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조선일보와 ‘양승태 대법원’의 ‘기사-재판 거래’ 실체를 규명하라법원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문건을 추가 공개했다. 사법부와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 저마다 이익을 탐하기 위해 어떻게 추악한 커넥션을 구축하려 했는지 그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게다가 일부는 실행된 정황이 짙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다.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신문, 방송, 뉴미디어 별로 각각 홍보 전략을 세워 어떻게 언론을 이용할지를 계획했는데, 특히 조선일보에 공을 들였다. 법원에서 추가 공개한 파일 중 ‘조선일보’가 들어간 문건은 모두 아홉 건으로, 이 안에는 법원행정처가 조선일보와 어떻게 ‘기사 거래’를 하려 했는지 등 구체적인 실행 플랜이 담겨 있었다.
‘조선일보를 통한 상고법원 홍보전략’ 문건(2015년 4월 25일)을 보면 당시 법원행정처는 조선일보를 통해 상고법원을 집중 홍보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조선일보에게 전국 변호사 대상 설문조사와 지상 좌담회, 조선 내부 필진의 칼럼과 외부 기고문 게재 등을 제안을 기획했다. 임시국회 개원 직전인 2015년 5월 넷째 주부터 6월 첫째 주 사이에는 특집기사를 집중 게재하자는 계획도 세웠다. 또한 조선일보가 설문조사 기관에 지급할 용역대금을 주기 위해서 법원이 10억 원에 달하는 법원 예산을 광고비로 지급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이런 내용은 ‘조선일보 방문 설명자료-상고제도 개선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문건(2015년 5월 6일)에도 그대로 담겨 있었다.
또 ‘상고법원 관련 언론 지상 좌담회 시행방안’ 문건(2015년 4월 14일), ‘조선일보 홍보전략 일정 및 콘텐츠 검토’ 문건(2015년 5월 4일) 등에서는 좌담회 개최를 위한 상세 계획과 기명칼럼 등의 제안, 상고법원 관련 기사에 담길 구체적 사례 등 콘텐츠를 마련하고 있었다. 사주 일가의 이익을 위해 전방위 로비에 나선 삼성 전략기획실이 연상되는 법원행정처의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할 지경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법원행정처의 문건 추가 공개 직후 “조선일보는 문건에 대해 “행정처 문건은 행정처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조선일보와 무관합니다. 만일 조선일보가 이와 관련된 것처럼 보도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과연 이렇게 발뺌한다고 될 정황일까? 백보 양보해서 행정처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이 조선일보에 그대로 반영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조선일보는 애초 상고법원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2015년 1월 17일만 해도 조선일보는 칼럼을 통해 국회에서 발의된 상고법원 법안에 대해 “입법과 사법의 불륜”에 비유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일련의 문건들이 작성된 시점을 전후로 상고법원 찬성 기고문을 게재하고 관련 기사와 칼럼, 기획보도 등을 연이어 내보냈다.
2월 6일자 조선일보에는 상고법원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명의의 기고문이 실렸다. 이번에 드러난 법원행정처의 ‘상고법원 입법추진동력 붐업 방안 검토’ 문건(2015년 2월 1일)에는 바로 이 기고문 게재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4월 13일 자 조선일보에는 오연천 전 서울대 총장이 쓴 <대법원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 상고법원>이라는 기고문이 실렸는데, 이 기고문은 행정처가 칼럼 게재 전 작성한 내용과 토씨까지 같아 대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원행정처가 조선일보 대응 전략 문건들을 작성한 직후인 5월 19일부터 6월 초까지 조선일보 지면엔 상고법원 관련 기사와 칼럼, 기획보도가 이어졌다. 2015년 9월 20일 문건인 ‘조선일보 보도요청 사항’에는 ‘상고심 사건의 소가 총액과 당사자 총수에 관한 기획보도’를 요청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구체적으로 △연간 접수되는 상고사건 소송물가액 5조원 △5조원이 자본시장에 풀릴 경우 경제적 이익 1500억 원 △연간 상고사건 당사자 수 12만 명 △비행장 소음 손해배상 소송, 해고무효 소송 등을 사례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10월 21일 조선일보 <대법관 ‘월화수목금금금’ 일해도 벅찬데…상고법원 표류?>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는 바로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조선일보 스스로 문건과 조선일보가 무관치 않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상급법원에 목맨 ‘양승태 대법원’과 자사와 관련된 주요 재판이 걸려있던 조선일보가 ‘판결과 기사를 거래’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이 작성된 2015년 당시, 조선일보 9대 사장이자 사주였던 방응모의 친일 반민족행위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방우영 전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조부인 방 전 사장은 친일행위를 한 적이 없다”며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 행위 결정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이었다. ‘방응모 친일 대법원 판결’은 단순히 개인의 판결이 아니라 조선일보의 정체성과 관련된 매우 중대한 판결이다. 그런 재판을 진행 중인 조선일보 입장에서는 ‘양승태 대법원’의 보도협조 요청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대법원은 2심 판결 이후 무려 5년이나 지난 시점인 2016년 11월에 이르러서야 파기 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게다가 판결 결과를 보면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행위로 판단했던 내용 중에서 일부만을 친일행위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방응모가 잡지 <조광>에 일제 침략전쟁에 동조하고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논설을 투고한 행위만을 친일행위로 인정했다. 대법원이 방응모의 행위 중 △일본의 전쟁 수행을 돕기 위해 설립된 군수업체 조선항공공업의 발기인과 감사를 역임한 일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활동은 친일행위로 볼 근거가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런 정황 때문에 현직 판사인 허용구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을 통해 대법원과 조선일보가 거래와 기사를 두고 거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재판거래 의혹’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또 있다. 경향신문(7월 24일)은 검찰이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조선일보 방상훈 대표의 사돈인 이인수 전 수원대 총장의 형사사건 진행상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전국 법원에서 진행 중인 <조선일보> 관련 민사 사건을 일괄 조사한 문건 또한 확인했다고 한다.
사법부가 헌법 등에서 부여한 권한이자 의무인 ‘독립’의 가치를 저버렸고, 조선일보가 사주 일가와 자사의 이익을 이유로 기사를 ‘거래’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결코 묵과할 수 없는 파렴치한 일이다. 사법부와 언론이 결탁해 법에서 부여한 민주적 기본질서 존중의 의무를 심대하게 훼손한, 일종의 쿠데타와도 같은 상황인 것이다.
우리는 애초 조선일보가 스스로 ‘기사 거래’ 정황의 전말을 고백하고 반성하며 죗값을 치르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있어야 하는데 이조차 기대하기도 어렵다. 오늘(8월 1일)자 조선일보는 관련기사를 10면에서 개괄적으로 보도하면서, ‘법원행정처 문건은 조선일보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끼워 넣었다. 도저히 책임 있는 언론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태다. 법원행정처에서 일방적으로 계획만 수립했다고 보기엔 실행의 정황이 짙은데, 밑도 끝도 없이 ‘우리는 무관하다. 관련된 것처럼 보도하면 고소하겠다’고 겁박하는 태도를 보라. 이는 그들이 독자와 국민을 얼마나 얕잡아 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검찰이 나서야 한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의 실체를 명명백백 규명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국민의 혈세인 법원 예산이 어떻게 조선일보에 광고비 등의 명목으로 흘러들어가진 않았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또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정치권 누구도 이번 수사에 어떤 개입도 하지 말아야 한다. 타 언론도 이 문제를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 동종업계 감싸기로 이번 사안을 은폐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언론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거듭 검찰의 독립적이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 <끝>
8월 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