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죽음의 외주 제작’, 이제는 말할 때가 됐다
박환성‧김광일 독립PD 사망 관련 추모 논평
등록 2017.07.2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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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멘터리 ‘야수와 방주’를 제작하던 도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박환성‧김광일 두 독립PD의 발인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박환성‧김광일 PD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현지 시간으로 14일,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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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는 사건이 발생한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21일이 되어서야 모든 행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독립PD협회는 두 독립PD의 사망사건이 이슈화되고 각 방송사 PD, 작가, 촬영감독, 엔지니어 등 각계각층의 방송계 인사들 및 일반 국민들이 모금을 시작한 후에야 EBS가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EBS는 회사 차원의 대책위원회도 따로 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커지면서 그동안 숨겨져 왔던 독립PD들의 열악한 처우와 방송사들의 왜곡된 외주 제작 관행 등 본질적인 문제들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환성 독립PD는 유명을 달리하기 불과 닷새 전에도 방송사의 횡포를 폭로했다. ‘EBS가 간접비 명목으로 독립PD‧제작사가 정부로부터 받은 제작 지원금 일부를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방송사들이 독립PD‧제작사와 외주제작 계약을 맺을 때 제작사가 정부기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제작비를 상당히 낮춰 산정하는데, 그 정부 지원금의 일부를 다시 간접제작비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비로 독립PD를 옥죄는 방송사들의 관행은 외주 제작 환경 전반에 퍼져 있다. 오로지 방송사의 수주에 생계가 달린 독립PD들은 ‘제작비 후려치기’에도 일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감사해야 하고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기 위해 열악한 제작 환경을 감내해야 한다. 부족한 제작비를 보충하기 위해 정부 지원, 기업 협찬에 지원하지만 운 좋게 지원금을 받더라도 위의 사례처럼 방송사에 간접비 명목으로 절반가량을 떼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방송사에서 책임자를 잘못 만나면 인격적 모독은 물론 물리적 폭행이 가해지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열악한 현실을 이겨내며 프로그램을 만들더라도 모든 저작권은 방송국으로 귀속된다.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광고나 해외 수출을 통해 수익을 올려도 단 한 푼도 만져볼 수 없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올렸던 고 박환성PD도 바로 이런 상황에서 사고를 당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그의 차량에는 먹다 남은 콜라와 햄버거가 나뒹굴고 있었다. 제작비를 아끼고 촬영시간을 벌기 위해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워가며 운전대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EBS의 간접비 요구에 ‘인내는 여기까지’라며 저항을 택한 와중에도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위해 분투했다. 안타깝게도 저항과 다큐멘터리의 끝을 보지 못한 채 후배 독립PD인 김광일 PD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이제는 방송사들이 꽁꽁 숨겨왔던 외주제작의 현실을 공론화해야 할 때가 왔다. 2016년 기준으로 KBS 50.1%, MBC 60.1%, SBS 69.4% 등 지상파 3사는 자체 제작 콘텐츠보다 외주제작 콘텐츠가 훨씬 더 많다. EBS도 외주제작비율이 35.2%에 이른다. 방송사들은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독립 PD와 제작사에 맡기면서도 독립PD의 처우와 제작환경 개선에는 관심이 없다. 


나아가 이 사건은 비단 방송사와 독립PD 및 외주제작사와의 갑을관계 뿐 아니라, 방송시장 전반의 구조적 문제점을 점검하고 해결책을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다매체, 다채널의 방송환경이 야기한 과다 경쟁의 시장, 그 속에서 유독 특혜를 받고 있는 종편의 문제 등을 포함해 종합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외주제작과 방송사간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혁파하기 위한 표준계약지침을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마련해야 하고, 이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도화하는 조치가 절실하다.

 

발인을 앞둔 박환성‧김광일 두 PD의 명복을 빈다. 동시에 두 PD를 희생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방송사들이 표준계약지침 등 공정하고 인간적인 외주제작 환경을 마련하길 강력히 촉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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