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KBS의 역사다큐 <격동의 세월> 신설에 대한 논평(2013.3.6)KBS 사측이 추진 중인 <격동의 세월>은 두달 여 간의 내부 논의 과정에서 편성 실무진들의 반대가 지속되자 제작 부서를 다큐국에서 외주제작국으로 바꿔 비밀리에 외주제작사를 선정하는 꼼수를 부렸다. 그동안 KBS는 시사나 역사 관련 프로그램은 사안의 중요성과 민감성을 감안해 자체 제작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현대사와 같이 평가가 엇갈리고, 첨예한 대립이 발생하는 사안을 외주제작사를 통해 제작하겠다고 하는 것은 내부 견제를 피해 갑을 관계에 있는 외주제작사를 떡 주무르듯이 하겠다는 의도 아니겠는가. 구린 구석이 없다면 떳떳하게 일반적인 절차와 제작 방식대로 추진하면 될 일을 굳이 내부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비정상적인 제작 방식을 밀어붙이는 속내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절차와 형식의 문제와 더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격동의 세월> 내용이 ‘현대사 뒤집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이미 KBS는 2011년 6월 24일과 25일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면서 독립군 뿐 아니라 이들에게 협조한 조선인들까지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해방 후 한국군 장군에 올라선 백선엽 씨를 미화한 <전쟁과 군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해 ‘친일 미화’라는 반발을 불러온 바 있다. 이어 9월 28일 부터는 3부에 걸쳐 ‘이승만 우상화’ 다큐멘터리를 내놓아 독립유공자 단체와 사월혁명회 및 언론시민단체로부터 거센 질타를 받았다. KBS는 ‘친일독재 찬양방송’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근현대사 왜곡에 앞장서 ‘공영방송’의 위상을 끝 모르게 실추시켰다.
그런데 당시 그 프로그램들을 총괄했던 길환영 콘텐츠본부장이 현재 KBS 사장으로 앉아 있다. KBS 사장 길 씨는 두 프로그램을 총괄한 것은 물론 항일음악가 정율성 선생 방송불방 사태의 최종 책임자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길 씨는 일선 PD들에 의해 친일매국노 ‘이완용’에 빗대어 ‘길완용’이라 불려지는 수모를 겪었고, 2011년 2월 본부장 신임 투표에서는 불신임률 88%라는 KBS 사상 역대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그런 부끄러운 공적을 인정받아 그해 9월 9일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현재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4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강경한 어조로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한 발언을 믿고 싶다. 하지만 KBS가 계속해서 정권에 대한 아부를 위해 역사적 진실을 뒤집고 왜곡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권이 KBS를 방송법이 정한 바대로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정권의 하수인으로 계속 장악·통제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역사왜곡의 ‘박비어천가’를 부르는 KBS의 파렴치한 작태는 KBS 자신에게도, 박근혜 정부나 새누리당에게도, 우리 국가와 국민에게도 누가되고 재앙이 될 뿐이다. 하지만 길환영 씨가 사장으로 있는 공영방송 KBS가 계속해서 이런 행태를 보인다면 그날의 담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기발언으로 치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KBS가 더 이상 공영성을 내팽개치지 않도록, KBS의 경영진이 더 이상 정권의 하수인 노릇에 전전긍긍하지 않도록 방송 독립성과 공정성의 원칙을 더욱 분명히 세우고 밝힐 것을 촉구한다. 또한 길환영 사장에게도 경고한다. <격동의 세월> 강행은 국민들에 대한 도발이자 배반 행위이다. <격동의 세월>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청부받은 ‘역사왜곡 다큐’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그 강행추진을 당장 중단하라.
그것을 계속 강행한다면, 우리는 ‘대통령 청부 다큐’를 저지하기에 위해 나아가 우리 근현대사 왜곡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독재회귀와 퇴보를 막기 위해 각계각층 국민들과 함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해 투쟁할 것이다. <끝>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