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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고대영 보도본부장, 민경욱 앵커 관련 위키리크스 폭로 내용에 대한 논평(2011.9.15)
등록 2013.09.2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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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부터 공영방송 앵커까지… ‘대한민국’ 어디로 가나

 
 
위키리크스에 KBS 직원들이 ‘등장’했다.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지난 8월 공개한 미 국무부 비밀문서에 따르면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KBS 고대영 보도본부장(당시 해설위원)과 민경욱 <뉴스9> 앵커(당시 뉴스편집부기자)가 주한 미국대사관 측에 이명박 후보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 대사관이 작성한 이 문건들은 ‘KBS 고위급 기자, 한나라당의 필연적 승리를 보다’(2007.9.19), ‘KBS기자: 실용적이고 수줍은 이명박’(2007.12.17) 등등 제목만 봐도 그 내용을 짐작케 한다.
고대영 씨는 대선을 앞둔 한국 정세에 대한 일종의 ‘브리핑’을 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명박 후보의 대선 승리를 전망하며 그 요인으로 한국 사회의 ‘약화되는 민족주의’ ‘북한에 대한 증가하는 의구심’ ‘경제성장에 대해 커지는 요구’를 꼽았다고 되어있다. 그는 또 ‘이명박은 보수 정당 내의 진짜 지지자나 권력 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해 박근혜를 저버리고 독립적인 정치 정당을 구축할 가능성은 없다’는 등의 평가를 전했다고 한다. 민경욱 씨의 경우는 이명박 후보의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알게 된 그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제공한 것으로 나와 있다.
 
14일 문건의 내용이 알려져 파문이 일자 KBS는 이들과 미 대사관 측의 만남이 “순전히 개인적 만남”이며 두 사람의 발언 내용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 씨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다큐의 취재과정의 일부를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고 만난 술자리에서 얘기한 게 문제가 되느냐”, “자신이 조사한 부분을 저의 이야기와 얼기설기 엮은 것 같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KBS의 이런 주장은 구차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미국 측의 표현대로 고대영, 민경욱 두 사람은 공영방송의 ‘고위급 기자’들이며, 이들이 만난 사람은 한국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미국 관리들이다. 과연 이들의 만남과 발언을 ‘사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한국의 대선 전망과 유력 후보에 대한 시시콜콜한 정보 등이 ‘사적인 대화’의 내용으로 적절한가? 미국 측이 두 사람과의 만남과 이들의 발언을 ‘사적인 것’으로 여겼다면 비밀문서로까지 남겼을 것인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두 사람은 ‘공영방송 고위 기자들을 출처로 하는 한국 정세와 대선 후보 정보’를 미국 측에 제공한 것이다. 
심지어 문건은 고 씨를 “빈번한 대사관 연락책”(frequent Embassy contact)이라고 표현하면서 “다양한 주제에 관한 이 사람의 통찰력은 정확한 것으로 판명됐다”(insights on a wide range of topics have proved accurate)고 ‘우수’ 평가를 내리고 있다. “딱 한번 만났다”는 KBS의 주장과 어긋날 뿐 아니라, 고 씨가 KBS에서 일하면서 얻은 여러 정보를 정기적으로 미국 측에 제공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언급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국민들은 꼬박꼬박 ‘수신료’를 내어 ‘미국 정보원’의 월급을 주고 있었던 셈이다.
백번 양보해 두 사람의 발언을 ‘미국이 다소 과장한 측면’이 있다 치더라도 이들의 행위는 언론윤리의 기본에서 벗어난다. KBS 윤리강령도 “취재·제작 중에 취득한 정보는 프로그램을 위해서만 사용한다”(1조2항), “KBS인은 공영방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취재·보도·제작의 전 과정에서 여타 언론인보다 더욱 엄격한 직업 윤리와 도덕적 청렴이 요구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선 후보 관련 정보, 다큐멘터리 제작과 방송 계획 등을 외국 관리에게 말한 것은 이런 윤리규정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그동안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대한민국 대통령, 대통령의 친형, 고위 관료들의 ‘친미사대주의적’, ‘매국적’인 언행에 국민들은 큰 상처를 받았다. 우리사회의 ‘메인스트림’이라는 사람들이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보수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공영방송’의 보도책임자와 메인뉴스 앵커라는 사람들까지 미국 관리들을 만나 우리나라 얘기를 떠벌였다고 하니 도대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두렵기까지 하다.
이번 사태는 KBS가 ‘정권 나팔수’ 노릇을 하고, ‘도청의혹’을 받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다. KBS는 국민의 신뢰를 잃어 버린지 오래고, 정상적인 ‘공영방송’도 아니다. 그러나 KBS가 ‘한국’ 방송이라면 이번 사태를 “개인적 만남” 운운하며 덮고 가서는 안된다. 두 사람을 보도본부장과 앵커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충격에 휩싸인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이 조차 하지 않겠다면 KBS는 그야말로 마지막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끝>
 

2011년 9월 15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