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참담한 언론 계엄 계획, 제대로 수사하고 보도하라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될 경우 대한민국 전역에 계엄을 선포해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이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시절의 폭력적 통제를 2017년 계획한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이다. 특히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을 폭력과 야만으로 짓밟겠다는 이 문건의 작성을 누가 지시하고, 어떤 경로로 보고하고 배포했는지 철저히 규명해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
특히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한 핵심 기본권이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을 손에 넣고 검열할 계획까지 수립한 것은 더욱 경악스럽다.
지난 20일 청와대가 목차 일부를 공개하고 사흘 뒤인 지난 23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된 기무사에서 작성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대비계획 세부자료’엔 언론·출판·공연 등에 대한 사전검열 계획이 포함돼 있었다.
언론통제 방안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계엄 선포 이후 언론 통제를 위해 보도검열단을 구성하고 합동수사본부 언론대책반을 편성·운영하려 했다. 계엄선포와 동시에 적용할 ‘언론·출판·공연·전시물에 대한 사전검열 공고문’과 ‘각 언론사별 계엄사 요원 파견계획’도 마련했다. ‘계엄사 보도검열단 9개반’을 편성해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견본, 영상제작품 원본을 제출받아 검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22개 방송과 26개 언론, 8개 통신사와 인터넷신문사에 통제요원을 편성해 보도를 통제하는 등 매체의 파급력을 고려해 매체별 통제요원을 운영하려 했고, 심지어 검열 시간과 장소를 정해 미디어 전반을 통제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구체적으로 석간신문은 매일 오전 5시부터 정오, 조간신문은 매일 오후 3시부터 10시, 주·월간지는 매일 오후 1시~3시, 방송·통신·인터넷은 ‘수시로’ 사전 검열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신문 가판과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견본, 영상 제작품 원본 등을 제출받아 검열하려 했다.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집회와 단체행동, 유언비어 날조와 유포 행위 금지를 포고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 민·관·군 합동으로 대응반을 설치해 검열과 차단, 계정 폐지 등을 맡도록 함으로써 일체의 여론을 통제하려 했다.
또한 방송통신위원회에 검열 업무를 위임해 △계엄업무 수행에 유해한 사항 △공공 안녕질서 유지에 지장을 주는 사항 △군의 위상과 사기를 저하시키는 사항 △군사기밀에 저촉되는 사항 △국민의 부정적 여론형성을 조장하는 허위·왜곡·과장된 사항 △기타 계엄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사항 등을 검열하게 하는 한편, 정부와 군의 발표나 계엄 지지 여론과 국내외 반(反)계엄 의식을 불식시키는 사항 등은 확대 보도하도록 했다.
일련의 보도검열 지침을 위반한 매체에 대해선 경고→기자실 출입금지, 보도증 회수, 현장취재 금지, 출국조치(외신)→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등의 조치를 하고, 검열지침을 지속 위반할 경우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동원해 보도매체 등록 취소와 보도정지 조치 등을 내리려 했다. 전두환 신군부 시절로의 완전한 회귀를 획책하려 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건엔 필요시 KBS 1TV 및 라디오로 ‘전국 단일방송’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계획까지 담겨 있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런 언론장악 계획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 처진다. 심지어 이 같은 세부 계획은 군에서 2년마다 수립되는 계엄실무편람, 다시 말해서 군의 계엄 매뉴얼에도 없는 내용이다. 현행 계엄실무편람엔 언론사 보도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SNS 계정 폐쇄는 언급조차 없다. 기무사의 세부문건은 계엄 편람에서 기준으로 제시한 검열 지침까지 뛰어넘는, 명백하게 헌법질서 파괴를 획책한 위헌 행위의 증거인 것이다.
민언련은 현실 가능성을 떠나 전두환 신군부 시절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수준의 언론장악을 획책하고, 대한민국을 야만의 시대로 시간을 되돌리겠다는 망상을 내놓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에 깊은 분노를 표한다. 게다가 그들이 필부필부가 아니라 한국 사회 권력의 주요한 일부를 차지한 자들이라는 점에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계엄령 문건 수사를 위한 합동수사본부는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수사해야 한다.
언론에도 경고한다. ‘계엄사 보도검열’은 언론이 가장 큰 목소리로 비판하고 보도해야 마땅한 이슈다. 이런 이슈마저 외면하거나 문건의 의미를 축소 혹은 두둔하고 사안의 본질을 왜곡한다면 그것은 언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다. 검열 받는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보도지침이라는 야만이 통제하는 시대로 회귀할 수 없다. 이 절대 명제를 새기고 제대로 보도하라. <끝>
7월 25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