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3.09.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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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3사, ‘MB정권’ 아래 ‘비판’을 잊었나
한나라당이 끝내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31일 새벽 한나라당은 군사작전 펴듯 예결위 회의장을 변경해 야당의원들의 출입을 막고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어 이날 저녁 김형오 국회의장은 본회의를 열어 야당의 반발을 짓누르고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다. 상정에서 가결 선포까지 2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9개 예산부수법안도 직권상정돼 통과됐다. 김 의장은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던 노동관계법 개정안마저 직권상정 했고, 법안은 1일 새벽 사실상 한나라당 단독으로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 의견 청취, 의원들의 반대토론 등의 절차가 무시됐다. 뿐만 아니라 예결위의 장소를 여야 합의 없이 바꿔버린 것, 예산부수법안이 처리되기 전에 예산안부터 통과시킨 것, 국회의장이 예산부수법안 심사기일을 법사위 산회 후에 통보한 것 등은 국회법을 어긴 것이다.
국회법에는 표결과 선포는 반드시 ‘의장석’에서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110조, 113조) 국회법 선례집에는 회의장을 변경할 때 반드시 ‘간사 간 협의’를 하도록 돼 있다. 또 국회법은 예결위가 ‘세목 또는 세율과 관련된 법률을 제·개정을 전제로 미리 제출된 세입예산안은 심사할 수 없다’(84조 8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예산부수법안들이 처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안부터 날치기 처리한 것이다. 김형오 의장도 국회법을 어겼다. 김 의장은 법사위에 계류 중인 예산부수법안을 직권상정하기 위해 9개 법안의 심사 기간을 지정했으나 지정 요청서는 법사위 산회 6분 후에 전달됐다. 결국 ‘회의 개회 후 산회하면 그 날에는 회의를 재소집 할 수 없다’는 1일1차 원칙을 어긴 셈이다.
한편, 한나라당과 김형오 의장이 밀어붙인 예산안과 노동관계법의 내용은 한마디로 ‘삽질예산’이며 ‘노동기본권 제약법’이라 할 수 있다.
예산안은 정부 원안보다 1조 355억 늘어난 292조8159억 원으로, ‘삽질예산’인 4대강 사업비는 사실상 그대로 통과된 것이나 다름없다. 총 5조2852억원 중 대운하 의심 예산인 보설치, 준설 관련 내역은 그대로 둔 채 수자원공사 사업비 중 이자보전비용 100억 등 4250억원만 삭감한 것이다.
노동관계법은 복수노조를 1년6개월 미루고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은 올해 7월부터 금지하도록 했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되면 전임자 수가 대폭 줄어들 것이 뻔하고, 노조 활동도 자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복수노조 허용을 미루는 것도 문제지만 1년 6개월 후 복수노조가 허용된다 해도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 때문에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가 없는 ‘있으나마나한 노조’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또 별도 교섭이 허용됐던 산별노조의 교섭권은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로 한정됐다.
그러나 31일과 1일 방송3사 메인뉴스에서 예산안 날치기 처리, 예산안· 노동관계법의 내용적 문제 등을 제대로 따진 보도를 찾기 힘들었다. 예산안이 처리되는 과정을 나열하고 여야의 공방을 단순 중계했을 뿐이다. 특히 kbs는 이틀 동안 단 3건의 관련보도만 내놔 노골적인 ‘의제 죽이기’ 행태를 보였다(mbc 6건, sbs 7건).
kbs는 31일 첫 꼭지 <새해 예산안 본회의 통과>(김덕원 기자)를 보도하면서 “(2008년은)아쉬움도 많지만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위상’을 널리 각인시킨 한 해”라는 앵커멘트로 시작했다. 정부와 여당이 ‘삽질예산’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멘트다. 이어 국회 현장을 연결한 보도에서는 예산안 처리 소식을 전하며 “우려했던 몸싸움은 빚어지지 않았다”, “9개 예산부수법안이 처리될 예정”이라고 국회 상황을 단순 전달했다.
1일 <단독 표결 본회의 통과…논란 ‘여전’>(박경호 기자)에서도 노동관계법 강행처리 과정과 법안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지 않았다. 법안과 관련해 지적한 내용은 ‘노조활동 허용 범위’에 추가된 ‘노조 유지 관리 업무’와 관련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해석을 놓고 노사간에 불씨가 남았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그리고는 “한국노총은 개정안을 환영했지만 민주노총은 거세게 반발했다”며 노동계의 ‘엇갈리는 반응’을 나열했다.
sbs는 ‘4대강 예산 삭감’을 부각하며 무조건 ‘예산안 연내처리’를 주장한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주는 경향을 보였다.
