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세월호 희생자 모욕 방송 MBC, 제작 시스템 개선해야MBC가 오늘(5월 16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모욕 방송을 한 자사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MBC가 구구절절 경위를 설명했지만, 결론은 “잘못한 건 맞다. 그러나 고의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MBC 조사위는 문제 영상의 편집을 담당한 조연출이 어묵을 먹는 장면에 세월호 참사 영상을 사용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음을 강조했다. 어묵이 ‘일베’ 사이트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조롱하려는 의도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조연출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게다가 FD와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한 미술부, 그리고 총 제작 과정에 관여한 조연출까지 무려 세 명이나 해당 화면이 세월호 참사 속보 영상임을 알고 있었고, 연출과 부장 또한 여러 차례의 시사 단계를 거쳤으나 이들 모두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다.
따라서 조사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사 과정에서 촉박한 제작 환경, 수많은 자료 활용에 대한 게이트키핑 부실, 지시대로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파편화 된 제작 과정, 꼼꼼하지 못한 관리 감독 등 제작 전반의 시스템 실패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같은 날 4·16 가족협의회는 입장문을 통해 “‘제작진 일베설’ 등 고의성 여부에 대한 조사 결과를 수용한다”고 밝히면서도 “고의성이 없었다고 책임까지 사라져서는 안 되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관련자들에 대해 적절한 책임을 묻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하기를 촉구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MBC는 어떤 방송사였는가. 백 번 천 번 성찰하고 반성하며 책임 규명을 하고 징계를 가해도 모자랄 천인공노할 방송을 내놓았던 방송사였다. 그런데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런 그들을 위해 집회 현장에 먼저 찾아와 노래해줬고, 정상화를 바라는 촛불 집회에 나와 꾸짖어줬으며, 부디 정상화되어 제대로 된 방송을 하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런 유가족들이 내놓은 정제된 입장문에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슬픔 속에서도 거듭 MBC를 용서하며 MBC의 변화를 촉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MBC는 어쩌면 한 때의 소나기는 피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참시> 사태’의 해결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나마 조사위원회는 “이번 사건의 관계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고, 제도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히 따라야 할 조치이며 시작일 뿐”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는 악의 없는 실수였다고 해서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제 MBC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책임을 묻고 시스템을 개선할지 밝혀야 한다.
우선 영상과 이미지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가이드라인에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과 관련한 영상과 이미지를 개별 제작진의 판단으로 내려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함께 포털 사이트 등에서 검색한 이미지의 사용을 금지하고, 영상과 이미지 출처를 반드시 표기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야 한다. 또한, 소수자 등 약자에 대한 비하·혐오 용어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며, 일련의 가이드라인을 방송 제작 스태프 전체가 숙지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제작 과정에서 판단이 어려울 때 문의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벌써 4년이 지났지만,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희생자들이 있고 참사의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
이번 ‘<전참시> 사태’ 이후 최승호 MBC 사장은 소셜 미디어에 “MBC 정상화가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런 일이 생겼다”며 “더 확실히 개혁해 국민의 마음속에 들어가라는 명령으로 알고 힘을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정상화가 진척되지 못한 MBC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을 뿐 아니라, 정상화를 위해 MBC 구성원들이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은 오랜 시간 ‘관행’ 혹은 ‘성과’라는 변명 뒤에 숨겨둔 안일한 인식임을 확인하게 했다. 이런 적폐와 같은 인식과 제대로 싸우지 않는 한 “전파로 흉기를 휘두르고선 잘못한 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상황은 언제고 반복될 것이다.
MBC는 조속한 시일 내에 구체적인 후속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마치 유체이탈 화법 같은 ‘MBC의 사과’가 아닌, MBC 구성원 각각이 뼈를 깎는 성찰을 통해 반성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야만 진짜 ‘정상화 된 MBC’를 구호가 아닌 방송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끝>
5월 1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