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KBS의 ‘이승만 미화·찬양 다큐멘터리’ 방송을 규탄하는 논평(2011.9.29)
등록 2013.09.2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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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들러리’ 되어 국민과 싸우겠다는 KBS
- 미화·찬양으로 넘쳐난 ‘이승만 다큐’, 공영방송의 치욕이다
 
 

28일 KBS가 기어이 ‘이승만 찬양 방송’을 시작했다.
KBS의 ‘이승만 다큐멘터리’ 제작 사실이 알려진 뒤 독립유공자 단체, 4.19혁명 관련 단체, 언론단체 등 시민사회는 거세게 반발해왔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이승만에 대해 6억이 넘는 돈을 들여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뉴라이트 세력 등의 ‘이승만 우상화’ 작업에 부역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그러나 KBS는 “이승만의 공과를 균형있게 다루겠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이승만 다큐를 밀어붙였다. ‘공과를 모두 다루겠다’는 KBS의 강변을 믿지는 않았지만, 28일 3부작의 첫 방송분을 보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이날 방송은 이승만이 배제학당에서 공부를 시작한 때부터 미국 망명생활을 거쳐 해방 후 귀국할 때까지의 과정을 다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시기 이승만의 행적 가운데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도 많고, 비판적인 평가도 많다. 오직 ‘미국의 선처’에 의존한 그의 친미노선과 ‘외교독립론’, 공적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미국 내 한인조직에 분열을 가져온 점, 임시정부 대통령 참칭, 무장독립운동 노선에 대한 비난, 독립운동가들의 변호 거부 등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언급하기 어렵다. 그러나 KBS는 이승만의 이런 행적들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해명’해 주면서 ‘훌륭한 교육자·민족지도자’로만 미화했다.
 
KBS는 이승만이 배제학당과 협성회를 거치며 미국 민주주의의 자유사상, 평등사상, 법치주의 사상에 매료되었다며 ‘독립운동가의 성숙 과정’으로 상세히 다뤘다.
당시 국내외에서 일고 있던 다른 독립운동 노선들과는 달리 오직 ‘친미외교’에 의존했던 이승만의 노선에 대해서는 “한반도를 노리고 있는 러시아나 일본이 아닌 미국을 파트너로 택한 선택은 탁월했다”는 교수의 평가를 붙여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또 친미외교노선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 데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 없이 ‘이승만이 국내와 해외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거나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됐다’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붙이기도 했다.
KBS는 이승만이 장일환·전명운 의사의 재판 통역을 거부한 것도 적극 감쌌다.
장일환·전명운 의사는 1908년 ‘한국인들이 일본의 지배를 원하고 있다’는 거짓 기사를 기고한 ‘스티븐슨’을 암살한 독립운동가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한다던 이승만은 “기독교인으로서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들의 재판 통역마저 거부한 것이다. 이승만의 이런 처신은 “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천명한 ‘의거’를 단순히 ‘살인’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종교적’ 이유를 앞세워 그들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샀다.
그러나 방송은 이승만의 처신이 “사실은 미국 내 여론 때문이었다”면서 암살에 대한 미국사회의 여론이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를 구구하게 설명했다. 또 “미국 중심의 현실적 사고를 가졌던 이승만은 늘 자신의 선택한 것이 옳다고 믿었다”, “이러한 선택 때문에 이승만은 그의 정치 역정에서 종종 비판이나 오해를 받게 됐다”는 나레이션을 입혀, 이승만의 행보를 ‘현실적 사고’로, 이에 대한 비판을 ‘오해’인양 다뤘다.
 
이승만의 이른바 ‘대통령 참칭 논란’에 대해서도 KBS는 ‘오해’로 몰았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각국에 서한을 보내 안창호 선생 등으로부터 “대통령 행세를 하지 말라”는 질책을 받았다. 당시 이승만은 대통령 명칭을 바꾸지 않겠다며 “우리끼리 떠들어서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 소문이 세상에 알려지면 독립운동에 큰 방해가 있을 것이며, 그 책임은 당신들에게 돌아갈 것이니 떠들지 말라”는 적반하장격의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KBS는 영어로는 국무총리나 집정관총재도 미국식으로 번역하면 ‘프레지던트’가 된다면서, 이승만의 대통령 참칭 논란을 번역하는 과정에서의 ‘해프닝’ 정도로 다뤘다.
 
그밖에 한인들이 이승만에게 모아준 독립운동자금의 사용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지적, 이승만이 이를 유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 등에 대해서는 아예 다루지 않았다.
또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한인학교’를 세워 한글과 우리역사를 가르쳤다며 “독립에 근본이 됐다”고 평가했지만, 이 학교에서 ‘반일’ 내용을 전혀 가르치지 않았고 이승만이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천명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렇게 KBS는 이승만에 대해 이미 알려진 행적에 대해서조차 객관적인 조명을 포기하면서, 어떻게든 그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려고 안간힘 쓴 모습이 역력했다.
예를 들어 이승만이 감옥에서 쓰다가 중단한 영한사전이 “영어사전으로써의 가치 뿐만 아니라 당시 한글을 연구하는 데도 큰 가치”가 있다거나, 그가 미국에서 쓴 박사논문이 대학에서 출간됐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그게 대학에서 출간됐다는 것은 학술적으로 의의가 적지 않다”는 등의 내용이다.
방송 마무리에는 “33년간 펼쳤던 이승만의 항일투쟁은 끝났다”며 이승만의 귀국 전 행보까지를 ‘33년 항일투쟁의 역사’라는 한마디로 정리한 뒤, “그의 앞에는 해방공간이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투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였다”며 이후 이승만의 행보가 항일투쟁의 연장선에 있는 양 예고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KBS는 메인뉴스를 통해서까지 ‘이승만 다큐’를 소개하며 이승만 미화·찬양에 나섰다. <미에 독립보전 요청>(정인성 기자)은 오직 이승만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만 담았는데, 특히 “4.19 당시 이승만은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을 방문해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울먹였던 것으로 당시 화면을 통해 드러났다”며 이승만이 울먹이는 듯 한 화면을 비춘 대목은 압권이었다.
4.19의거가 이승만의 독재에 항거해 일어난 일이었고, 당시 이승만 정권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수많은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런데도 KBS는 이승만의 울먹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승만은 몰랐으니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다.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 그의 독립운동 노선의 한계, 독립운동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납득할 수 없는 처신, 반민특위 해산, 민간인 학살, 독재 등에 대해 새롭게 평가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사회에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며 역사를 뒤집으려는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 바로 친일과 독재에 뿌리를 둔 수구기득권 세력들이다. 이들은 이승만의 동상을 세운다는 둥, 역사교과서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둥 어떻게든 친일파와 독재자들을 정당화시켜 자신들에게 없는 역사적 정통성을 만들어보겠다고 안간힘이다.
여기에 부화뇌동한 KBS의 ‘이승만 찬양 다큐’는 이런 세력들에게 부역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흔들고 역사를 뒤집는 것이다. KBS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KBS가 친일파 백선엽 미화, 이승만 찬양으로 역사와 국민 앞에 저지른 죄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의 역사로 남아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끝>
 
 
 
2011년 9월 29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