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KBS새노조 성명] 추적60분에 칼을 휘두른 방통심의위원들, 당신들은 누구인가?추적60분에 칼을 휘두른 방통심의위원들,
당신들은 누구인가?
-[추적60분] ‘경고’ 조치
한 치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예상된 결과라 할지라도 분노와 어이없음이 혼재된 감정은 누그러뜨리기가 힘들다.
어제(11/21)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9/7 방송, 연출 남진현PD)편에 대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와 제11조(재판 중인 사건 보도 제한)를 위반했다며 재허가시 감점대상인 ‘경고’를 의결했다. 9명의 방통심의위원 중 야권 추천위원 3명은 ‘문제없음’, 여권 추천위원 6명은 ‘경고’ 의견을 낸 결과다.
권혁부, 1심에서 무죄 판결받은 유씨를 간첩이라고 단정
6명의 여권 추천위원이 ‘경고’로 결론을 내면서 근거로 나열한 의견들은 향후 언론학 교과서에 길이길이 기재될 명언(?)들이다. 그 중 발군은 단연 권혁부 부위원장이다.
그는 소위에서 논의할 때부터 줄곧 가장 강경한 제재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이날도 ‘관계자 징계와 경고’라는 가장 강경한 주문을 했다.
권혁부는 방송에서 다룬 탈북자 유우성씨 사건에 대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법적 혜택을 받으며 간첩활동을 한 사건”이라며 유씨를 간첩이라고 단정했다. 기가 찰 일이다. 1심 재판부는 국정원이 간첩 혐의의 근거로 제시한 7가지 항목에 대해 모두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간첩이라고 단정짓는 것인가?
그의 망발은 이 뿐이 아니다. (유씨는) 한국사람도 아니다, (추적 제작진은) 간첩을 옹호했다는 등의 헛소리를 공식 회의석상에서 끊임없이 쏟아냈다. 사실도 아닐뿐더러 의견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말들이다. 사람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도리어 권혁부는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을 유씨와 추적 제작진 모두에게 가한 셈이다.
권혁부를 비롯한 다수의 여권 추천위원들은 방송 내용이 언론의 자유를 벗어나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많았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1심 재판부가 무죄로 선고한 사건을 유죄라고 단정 짓는 권혁부의 태도야말로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권혁부와 박만, 허위사실에 기초해 ‘경고’ 결론
기본적인 팩트 자체를 허위로 구성해내는 권혁부의 말들은 이뿐이 아니다. 그는 ‘추적 제작진도 일부 공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거짓이다. 며칠 전 추적 제작진이 방통심의위에 출석해 제작진의 입장을 밝히는 과정에서 권혁부는 집요하게 “일부 공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죠”라며 끊임없이 제작진의 문제 시인을 유도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결코 공정성 문제에 대해 시인한 바가 없다. 그의 희망이 빚어낸 허구일 뿐이다. 권혁부는 자신의 희망을 하나의 사실로서 확정시키고 들이댄 것이다.
박만 위원장 역시 최종적으로 ‘경고’라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말도 안되는 억지 논리를 나열했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하여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행태는 권혁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만은 “추적 60분은 한쪽의 주장만 사실로 인정해 버려 왜곡된 여론을 형성”했다고 지적했다. 거짓이다. 방송에서는 줄곧 국정원의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의 내용과 유씨 변호인측의 주장을 1대1로 매칭시켰다. 그 중 공소사실에 문제가 있다고 제작진이 판단해 질의한 내용에 대해 서면으로 제출한 국정원 측의 주장과 변호인 측의 주장을 같은 비중으로 다루었다. 그것을 모두 전제한 후 거기서 드러난 국정원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박만의 주장처럼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한쪽의 주장만 사실로 인정”하는 편파 방송을 내보낸 적이 없다. 박만 역시 제작진과 KBS의 명예를 허위 사실에 기초해 훼손했다.
“국정원은 아직 재판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상세한 자료를 내놓을 수 없었”다는 박만의 지적은 국정원 대변인조차도 하지 않을 말들이다. 역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2차례에 거쳐 제작진에게 서면 답변서를 보내왔다. 모두 1심 선고가 나온 직후다. 재판이 진행중이라 자료를 내놓을 수 없었다는 주장은 한없이 국정원을 비호하고 싶은, 그래서 한없이 추적 제작진을 비난하고 싶은 박만의 바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라도 간첩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여권 추천위원 6명 중 2명은 기자 출신, 2명은 언론계열 학과 교수, 2명은 법조인이다.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추적이 문제 있다고, 심각한 법정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런 일에 내성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 논의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멘붕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심한 일이다. 혼란한 현재의 시국이 단순히 어디 한두 군데의 문제에서 비롯된 게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신문사 기자를 거쳐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는 박성희 위원은 “(방송이) 유씨가 1%라도 간첩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어찌 보면 어제의 코미디는 박성희 위원의 이 한마디로 정리될 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절차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른다. 법원은 검사가 입증하는 증거에 의해서만 유죄의 심증을 형성해야 하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무죄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에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무죄를 선고해야한다는 의미다.
유씨가 1%라도 간첩일지 모를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는 게 아니라 아닐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추적60분의 내용은 그랬다.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법체계도 부정하는 방통심의위원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2013. 11. 22.
전국언론노조 KBS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