성별,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누구도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민주사회에서 당연히 해야만 하는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조선일보를 포함한 세력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해당 교사를 향해 강력한 지지와 연대의 의사를 전한다. 성 평등과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를 위해 양심과 신념에 따른 교육을 이어가고 있는 당신이 옳다. <끝>
11월 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