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재허가 기준 점수 미달 지상파 3사 ‘조건부 재허가’ 유감알려진 대로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모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재허가 심사에서 ‘탈락 점수’를 받았다. SBS 647점, KBS1 646점, KBS2 641점, MBC 616점으로 재허가 기준 점수(1000점 중 650점)에 미치지 못했다. 심사항목과 방법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지상파 3사가 내내 ‘불량방송’이라며 내심 아래로 봤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채널A, MBN 등보다 낮은 성적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면서도 공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적폐 정권의 홍보기관처럼 보도와 편성을 운영하며 공정성·공익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내버린 결과라는 점에서 지상파 3사가 ‘탈락 점수’를 받은 건 전혀 놀랍지 않다.
기준 점수 미달 방송사 ‘사업권 박탈’ 원칙 분명히 해야
방통위는 기준 점수에 미달하거나 개별 심사항목에서 ‘과락’을 받은 방송사에 대해 재허가·재승인을 거부하거나 조건부 재허가·재승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방통위는 지난 4월과 11월 각각 재승인 탈락 점수와 과락 점수를 받은 TV조선과 MBN에 대해 조건부 재승인을 결정한 데 이어, 이번에도 재허가 기준 점수에 미달한 지상파 3사 모두에 3년 기간의 조건부 재허가를 결정하고 △편성위원회 운영 활성화 △직원 징계제도 개선 △외주(독립)제작 거래관행 개선 △시청자위원회 구성 객관성 제고 △재난방송 강화 등의 공통 조건을 부과했다.
KBS와 MBC가 공적 소유 구조인데다가 지상파 3사의 규모와 영향력 등을 고려한 결정이지만, 이와 같은 현실적 문제들을 이유로 퇴출이 마땅한 방송을 퇴출하지 않으면 재허가·재승인 심사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지상파 3사의 적폐 경영진이 끊임없이 정권의 보도 통제에 앞장서 협력하며 이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을 탄압하고, 또 종편들이 탄생 이후 줄곧 편파·왜곡·막말로 점철된 불량 방송을 계속할 수 있던 배경엔 이처럼 실효성이 없는 재허가·재승인 심사가 있었다. 방통위는 재허가·재승인 기준에 미치지 못한 점수를 받은 방송사들의 사업권을 박탈한다는 원칙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공적 소유 구조의 공영방송, 특히 국가기간방송인 KBS도 이런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다만 민영방송처럼 사업권의 취소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재허가 기준 점수에도 이르지 못한 책임을 사장 등 경영진에게 물어야 한다. 사장 등 책임 있는 경영진 퇴진으로 사업권 취소에 준하는 문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경영진이 재허가 기준 점수 미달의 주원인인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지상파 3사에 부과한 ‘조건’도 너무 허술해
이런 측면에서 방통위가 KBS에 대해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한 건 유감이다. KBS가 재허가 기준점수에 미치지 못하는 점수를 받았단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KBS 안팎에선 고대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물론, KBS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이사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방통위는 경영진이나 이사회의 책임을 묻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실상 직무유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방통위는 감사원 감사 결과 거액의 업무추진비를 사적 유용한 것으로 드러난 지 한 달이 다 돼 가도록 ‘비리 KBS 이사들’의 책임을 묻는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비리 이사들’은 재허가 심사에서 KBS가 처음으로 탈락 점수를 받은 상황에서 그 책임이 있는 고대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서로를 비호하며 KBS를 사실상 ‘죽은 공영방송’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
