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논평]유엔인권보고서에 대한 국내 언론의 집단 오보에 대한 논평(2016.9.19)
삼성 호위대 자처한 언론들 부끄럽지 않은가
- 유엔인권보고서 왜곡한 언론들,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에 사과하라 -
지난 11일,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이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국내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연합뉴스의 <유엔인권보고서 “삼성의 백혈병 문제 해결 노력 인정”>(9/11, 10:58, https://goo.gl/eF48fm) 보도를 기점으로 생산된 해당 보도들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사이트에 등록된 ‘환경적으로 안전한 관리 방안과 유해화학물질·폐기물 처리에 관한 인권 영향과 방한 결과에 대한 특별보고관 보고서’에 “삼성이 취한 내부적 변화와 노력을 인정한다” “삼성의 협력과 개방성, 지속적인 대화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음을 강조했다. 9개 종합일간지 중 국민일보와 서울신문, 한국일보는 신문 지면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들 매체는 하나같이 관련 보도의 제목에 ‘삼성’ ‘유엔인권보고서’ ‘백혈병 해결 노력 인정’이라는 키워드를 끼워넣었다. 이 중 국민일보와 서울신문은 그나마 기사 말미에 보고서가 삼성전자가 보상과정에서 조정위원회 권고사항을 충실히 이행했는지 여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한국일보는 이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인터넷 언론사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반올림 상임 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가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연합뉴스는 유엔 인권보고서를 어떻게 왜곡했나>(9/13, https://goo.gl/eCepqC)에 따르면 11일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30여개 언론이 일제히 ‘삼성의 노력을 유엔이 인정했다’는 내용을 제목으로 뽑은 보도를 쏟아냈다. 임 변호사에 따르면 아시아경제의 경우 ‘반도체 백혈병 문제와 갤노트7 사태에 대한 삼성의 대응’에 대해 “논란이 되는 문제를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정면 대응함으로써 기업의 신뢰를 지키려는 그간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 셈”이라는 ‘낯 뜨거운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임 변호사는 또한 “수십 개의 언론이 똑같은 제목, 똑같은 내용으로 기사를 쏟아낸 것. 그것도 특정 기업에 아주 이로운 제목과 내용만을 복제하듯 찍어내는 것.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언론의 오보를 비판한 유엔인권이사회 보고서에 대한 한겨레 보도 갈무리(9/19)
이런 상황에서 15일, 이 같은 한국 언론의 보도가 사실상 완전한 오보였음이 유엔인권이사회 보고서 작성자의 입으로 입증됐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33차 유엔인권이사회 ‘유해화학물질과 폐기물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 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 작성자인 바스쿠트 툰작 유엔 특별 보고관이 한국 언론의 삼성에 대한 유엔인권이사회의 긍정적 평가 보도가 ‘잘못된 보도’라 지적한 것이다. 실제 해당 보고서는 삼성전자가 직업병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도 않은 채 입증책임을 피해자에게만 전가하고 있으며, 독단적으로 보상위원회를 꾸렸다는 지적과 우려가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 국내 언론이 일제히 제목으로 꼽아가며 주요하게 다룬 삼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보고서 결론 부분에 단 한 줄짜리 외교적 수사의 형태로 등장할 뿐이다. 국내 언론은 뻔뻔스럽게도 UN인권이사회가 공식 채택해 앞으로 전 세계 정부, 기업, 언론 등이 검토하게 될 보고서의 내용을 심각하게 왜곡함으로써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연합뉴스를 비롯한 ‘오보 언론’ 중 그 어느 곳도 정정보도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면에 삼성에 유리한 내용의 보도를 검증 없이 내놓은 국민일보와 서울신문, 한국일보 역시 침묵을 이어나가고 있다. 인터넷언론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보도 양상은 사실검증 없는 ‘묻지마 기사’를 복제․양산해내고 있는 한국 언론의 참담한 현실과 언론인들의 무책임, 무치,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그동안 한국 언론은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목숨 건 절규’에는 침묵한 채 ‘삼성의 호위대’로 자처해 왔다. 사회의 소금이요 목탁이라는 언론의 역할과 기능을 돈과 맞바꿔 먹은 비굴한 길을 걸어온 것이다. 한국 언론은 이제 ‘사실’마저 왜곡하는 막다른 골목까지 와 있다. 게다가 이런 국내 언론의 문제가 이제 유엔 특별보고관의 입을 통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셈이니, 국제적 망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마디로 한국 언론의 자본에 대한 장악과 부패의 심각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수준이 된 것이다. 내부의 뼈를 깎는 혁신 없이는 구제가 불가능하다. 그 첫 출발은 본말전도의 왜곡으로 국민을 기만한 연합뉴스와 이를 그대로 받아쓴 언론이 즉시 오보를 정정하고, 이 같은 보도로 인해 고통 받은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끝>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