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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열린음악회>의 ‘관제방송’ 행태에 대한 논평(2010.2.1)
등록 2013.09.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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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제 음악프로그램도 ‘정권홍보’인가
 
 
잇따른 ‘관제방송’ 행태로 지탄을 받고 있는 KBS가 또 다시 <열린음악회>를 통한 정권 홍보에 나섰다. 1월 31일 KBS는 한전 협찬으로 “한국원전 수출 기념” <열린음악회>(1TV, 책임PD권영태)를 방송했다. 지난 해 연말 이명박 정권이 ‘최대 치적’으로 홍보해 온 ‘원전 수출’을 음악 프로그램에서 거듭 띄우고 나선 것이다. 이날 <열린음악회>는 진행자의 멘트, 선곡 등등 프로그램 전반이 ‘원전 수출의 대업을 찬양’하는 내용과 구성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행자 황수경 씨는 프로그램 틈틈이 원전 수출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를 부각했다. 그는 원전 수주가 “국가적 쾌거”라며 “아랍에미리트에 400억달러 규모, 우리 돈으로 47조원에 달하는 원전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 주장과 달리 실제 원전 수주액은 200억 달러고 나머지 200억 달러는 별도 수주를 따야 하는 금액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진행자는 정부의 ‘경제성과 부풀리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어진 멘트에서는 “앞으로 우리 경제 전반에 얼마만큼의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할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번에 우리가 이뤄낸 성과는 지난 30여 년간 피와 땀으로 얼룩진 그 열정의 결과…진정한 승리”라며 낯 뜨거운 표현으로 원전 수주를 극찬했다.
마지막 멘트에서도 “요즘 세계적으로 연료고갈?기후변화의 대안으로 원전이 급부상하면서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다”며 “우리가 그토록 염원했던 원전 수출의 물꼬가 터진 만큼 앞으로 이 기회를 잘 살려서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도약하는 또 한번의 기적을 함께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역시 객관적 근거가 희박한 정부 발표를 대변한 주장이다.
원전이 ‘대안 에너지’로 급부상하고 있다거나 원전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는 것은 원자력과 관련된 일부 이익단체들의 주장일 뿐이다. 오히려 원전은 안전성 문제, 생태계 파괴 등의 우려가 크고, 전력생산단가 측면에서도 다른 에너지보다 경쟁력이 그다지 높아 ‘사양산업’으로 꼽힌다. 미국 정부는 원전 건설에 보조금조차 지급하지 않고 있다. 원전의 수 역시 지금 추세로 가면 현재보다 30% 축소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의 ‘치적’을 부각하기 위해 원전이 ‘대세’인 양 호도했으며, KBS는 정부 주장을 금과옥조로 떠받들었다.
 
원전 수출의 성과 띄우기는 출연자들의 발언과 프로그램 구성을 통해서도 이뤄졌다.
한 가수는 노래를 부른 뒤 “우리나라 원전 기술이 세계에 수출됐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대한민국의 위상이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대한민국 국민의 꿈과 희망이 하늘 높이 솟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놀이야’와 ‘연’을 불렀다”고 자신의 노래에 의미를 부여했다.
또 그룹 코리아나 출신의 가수가 이날 방송의 첫 곡 ‘Victory’를 부를 때 무용수들은 왼쪽 가슴에 태극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춤을 췄으며,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서는 이 대통령이 아랍 왕자와 악수하는 장면 등 원전 수출을 다룬 영상이 나왔다.
노래 중간 “To the Victory”라는 후렴구에서는 원전CG를 배경으로 “To the Victory”라는 문구를 그래픽으로 크게 삽입하기도 했다. 원전 수주가 국가적 ‘승리’라는 메시지를 참으로 ‘촌스럽고’,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부각한 것이다. 이어 ‘c.o.r.e.a’, ‘환희’, ‘위풍당당’, ‘축배의 노래’ 등 원전 수주 성과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래퍼토리가 이어졌다. 마지막에는 출연 가수들과 무용수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아침의 나라에서’를 노래하기도 했다.
 
한편 담당PD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원전 수출 역시 역사적인 일 아니냐’며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등의 ‘특집’과 다를 바 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것이 ‘공영방송’ 제작진의 인식이라니 놀랍고 개탄스럽다. ‘원전 수출’은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사회의 최대 의제가 되어버렸다. KBS를 비롯한 대다수 언론들은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 덕분에 원전 수출이 성사된 듯 정권의 ‘치적’을 띄웠고, 원전 수출이 엄청난 경제 효과를 불러오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도 될 것처럼 부각하는 정부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전했다.
원전이 과연 ‘녹색성장’을 외치는 이 정권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대안 에너지인지, 에너지정책의 세계적 흐름은 어떤지, 원전 수출로 우리는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얻은 것인지, 하다못해 이번 원전 수출의 경제 효과가 정부 주장처럼 ‘400억 달러’인 것은 맞는지, 수주계약에서 불리한 점은 없는지 등등 언론들이 관심을 갖고 다뤘어야 할 사회적 논의 과제는 실종되었다.
특히 ‘공영방송’ KBS는 이런 역할에 ‘담을 쌓았다’고 할 정도로 정권 홍보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를 내보고, 특집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KBS는 이 정도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또는 국민들 기억에서 ‘원전수출의 대업’을 끊임없이 각인시켜야 한다는 ‘충성심’ 때문인지 음악프로그램까지 동원해 정권 홍보에 나선 것이다. 나아가 제작진은 정권의 주장이 고장난 레코드처럼 반복되는 해괴한 음악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원전수출은 역사적인 일’ 운운하는 논리를 펴고 있으니,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 자체를 잊어버린 것 아닌가 싶다.
‘공영방송’이 ‘관제방송’으로 퇴행해가는 현장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경이 참담하다. <끝>
 
 
 
2010년 2월 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