그런 만큼 방통위는 비리 이사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와 함께, 이번 재허가 심사에서 고대영 사장 등 KBS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고 공영방송답게 공정성과 공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엄격하게 재허가 조건을 부과했어야 했다. 이에 역행한 방통위의 조치는 방송규제기관으로서 한 조치라고 보기에는 매우 실망스럽다. 즉, 방통위가 이번에 낙제점을 받은 지상파 방송사에 부과한 재허가 조건이 낙제점 받은 부실한 방송사 운영 상황을 차후로라도 치유할 수 있는 정도의 실효성 있는 조건이 아니라 너무 허술한 수준에 머물렀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MBC의 경우 탈락 점수에 대한 책임이 있는 김장겸 사장이 지난 11월 해임된 만큼, 방통위는 최승호 새 사장과 구성원들이 방통위에서 부과한 재허가 조건과 함께 파업참가자와 비참가자 간 갈등 해소와 조직 안정화 노력 등의 권고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는지를 면밀히 살피고 감독해야 한다. 또한 최승호 사장은 MBC가 616점이라는, 지상파 재허가 심사와 종편 재승인 심사를 통틀어 최저의 점수를 받게 한 책임이 있는 김종국·안광한·김장겸 전 사장 시절 핵심 보직을 맡았던 경영진과 간부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에서부터 재허가 조건 이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SBS는 소유와 경영 분리를 통해 제작 자율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민영방송이다. 지난 10월 SBS 노사가 사장 임명동의제에 합의한 배경엔 보도·편성 등에 있어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이와 같은 제도적 장치 마련을 끊임없이 요구한 구성원들이 있다. SBS 구성원들은 소유와 경영 분리를 통해 보도·제작 자율성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방통위가 재허가 조건으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채택해 현재의 노사 합의 이상의 강제력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방통위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재허가 조건에 넣지 않고 ‘노사 합의 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권고 사항’에 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앞서 SBS 설립 허가 당시 정부는 SBS 사주에게 세전 이익 15% 사회 환원 조건을 특별한 법적 근거 없이 부과하는 등의 조처를 한 바 있다. 방통위의 이번 결정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상파 3사에 부과한 ‘조건’도 철저히 점검해야
방통위가 지상파방송 재허가에 부과한 “조건”들에 대해 철저한 점검 또한 필요하다. 특히 방송제작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을 위해 KBS와 MBC에 부과한 재허가 조건인 편성위원회 운영 활성화 방안(△노사 한 쪽의 요청만으로도 개최 △정례회의 원칙 △회의 결과 공지 또는 공개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아도 편성위원회 지속 가능 방안 마련 △이견 조정을 위해 시청자 위원회 또는 중재․자문위원회 활용 방안 마련)이나 그 외 재허가 조건을 성실히 이행하는지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당연히 재허가조건 이행 관련 점검결과는 공개되어야 하고, 만일 성실한 이행이 안 될 시에는 다음번 재허가에서는 원칙대로 재허가 거부 등의 조치가 취해져야 마땅하다.
투명성 등 제고를 위한 재허가·재승인 심사 필요
아울러 방통위의 재허가·재승인 심사 제도의 개선 또한 필요하다. 방통위는 이번 재허가 심사는 물론 앞선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도 모든 심사를 종료한 후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했다. 하지만 심사위원 명단 공개만으론 부족하다. 올해 초 종편 재승인 심사 후 언론개혁시민연대에서 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자료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특정 매체의 평가 점수가 심사위원에 따라 최대 340점이나 차이가 났다.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평가가 불가피하게 개입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최소한의 기준에 합의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심사 과정에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심사 과정에서 회의록을 속기록 수준으로 정리하는 동시에 심사 종료 후 평가 결과를 위원 개인별로 공개하고, 심사 결과에 대한 사후 평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현재의 재허가·재승인 심사 배점은 각 항목별로 기본점수 비중이 너무 높아서 실질적인 심사가 사실상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을 뿐 아니라, 또 평가(실적)보다 계획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에 장밋빛 약속만 제출하면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의 역할을 하겠다며 승인장을 받아들었던 다수의 종편들이 콘텐츠 투자 계획을 이행하지 않고 보도·시사프로그램 편중 편성과 돌려막기로 지금까지 방송을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통위는 심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지난 시기 재승인·재허가 당시 약속 사항 이행 여부를 심사에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재허가·재승인에 미달한 점수를 받은 방송사업자들이 적어낸 장밋빛 계획과 의지만 본다면 대체 왜 심사가 필요하단 말인가. <끝>
12월 2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