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과 KBS, 이제 ‘이심전심’인가
14일 한겨레신문은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세종시 수정안’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기 위해 방송을 동원하는 등의 계획을 세운 사실을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홍보기획사에 의뢰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세종시 현안 홍보전략’에는 “우호적 논조의 청와대 출입기자 등을 활용해 ‘특정 정치지도자의 발표 직후 여론개입’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기자칼럼을 게재”토록 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지난 10일 작성해 관계부처에 내려 보낸 ‘세종시 수정안 홍보 계획’에는 ‘세종시 수정안’ 홍보에 모든 장관들을 총출동시키고, ‘지역 차별이 없다’는 내용을 강조하라는 등의 지침이 담겨있다.
나아가 이 문건에는 “<한국방송>(KBS) ‘뉴스라인’ 20분 특집 편성(세종시 및 과비벨트 정책 설명-총리실장, 민동필 이사장, 강병주 교수 등)”이라는 대목도 포함돼 있다. 프로그램 이름, 편성시간, 편성 내용, 출연자까지 구체적으로 계획한 것이다. KBS를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보는 이 정권의 비뚤어진 발상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KBS 측은 ‘정부 지시’를 부인했다. 그러나 11일 <뉴스라인>이 정권의 계획에 따라 제작, 편성된 것이 아니라 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이제 KBS는 이 정권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내놓는 ‘MB방송’이 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11일 ‘뉴스라인’을 보면 날씨예보를 제외한 총 16꼭지 중 10꼭지가 ‘세종시 수정안’ 관련 보도였다. 시간으로 따지면 전체 38분 5초 중 24분 36초를 ‘세종시 수정안’ 관련 보도로 채워 문건에 등장하는 “20분 특집 편성”과 맞아 떨어진다. 또 뉴스 초반에 “세종시 이렇게 만든다”(6분 58초)는 제목으로 권태신 총리실장이 출연해 ‘세종시 수정안’과 ‘과학비즈니스 벨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출연 인물도 맞아 떨어진다.
이날 ‘뉴스라인’ 보도에서 ‘세종시 수정안’의 문제를 따지는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세종시 ‘자족기능’ 3배로>(함철 기자), <미리 보는 세종시>(박태서 기자)는 ‘세종시 수정안’의 ‘자족기능’ 강화, 일자리 창출, 교통체계 개선 등 긍정적 측면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세종시 국민에게 직접 설명”>(최재현 기자)은 ‘정치문제가 아닌 정책문제’라는 이 대통령의 입장, 국민들에게 이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겠다는 청와대의 계획을 충실하게 전했다.
<충청권 민심 요동…찬반 엇갈려>(송민석 기자), <지역발전 악영향 우려>(최문종 기자)에서는 충청지역 주민들의 입장과 타 지역 지자체장들의 입장을 찬반 나열로 보도해 사실상 ‘세종시 뒤집기’ 문제를 찬반 논란으로 ‘물타기’ 했다.
특히 세종시의 당초 목표가 국토균형발전에 있었다는 점,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정부의 수정안은 비대해진 서울 집중 문제를 완화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지역 간 갈등만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 등은 다뤄지지 않았다.
<특혜논란·재정 부담 극복해야>(김대영 기자)는 ‘세종시 수정’이 진행된 과정을 전한 뒤, “대기업 특혜,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논란 등을 극복해야 하고, 막대한 재정도 부담”이라는 점을 향후 과제와 함께 짧게 언급하는데 그쳤다. <세종시 현장을 가다>(황정환 기자)는 세종시 입주 지역 주민들이 취업 계획·아파트 입주 등이 늦춰져 “불만”이고, 공사가 진행 중인 청사건물도 설계변경이 불가피하다고 상황을 전했으나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이 정부의 ‘세종시 뒤집기’에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지 않았다.
한편 이날 KBS는 ‘뉴스9’에서도 ‘세종시 띄우기’에 앞장서면서 세종시 수정안의 문제점을 한 건도 다루지 않았다. (※우리단체 1월 11일 방송브리핑 참조)
언론을 정권 홍보 수단으로 여기는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행태는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게다가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국토균형발전의 대의도 거스르는 일을 밀어붙여야 하니 여론을 호도하고 조작하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이번 문건 파문에서 거듭 확인된 사실은 이 정권의 ‘세종시 뒤집기’가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무리수를 쓰면 부작용이 따른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이 온갖 편법을 동원해 끝내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인다면 그 대가는 가혹할 것이다.
‘MB특보사장’ 김인규 씨에게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씨는 취임사에서 “(KBS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본권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왔다”고 큰 소리 쳤다. 그러나 김 씨가 KBS 사장에 앉아 한 일은 KBS를 ‘더 충실하게 권력을 지키는 방송’으로 만든 것, 수신료를 인상해달라고 국민에게 손을 벌린 것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정권은 대놓고 KBS 뉴스를 제 입맛대로 제작·편성하겠다고 나섰다. 김 씨가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지금 당장 KBS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을 기만하고 정권에 부역해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데 대한 책임을 반드시 지게 될 것이다.
KBS 구성원들에게도 묻고 싶다. 지금 무엇하고 있는 것인가?
‘MB특보’가 사장 자리에 앉아도, KBS 뉴스가 날이면 날마다 ‘MB어천가’를 불러도 국민들은 KBS 내부에서 이렇다 할 저항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 간 KBS가 ‘정권의 나팔수’라는 오명을 벗고 공영방송으로서 영향력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배 언론인들과 국민들이 민주주의와 방송독립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지금 KBS 구성원들이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KBS는 국민에게 또 다시 버림받을 것이다. 다시 한번 KBS 구성원들의 맹성을 촉구한다.
국민을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라. <끝>
2010년 1월 15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