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정부, 이명박·박근혜 정권 방송장악 진상조사 기구 구성해야

방통심의위 ‘청부 민원’·‘표적 심의’, 몸통을 수사하라
등록 2018.03.2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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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 사무처의 또 다른 적폐 행적이 드러났다. 사무처의 김 아무개 팀장이 2․3기 방통심의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지시를 받아 일반인 명의를 사용해 ‘청부’ 심의를 신청한 사실이 4기 방통심의위 업무감사로 확인됐다. 2·3기 방통심의위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였으며, 지시를 내린 당사자들은 당시 여권에서 추천한 인물들이었다. 2·3기 방통심의위에선 도를 넘어선 편파 심의와 함께 이와 관련한 청부 심의 의혹이 빈번하게 제기됐다. 또 이런 방통심의위 때문에 방송 심의가 정권 심기 경호를 위한 공작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번 감사결과는 2·3기 방통심의위에서 어떻게 청부 심의와 편파 심의 공작을 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청부 민원-표적 심의’ 실체 드러나

감사 세부 내용은 더욱 충격이다. 4기 방통심의위에 따르면 김 아무개 팀장이 전 위원장과 전 부위원장의 지시를 받아 2011~2017년 사이 ‘대리 민원’을 신청한 안건은 46건이며 이중 19건이 법정제재를, 14건이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이중에는 과거 심의 과정에서부터 이른바 ‘정권 심기 경호’ 심의라는 의혹과 논란을 불렀던 안건들도 포함돼 있다. 당시 논란이 된 문제적 민원들이 청부 심의의 결과물이었다는 의미이다.

일례로 2015년 방송된 KBS 광복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 1편을 두고 김 아무개 팀장은 두 차례나 대리 민원을 제기했다. 당시 심의 과정에서 여권 추천 위원들은 광복 이후 분단 정국과 6·25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이 방송에서 한국 국민에 대해 ‘남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걸 문제 삼은 민원을 주요하게 언급했다. 심지어 의견 진술을 위해 출석한 PD에게 “어디가면 한국방송공사 팀장이라고 하지 남녘방송공사 팀장이라고 하지 않을 거 아니냐”고 다그치기까지 했다.

결국 해당 방송은 재허가 심사에서 감점 요인이 되는 법정제재(경고)를 받았는데, 지난해 언론노조 KBS본부 파업 당시 파업 언론인들이 제작한 ‘파업뉴스’에선 2015년 3월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해당 방송에 “건국 가치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방통심의위 제재가 필요하다”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을 공개하며 ‘청부·표적 심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혹이 4기 방통심의위 감사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봐주기 심의’ 의혹도 전면 조사해야

이번 감사 결과는 방통심의위 사무처 전 직원에 대한 전면 감사의 필요성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명박 정부가 출범시킨 방통심의위는 1기부터 3기까지 모두 청부 심의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방송에 대한 무리한 중징계만이 아니라, 당시 정권을 지나치게 옹호하고 야권을 조롱한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관련 민원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기각’과 경징계 또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특히 민원을 안건으로 상정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판단의 역할을 맡는 사무처는 왜곡·편파 보도가 일상인 종편과 보도전문채널 등에 대한 수많은 심의 민원을 아예 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하지도 않은 채 사무처 수준에서 그냥 ‘기각’시키는 것으로 심의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2016년 8월 15일부터 12월 1일까지 방송된 종편 4사와 보도전문채널 2사(YTN·연합뉴스TV)의 33개 시사토크 프로그램 모니터 결과를 토대로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제기한 심의 민원 65건 가운데 72%에 해당하는 47건을 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고 사실상 자의적으로 ‘기각’ 처리했다. 법에서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사무처가 ‘기각’ 결정을 하도록 방통심의위는 사실상 조장해 왔고, 이런 행태에 민원인인 시청자는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한 민원은 ‘기각’ 사유의 정당성조차 다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권 청부 심의에 대한 조사와 함께 사무처가 민원을 ‘기각’하는 과정에서 방송 사업자들의 이해를 봐주거나 영합한 부분이 없는지 또한 살펴야 한다.

 

외부 인사 참여하는 언론 적폐 청산 기구 구성해야

4기 방통심의위는 김 아무개 팀장을 파면했으며 형사 고소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아무개 팀장은 꼬리의 꼬리일 뿐이다. 검찰에 당부한다. 이번 사건을 방통심의위 내부의 실무자 한 사람만 잡는 수준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김 아무개 팀장은 2015년 JTBC에서 보도한 청와대 사찰 문건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문건에 따르면 방통심의위 사무처가 당시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대리 민원을 넣은 정황도 있다.

이번 사건은 방송을 장악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적폐를 이어가려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방송 장악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심의를 악용한 사례의 단면일 뿐이다. 따라서 청부 민원을 지시한 전임 위원장과 부위원장, 그리고 방통심의위를 사찰해 심의를 정권의 영향력 아래 둔 청와대 등 정부 관계자들을 철저히 조사해 적폐 정권의 방송장악 구조를 낱낱이 밝혀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도 나서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적폐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공영방송의 부역 사장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이는 각각의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고소에 따른 것으로, 이것만으로는 적폐 정권에서 자행한 방송 장악의 구조와 폐해를 세세하게 드러내기 어렵다.

더구나 방송통신위원회와 방통심의위 등의 경우 외부에서 임명된 한정된 임기의 상임·비상임 위원들이 내부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을 지휘하려 해도 사무처를 통할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일례로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지난 1월 30일 강상현 방통심의위원장이 취임사에서 방통심의위 내부 적폐 청산의 의지를 밝혔음에도 기자들에게 취임사 전문을 배포하는 대신 적폐 청산 부분을 ‘마사지’ 한 보도자료를 발송했다.

언제든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언론·시민단체를 비롯해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정부 차원의 언론장악 적폐의 실상의 철저한 조사, 책임자처벌, 재발방지책 마련 등 언론장악 적폐청산을 위한 기구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 공영방송 등만이 아니라 방송을 통제하고 검열하는 방송장악 기구로 기능한 방송통신위원회와 방통심의위의 부끄러운 행적을 빠짐없이 밝혀야 한다. 진짜 언론 개혁은 완벽한 적폐 청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끝>

 

3월 2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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