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방송의 날에도 ‘방송 갑질’ 외면하는 지상파, 참담하다
등록 2018.09.0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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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제55주년 방송의 날 축하연이 열렸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축사를 했다. 사실 그동안 방송의 날은 축하의 자리라기보다는 정권의 방송장악에 대한 규탄과 그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경영진에 대한 성토의 자리였다. 작년 방송의 날 기념식에도 전국언론노조 KBS·MBC본부는 파업 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이낙연 국무총리, 정세균 국회의장, 여야 교섭단체 대표가 모두 불참한 이날,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은 축하연 장소 앞에서 규탄 집회를 했다. 이제 국민의 힘으로 어렵사리 공영방송 정상화를 진행하고 있는 2018년 방송의날은 감개무량한 날이고, 축하할만한 날이었다. 

 

그러나 이날 저녁, 지상파 3사의 방송의 날 관련 보도는 민망하기 짝이 없다. 이번 방송의 날 축사에서 문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크게 ‘방송 공공성 강화’와 ‘방송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 개선’, ‘방송계 갑질 문제 해결’이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운을 뗀 뒤, “방송 콘텐츠의 결과물만큼 제작 과정도 중요합니다. 제작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현장의 모든 분들을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존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노동이 존중되고, 사람이 먼저인 일터가 되어야 창의력이 넘치는 젊고 우수한 청년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을 것”이며 강조했다. 대통령이 방송의 날 축사를 통해 ‘방송계 갑질’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방송계의 비정상적 외주제작 환경 실태와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 처우개선 문제가 이미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로 자리 잡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당일 지상파 3사의 저녁종합뉴스는 철저하게 이 발언을 무시했다. KBS는 <“방송의 독립성‧공영성 철저히 보장”>으로 문 대통령의 “방송의 독립성과 공영성을 철저히 보장하겠다”라는 발언만을 잘라 전했다. MBC <문 대통령 “방송 독립성 철저 보장”>은 방송 독립성‧공영성 보장 약속에 더해 “올해 언론자유지수 순위가 크게 상승한 것은 방송인들의 눈물겨운 투쟁과 노력의 결과”라는 평가와 “방송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하겠다는 약속을 덧붙여 전하는 데 그쳤다. 가장 노골적이었던 것은 SBS다. SBS <“불필요한 규제 풀겠다”…SBS 방송대상 석권>은 제목과 앵커 멘트를 통해 “방송사 경쟁력 향상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겠다”는 발언을 부각한 뒤, SBS 탐사보도팀이 한국방송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연이어 전했다. 반면 ‘방송계 갑질’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모든 방송사가 방송사에 유리한 이슈만을 부각, 전달한 꼴이다.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다. 지상파 3사가 엄청난 취재력을 갖고 외부 권력을 비판하는 훌륭한 보도를 내놓는다 해도, 자사 이해관계에 반하는 보도는 감춘다면, 그 것이 정상화된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방송사의 ‘불리한 이슈 외면’ 담합 행태는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올해 초 방송계의 비정상적 외주제작 실태를 폭로한 한겨레21 ‘상품권 페이’ 보도, 방송계 갑질119와 방송 스태프 노조준비위원회의 방송제작 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가 이어져도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 사안을 저녁종합뉴스에서 다루지 않았다. 자사에 대한 고백과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방송사간에 철저한 카르텔이라도 형성된 것처럼 ‘방송계 갑질’이라는 아이템 자체를 은폐해왔다. 오죽하면 장시간 노동과 직장 내 갑질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tvN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PD, 열악한 상황 속에서 EBS 외주 제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연출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박환성·김광일 PD의 사례까지도 지상파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국민이 원하는 ‘방송 정상화’는 단순히 보도의 공정성과 공익성 확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국민에게 제공하는 과정도 공정하고 인권 친화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이제 피할 수 없다. 양승동 KBS 사장, 최승호 MBC 사장은 사장 후보 시절부터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보호 및 관행 개선, 독립제작사와의 상생 등을 방송 정상화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그나마 지난 3일 지상파 4사가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체결한 산별협약에는 비정규직 실태와 개선 방안 조사를 거쳐 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처우개선 실행 방안을 추진한다는 내용과 드라마와 예능 분야의 장시간 노동 관행 개선을 위한 ‘특별협의체’를 가동한다는 계획 등이 포함됐다고 한다. 그러나 현장의 문제제기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너무나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 상생과 협력을 위해 방송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보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지상파 3사의 방송의 날 관련 보도를 보며 경고한다. 정상화되면 바꾸겠다던 문제들을 해결하라. 지금 당장 한꺼번에 개선이 어렵다면 최소한 실태조사와 반성, 개선안이라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 반성과 실천이 없다면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방송 정상화’는 미완일 뿐이다. <끝>

 

9월 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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