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여야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 타결에 대한 논평(2013.3.18)17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이 타결됐다. ‘방송 공공성 보장’이라는 가치를 두고 막판까지 최대 쟁점으로 꼽혔던 종합유선방송국(SO) 관할권을 비롯한 IPTV·위성방송 등 뉴미디어 관련 업무는 결국 미래창조과학부 이관으로 결론 났다.
여야 합의안에 따르면, △SO와 뉴미디어 관련 업무의 인·허가 업무와 관련한 법령 제·개정 시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전 동의 △여야 동수의 ‘방송 공정성 특별위원회’구성해(위원장 민주당) 공정한 시장 점유를 위한 장치를 마련,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 논의, 방송의 제작·편성의 자율성을 보장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외에 △보도의 공정성 확보 및 SO 채널배정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관련법은 문방위에서 논의 후 4월에서 처리 △IPTV 사업자가 직접사용 채널 및 보도채널 등을 운용할 수 없도록 19대 국회 임기중 법 개정을 하지 않는다 △주파수와 관련해 방송주파수는 방통위, 통신주파수는 미래부에서 관리 △방송발전기금의 관리 및 편성권은 미래부장관과 방통위원장이 공동관장 등을 합의했다.
여야 타협안을 보면 ‘산업논리’를 위시한 박근혜 정부의 미래부 체제에서 방송시장의 황폐화, 대기업 중심의 방송시장 재편 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CJ특별법’으로 불리는 SO 권역 규제와 매출규제가 풀리거나, IP망을 이용한 위성방송 서비스의 전면 허용, 삼성전자 등 단말기 업체들의 방송플랫폼 시장 진출 등 미래부가 ‘산업진흥’ 논리 속에서 각종 규제들을 완화시킨다면 방송시장이 뒤흔들리는 건 불 보듯 뻔한 결과다. 또한, 방송시장을 유료-무료로 나눠 유료방송에 특혜를 주고, 대기업들이 방송플랫폼을 장악할 수 있는 우려를 피할 수도 없다. 우리가 보도건 비보도건 방송정책을 온전히 방통위에 남겨두어야 한다고 시종일관 외쳤던 것은 그 같은 우려들 때문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은 ‘SO 이관 반대’ 주장을 펼치다가, 갑자기 원칙을 저버리고 미흡하기 짝이 없는 결과물을 얻는데 그치고 말았다. SO와 뉴미디어사업에 대한 공적 규제의 권한을 미래부에 몽땅 내주면서 얻은 것이 고작 SO의 인허가 업무와 관련한 법률 제·개정의 방통위 사전 동의다. 당초 전문가들과 언론시민단체에서는 SO 신규 허가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SO 인·허가 업무가 쟁점이 아니며, SO 법률 제·개정을 비롯한 SO관련 업무 이관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애초에 민주당이 SO를 왜 내주면 안 되는 지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도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심지어 합의안에 ‘방송공정성 보장’을 위한 장치로 유일하게 제시된 ‘방송 공정성 특별위원회’ 등은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방송 공정성 특위의 주요 논의 사항으로 거론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이나 ‘방송의 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안’ 등은 이미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약속했던 것으로 정부조직법 합의안과 상관없이 공약이행을 위한 조치로서 벌써 마련됐어야 할 장치다. 공정방송을 위한 핵심적 현안 과제인 MBC 정상화를 위한 합의 이행에 관한 사항이 빠져 있다는 것도 이번 타협안의 치명적 문제점이다.
우리는 민주당이 방송의 공공성 보장을 위해 무엇을 확보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비유하자면 현찰을 내주고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약속어음을 받은 형국이나 다름없다. 민주당은 지금부터라도 방송의 공공성 사수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아울러 ‘식물여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에도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정부조직법에서 새누리당의 입장은 무엇이었는지 되묻고 싶다. 여야 합의 과정동안 새누리당은 청와대와 야당의 갈등에 대해 중재는커녕 ‘청와대 눈치보기’에 주력하며 스스로 여당으로서의 존재감과 신뢰감을 내동댕이쳤다. 국민의 뜻을 헤아리기보다 청와대 ‘입’만 바라보며 대변인노릇을 하는 여당에게 국민은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갖지 못하게 됐다.
이번 타협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당의 실종, 정치의 실종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박근혜 정부의 ‘독선’에 있다. 이번 47일간의 정부조직법 협상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오만과 불통의 정치를 보여주었다. 지난 4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SO는 절대 이관할 수 없다”는 원안고수 방침을 선언한데 이어, 5일에는 여야 협상에 개입해 ‘SO 방통위 존속’ 잠정 합의안을 단번에 뒤집으며 자신의 안을 그대로 수용할 것을 겁박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합의 직전인 15일은 야당이 빠진 ‘반쪽 회동’을 주도해 “SO의 미래부 이관”을 거듭 주장하며 자신의 입장을 밀어붙였다. 정부조직법 난항과 국정 파탄의 최대 책임자로서 여야의 갈등 국면에 ‘타협’을 촉구하거나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제 입장만 독불장군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독선’이자 ‘독재’에 가깝다.
전파는 국민의 자산이다. 이를 운용하는 방송정책의 책임과 방송 공공성 보장에 조금이라도 흠결이 있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원점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주지 않는다고 국민 앞에 생떼를 부리거나, ‘타협’의 여지도 주지 않고 ‘여야’를 압박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 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타협안은 방통위의 사전동의제, 방송 공정성 특별위원회 구성 등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방송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방송정책의 미래부 이관이 방송공정성 유지는커녕 방송시장의 황폐화와 방송장악을 초래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방송공정성 보장은 방송정책의 기본중의 기본이다. 이를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 순서이다. <끝>
2013년 3월 1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