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방통위, ‘꼼수’ 미디어텍 설립 MBN ‘공적책무’ 방기 좌시해선 안 된다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MBN이 자사의 영상제작과 방송기술 업무를 전담하는 MBN 미디어텍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어서 자사 기술부와 영상취재부, 영상편집부, 미술부 등 4개 부서 노동자 138인을 이동시키기로 했다. 방송사가 자회사를 만드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국 7년차에 접어든 MBN이 갑작스레 영상제작과 방송기술 업무를 전담할 회사를 설립하고, 그간 MBN 소속이었던 직원을 자회사인 MBN 미디어텍으로 소속을 옮기게 한 건 문제다. 이는 지난해 11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재승인 심사에서 부과 받은 콘텐츠 투자액에 대한 부담을 줄이려는 일종의 ‘꼼수’이기 때문이다.
MBN은 방통위 재승인 심사에서 총점 1000점 중 651.01점을 받아 가까스로 재승인 기준 점수 650점을 넘겼다. 하지만 ‘방송발전을 위한 지원계획의 이행 및 방송법령 등 준수 여부’ 항목에서 총점 100점 중 37.06점의 ‘과락’ 점수를 받아 ‘조건부 재승인’ 대상이 됐다. 이때 방통위가 MBN에 부과한 재승인 조건 중 하나가 ‘방송 프로그램의 품질 향상과 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위해 추가 개선 계획에서 제시한 연도별 투자금액 이상을 준수’하라는 것이다. 방통위는 2014년 재승인 당시에는 ‘사업계획서에서 제시한 연도별 콘텐츠 투자계획을 성실히 준수’하라고 표현했지만, 2017년엔 ‘콘텐츠 투자금액 이상을 준수’하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표현을 사용해 조건을 부과했다.
콘텐츠 투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방통위는 지난해 종편 재승인 심사에 앞서 △방송의 공적책임 및 공정성 확보 방안 △콘텐츠 투자계획 이행 △재방송 비율 △조화로운 편성 등을 중점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막말·왜곡방송 등 MBN을 비롯한 다수 종편의 고질적 문제들은 모두 콘텐츠에 대한 투자 부족에서 기인한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드는 보도·시사토크 프로그램을 대거 편성해 모든 주제에 대해 발언하는 출연자들의 ‘말’로 방송 시간을 채우다 보니 사실과 무관한 ‘사담’ 수준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이 쏟아지는데, 콘텐츠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는 종편들은 이런 ‘아무 말 대잔치’ 수준의 방송들을 재방송을 거듭하며 반복해 내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MBN은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더 늘리길 포기했다. 대신 미디어텍 설립을 통한 분사라는 ‘꼼수’를 택했다. 방통위의 제작비 산정 기준에서 본사 소속 직원의 인건비는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자회사 분사로 소속이 바뀐 직원들이 MBN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할 때 발생하는 인건비는 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MBN은 콘텐츠의 양과 질을 높이기 위한 추가 투자를 하지 않고도 자회사로 분사한 직원들의 인건비를 그대로 콘텐츠 투자비용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콘텐츠에 대한 추가 투자 없이 추가 투자를 인정받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MBN이 선택한 이 ‘꼼수’는 재승인 조건으로 콘텐츠 투자를 늘리라고 한 규제 기관을 농락하는 행위다.
게다가 MBN은 그동안 콘텐츠 투자에 대한 약속을 거듭 파기해왔다. 2014년 재승인 심사 당시 MBN은 3년 동안 899억 원을 콘텐츠에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스스로 약속한 계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후 방통위의 시정명령에도 MBN은 약속한 투자계획의 68%(610억 원)만 투자하는 데 그쳤다. 다른 종편들과 마찬가지로 막대한 콘텐츠 투자로 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만들겠다는 ‘장밋빛’ 계획을 앞세워 사업을 승인받은 MBN이 개국 7년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 이어, 또 한 번 시청자를 기만하려는 것이다.
이제 MBN의 콘텐츠 투자금액 관련된 공은 방통위로 넘어갔다. 방통위는 매년 4월 30일까지 MBN으로부터 전년도 콘텐츠 투자 이행 실적을 제출받기로 했다. 방통위는 이 과정에서 MBN이 공적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지금 MBN이 ‘꼼수’의 셈법으로 장부상으로만 늘리려는 콘텐츠 투자비용 이상의 투자를 하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재승인 심사의 목적은 방송의 공적책임을 높이는 데 있다. 그리고 방통위는 MBN의 공적책임을 높이기 위해선 콘텐츠 투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지금의 재승인 조건을 부과했다.
만약 방통위가 MBN의 ‘꼼수’에 눈을 감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방통위가 무력한 행정의 사례를 또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일 뿐 아니라, 방통위로부터 조건부 재승인․재허가나 여러 가지 시정명령을 부과 받은 다른 방송 사업자들에게 문제 개선보다 법·제도의 ‘구멍’을 찾는 게 더 쉬운 길이라는 사인을 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방통위는 MBN의 시도가 ‘성공한’ 꼼수로 남지 않도록 행정력을 총동원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이런 특혜로 출범해 성장한 종편이 ‘꼼수’로 공적책무를 면피하는 모습까지 두고 봐선 안 된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더 이상 이런 낯 뜨거운 수준의 꼼수가 횡행하지 않도록 방통위가 합리적인 제도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끝>
2월 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