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유의선 이사 사의 표명에 대한 논평
유의선 교수, 진정성 있는 자기반성이 필요하다전국언론노조 MBC·KBS본부 총파업 닷새째인 8일 방송문화진흥회의 유의선 이사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사표를 제출했다. 유 이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파업이 이 정도 진행되는 데는 나 역시 (문화방송을) 관리감독하는 이사로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도 “문화방송 파업이 정당성 논란 소지가 많고 문화방송 안팎의 김장겸 사장 사퇴 요구는 (김 사장이) 재임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사퇴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토를 달았다. 또한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는 “언론노조 강령에 진보정당과 연계해 정치세력화 한다는 강령이 있다. 방송 공정성 따지려면 본인들부터 정파성에서 벗어나야”한다면서 뉴라이트 세력들의 악의적 주장을 그대로 옮겼다.
유의선 이사의 사퇴로 MBC사태의 해결은 한 발 가까워졌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우 인터넷매체를 통해 “절대 사퇴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유 이사가 파업을 이유로 때 늦은 책임론을 언급하고 더구나 파업의 정당성을 운위하며 토를 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오래 전에 파업은 예견되어 있었고 파업을 막을 수 있는 해결책 또한 여러 차례 제시되었지만 그 때마다 유 이사는 해결의 편보다는 해결을 방해하는 편에 서 왔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그동안 방문진에서 저질렀던 패악의 언행들을 되새겨 볼 때 “왜 이제 와서?”라는 의문과 함께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난해 5월 소수이사들이 극심한 노사갈등을 타개하기 위해 노사 대표를 출석시켜 입장을 들어보자고 제안했을 때 “(그 제안이)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방문진)가 청문의 권한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무책임한 주장을 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11월, MBC기자들이 시민들의 욕설을 듣고 쫓겨나는 봉변을 치르는 상황에서 소수이사들이 사장과 보도본부장을 출석시켜 입장을 들어보자고 했을 때도 “그분들(사장과 보도본부장)을 소환할 정도로 우리(MBC)가 편파적이고 왜곡보도고 허위보도인지 그런 것들을 저희들(다수이사들)에게 이야기해”달라는 황당한 태도를 보였다. 그랬던 유의선 이사가 느닷없이 파업을 이유로 관리감독자로서의 책임을 운위하고 거기다가 파업의 정당성 운운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지난 9월 5일 언론학회, 방송학회, 언론정보학회 소속 학자들 467명이 “권력의 공영방송 침탈에 일부 언론·방송학자들이 관여했다”고 비판했고, 최근에는 MBC 내 이화여대 출신 언론인들이 유 이사의 사퇴를 촉구한 일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유의선 이사의 사퇴는 진심으로 ‘MBC파업에 대한 책임’을 의식했다기보다는 지난 8월 1일자로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장으로 발령을 받은 유 이사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이해득실을 면밀하게 따져보고 나온 결과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리고 지난 수년간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주역이 학생들에게 언론 윤리를 가르칠 수 있을까. 유 이사가 방문진 이사로서 MBC의 관리·감독은커녕 MBC를 망친 경영진들을 은근히 비호하고 적폐청산을 방해한 증거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최근 MBC 노조에 의해 공개된 방문진 속기록에 따르면 유 이사는 올해 2월 MBC 사장을 뽑는 자리에서 권재홍 MBC 사장 후보에게 노조에 가입한 인력들이 ‘편향된 제작물’을 가져오거나 ‘합법적 태업’을 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물으며 언론노조 소속 구성원들이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 리 없다’고 매도했다.
또한 지난해 1월 “최승호·박성제를 증거 없이 해고했다”는 백종문 당시 MBC 미래전략본부장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MBC 사측의 부당노동행위가 사실로 드러났을 때도 유 이사는 ‘취중 발언’일 뿐이고 ‘노조를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라 ‘잘못된 노조를 바로잡는 행위’였다며 백 본부장을 옹호했다. 뿐만 아니라 백종문 본부장을 출석시켜서 진상을 들어보자는 소수이사들의 주장에도 유 이사는 ‘법의 판단을 지켜보자’는 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막았다.
안광한을 비롯한 MBC 경영진이 2012년 MBC 사내에 보안 프로그램을 배포해 직원들을 사찰한 혐의로 2016년 5월 대법원의 불법판결을 받았을 때도 유의선 이사는 경영진을 비호하는데 앞장섰다. 유 이사는 관련 경영진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소수 이사의 요구에 대해 “직원 개인의 호기심에 의한 행위에 불과하다”며 반대했다. 대법원 최종 판결문에도 “(경영진은) 개인정보를 일괄적으로 수집·보관·열람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거나 조장하여 방조한 공동불법행위자”라고 적시되어 있었지만 유 이사는 ‘형사가 아닌 민사소송’이므로 고의성이 없다는 터무니없는 궤변을 펼쳤다.
유의선 이사는 동일한 사안을 놓고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2016년, 경영평가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유의선 이사는 소수이사가 제출한 평가위원 명단은 모두 무시하고 일방으로 평가위원단을 구성하는가 하면 경영평가보고서의 여러 가지 편향과 왜곡에 대한 소수이사의 문제제기에도 “외부에 맡겼을 때는 외부 전문가들이 독립적으로 평가해 달라는 취지”라며 묵살했다. 그러나 2017년에 외부 전문가가 2016년 당시 김장겸 보도본부장(현 사장)에 대한 심각한 경영상의 문제점을 경영평가보고서에서 지적하자 유 이사는 정 반대의 논리로 경영평가보고서의 채택을 저지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MBC는 정권의 꼭두각시로 전락했고 공영방송이라고 언급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졌다. 그 일차적 책임은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며 그 배후에는 대주주 방문진이 있다. MBC파업은 망가진 공영방송을 복구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유의선 이사가 망가진 MBC 현실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을 느낀다면, ‘파업에 대한 책임’ 등 ‘거룩한’ 사퇴의 변을 운위할 것이 아니라 2년여의 시간 동안 방문진 이사로서 저질렀던 자신의 기회주의적 처신에 대해 철저한 반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끝>
2017년 9월 1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