31일 <4대강 예산 삭감>(김영아 기자)은 예산안이 “정부 원안보다 1조 원이 늘었지만, 지방재정교부금 등으로 자동 지출되는 2조 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1조 원이 감액됐다”, “국채발행 규모를 1조 6천억 원 줄이는 등 재정건전성 확보에 역점을 뒀다”는 ‘한나라당의 설명’을 전했다. 이어 “4대강 사업 예산은 모두 4천 250억 원을 삭감했다”며 삭감 내역을 다뤘는데, 대운하 의심 예산 삭감이 없다는 사실은 지적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서민 복지예산은 대폭 늘렸다”고 평가하며 세부 내역을 단순 전달했다.
또 <해 넘긴 민생법안>(한승희 기자)에서는 ‘서민법안’이 처리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하는가 하면 “오늘중 노동관계법이 처리되지 못하면 당장 내일부터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토록 한 현행법이 자동 시행돼 산업현장에 큰 혼란이 우려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1일 <노동관계법도 반발 속 통과>(허윤석 기자)는 고성이 오간 노동관계법 처리 과정을 전한 뒤, ‘날치기’라는 야당의 비판과 한나라당의 반박을 나열하는데 그쳤다. <노조 전임자 줄어든다>(김형주 기자)에서도 노동관계법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짚지 않았다. 그저 노동계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전임자수 축소’를 우려한 반면 경영계는 ‘복수노조의 도입 시기가 앞당겨진 것’이 불만이라며 양측의 입장을 나열했다. 또 ‘근로시간 면제 범위’가 모호하다며 “노사정이 3년마다 협상해야 하고, 사용자가 동의할 경우 노조마다 따로 교섭이 가능해, 노조 힘이 큰 사업장은 노무 관리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이라고 사용자측의 ‘노무 관리 부담’을 언급했다.
mbc는 31일 <새해 예산안 본회의 통과>(왕종명 기자)에서 예산안 가결 소식을 전하며 “김형오 의장이 예산 부수 법안을 직권상정 하기 위한 심사기일 지정 시점을 두고 효력 논란이 예상된다”, “(민주당이) 예산안의 법적 근거인 부수 법안보다 예산안을 먼저 처리할 수 없다는 국회법 조항도 어겼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할 계획이라 후유증도 예상된다”는 민주당의 주장을 덧붙인 정도였다.
1일 <직권상정‥반발 속 통과>(조효정 기자)는 법안 처리 과정을 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다만, “일부 야당 의원들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노동 관계법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고 덧붙였다. <노사관계 대변혁 예고>(김재영 기자)에서도 ‘노동기본권 제약’ 문제를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경영계의 수확이고, ‘복수노조 허용 시기를 1년6개월 뒤로 앞당긴 것’은 노동계의 수확이라며 “노사 어느 쪽도 완벽한 이득을 챙기지는 못했다는 평가”, “양측의 불만이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예상하는데 그쳤다.
이처럼 방송3사는 예산안·노동관계법 처리를 ‘중계방송’하는 데 급급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이 정부 여당의 예산안과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왜 반대했는지, 그 핵심 내용은 무엇인지 등 본질적인 문제들은 실종됐다. 대신 여야의 몸싸움, 국회파행과 같은 부정적 측면이 부각됨으로써 다시 한 번 국민들의 ‘정치적 냉소’를 부추겼다.
방송3사의 이 같은 보도태도는 사회적 책임을 내팽개친 것이다. 이미 공영방송이기를 포기한 kbs는 말할 필요도 없고 mbc, sbs도 ‘최소한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지난 2년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국정 운영은 ‘민주주의 유린’, ‘국민 기만’의 연속이었다. 국민 다수가 반대해도 밀어붙이고, 국민과 약속한 일이라도 기득권세력에게 불리하면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부자 이익 챙기기’에 골몰하면서 ‘서민 이벤트’로 눈속임하고, 서민과 약자들에겐 준엄한 ‘법치’를 요구하면서 재벌에겐 ‘국익’의 이름으로 유례없는 특혜를 베풀었다. 그런데도 방송들은 입을 다물었다.
‘삽질예산’으로 나라 곳간을 뒤흔들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며, 매사를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집권 세력에 대해 방송마저 견제와 비판을 포기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되고 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정권이 저지르는 민주주의 유린, 국정 파탄의 결과에 대해 방송사들이 ‘공동책임’을 질 생각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견제와 비판에 나서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비판에 눈감은 채, 틈틈이 정권이 벌이는 ‘서민 이벤트’나 부각한다면 언젠가는 국민들이 이런 행태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끝>
2010년 1월 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