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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국가정보원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기자 명의 사칭 해킹시도 의혹에 대한 논평(2015.7.14)
등록 2015.07.15 09:28
조회 734

 

언론, 똑바로 보도하라! 
- 국민의 ‘말과 글’ 길을 훔친 국가정보원 해킹 의혹, 낱낱이 밝히고 책임지라-

 

 

 온 나라의 소통을 막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했다. 국가정보원이 수억 원을 들여 컴퓨터‧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을 사들였다. 게다가 기자의 명의를 사칭해 해킹을 시도한 정황까지 포착되었다. 이탈리아의 해킹업체 ‘해킹 팀(Hacking Team)’에서 유출된 사내 자료에는 ‘대한민국 육군 5163부대’가 고객명단에 올라있다. 사실상 국가정보원으로 밝혀진 이 고객은 2012년 ‘해킹 팀’으로부터 컴퓨터‧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2년에 대선이 있었다는 점에서 해킹 프로그램이 선거에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 ‘육군 5163부대’는 6‧4 지방선거가 있는 ‘6월’을 언급하며 스마트폰 해킹 공격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국정원이 또 다른 선거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선거개입까지는 아니더라도 해킹 프로그램의 목적이 국내 사찰용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육군 5163부대’는 ‘해킹 팀’에 국내 스마트폰의 해킹 가능 여부를 지속적으로 문의했고, 카카오톡 해킹 기능 개발을 요청하기도 했다. ‘육군 5163부대’는 2012년 프로그램을 구입한 이후 올해까지 5번에 걸쳐 기능 업그레이드와 유지‧보수 서비스를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거래에 소요된 예산은 8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국정원이 언론사 기자의 명의를 사칭하여 국내 인사를 대상으로 해킹을 시도한 정황도 포착됐다. 유출 자료에는 ‘육군 5163부대’가 문서파일에 스파이웨어를 심어달라고 의뢰하는 메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천안함 1번 어뢰 부식사진 의문사항 문의(미디어 오늘 조현우 기자)”라는 제목의 이 파일에는 천안함 1번 어뢰에 대해 문의하며 의견을 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박사님’이라고 지칭된 수신자가 누구인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정황상 천안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온 전문가일 것으로 추정된다. 악성 코드 첨부 파일의 송신자로 꾸며진 ‘조현우 기자’는 <미디어 오늘> 조현호 기자의 이름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국정원은 <미디어 오늘> 기자를 사칭해 천안함 전문가의 컴퓨터를 감청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국가가 국민의 소통을 마구잡이로 사찰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깊은 분노와 우려를 표한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3년 대한민국 인터넷 이용자는 인구대비 84.8%로 4천만 명을 넘어섰다. 스마트폰을 보유한 가구의 비율은 79.7%를 기록했다. 2013년 국민 이메일 이용률은 60.2%이며, SNS 이용률은 55.1%이다. 한마디로 절대 다수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이런 자유로운 국민의 소통을 제멋대로 훔쳐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국 언론의 대참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국가가 기자를 사칭해서 이메일로 스파이웨어를 심으려 했다는 것은, 그 의혹만으로도 언론의 취재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는 일이다. 

 

 신홍범 전 조선자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1986년 민언련이 기관지 <말>을 통해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무엇보다 ‘말’을 하게 되어 있는 사람이 말을 할 수 없었다. 도청 때문에 전화도 맘 놓고 할 수 없었고, 밖에서도 주위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말해야만 했다. 사람이 ‘사회적으로 나누는 말’인 언론은 재갈이 물린 채 죽어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엄혹한 언론말살시대를 표현한 이 글이 2015년 대한민국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특히 이 사안에 대한 언론보도 현실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이번 사안은 오마이뉴스가 7월 9일 보도했고, 미디어오늘 등 매체가 집중 부각했으나 주요 신문과 방송은 이 사안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신문은 오늘(14일)까지 한겨레가 11건, 경향신문이 5건 보도했지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각 1건씩만 보도했고, 동아일보는 침묵하고 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방송사 저녁 종합뉴스에서 JTBC가 11건(10일~13일)을 보도한데 비해, 지상파 방송3사와 TV조선, 채널A 모두 단 한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언론말살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너무 기가 막혀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보수든 진보든 제정신을 가진 언론이라면 마땅히 제기해야 할 의제인 국가비밀정보기관에 의한 전방위적인 국민사찰 의혹이 근거 있게 제기되고 있는, 이런 참담한 언론 상황을 목도하고서도 마치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닫고 있는 그대들에게 “당신들이 정녕 언론기관이냐”고 많은 국민들이 준엄하게 묻고 있다.

 

 대답하라! 그대들은 정녕 관급 기사나 앵무새처럼 읊어 대면서 해야 할 보도는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엉터리보도나 일삼는 한낱 “기자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을 마냥 감내하고 있으려는가? 이러고도 “기자”라고 말하고 다닐 셈인가? 이러고도 “언론”이라고 자칭하고 다닐 셈인가? 보도 현장에 있는 언론인들의 대오각성과 진정성 있는 분발을 촉구한다. 당신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정원 해킹프로그램 구입과 기자 사칭 해킹 시도 의혹은 결코 유야무야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은 더 이상 무소불위의 국가정보원이 국가사찰원이 되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롭고 온전한 ‘말과 글’의 길이 막힌 국민이 ‘사이버 망명 대란’이나 ‘텔레그램 망명’ 수준을 넘어선 큰 불안과 분노를 느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청와대와 국회는 이번만큼은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사안임을 똑바로 인식하고 신속하게 철저한 진상조사를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라. 

 

 그 핵심은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검찰의 수사니 국정조사니, 아니면 청문회니 상설특검이니 하는 말들은 부질없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야당 또는 시민사회가 추천하는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이 필수불가결하다. 또한 지난번 국정원 등에 의한 총체적 관권부정선거 사건 때에도 거듭 밝혔지만, 국가정보원에 대한 해체 수준의 전면적 개혁이 필수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노력, 민주주의를 향한, 진실규명을 향한, 이 장엄한 투쟁의 행진은, 다름 아닌 주권자인 국민들의 몫임을 엄숙히 선언한다.   
 

2015년 7월 1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