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12일 조선일보의 ‘고교 서열화’ 보도행태에 대한 논평(2009.10.12)
등록 2013.09.25 14:46
조회 281
조선일보, ‘고교서열화’로 노리는 게 뭔가
 
 
12일 조선일보가 고등학교들의 이름을 그대로 공개하며 학교별 수능성적 순위를 1면 톱기사로 실었다.
조선일보는 1면과 3, 4면에 걸쳐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5년간 대입 수험생들의 수능 표준점수를 고교별로 분류해 국회 교과위 소속 위원들에게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언어·수능·외국어 영역 평균 합산 상위 30개교, 각 영역별 1등급자 비율 상위 100위교, 각 영역별 표준점수 평균 상위 100개교의 명단을 자세히 공개했다.
애초 교과부는 ‘학교 서열화와 과열경쟁, 교육과정 파행 운행 등 공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수능 원점수 공개에 반대해왔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입장을 바꿨다.
교과부는 지난 3월 ‘학교와 지역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는 자료는 공개하지 않는다’라는 서약서를 작성한 국회의원에 한해 수험생 개인정보와 학교명을 삭제한 상태로 232개 시·군·구별 5년간 수능성적 자료를 열람토록 한 뒤 가공된 자료만 외부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9월 22일 수능성적 원자료가 담긴 CD를 ‘국회의원에 한해 연구목적 사용’이라는 단서를 달아 국회 교과위 의원들에게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국회의원들에게 자료를 공개하면서 외부유출을 금지하는 서약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 6일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지난한 투쟁을 통해 입수한 수능 성적과 학업성취도 평가결과 원자료를 연구자 누구에게나 제공하겠다”며 외부 공개를 ‘천명’하고 나섰고 급기야 조선일보에게까지 자료가 공개된 것이다.
 
한편 조선일보는 “1994년 수능이 시작된 이래 고교별 성적이 외부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교과부가 어느 학교인지 식별이 불가능하도록 교명 대신 코드로 자료를 처리했으나 별도의 확인과정을 거쳐 1500개 안팎의 학교 이름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는 “지난 4월 최근 5년간의 수험생 수능점수를 사상 처음으로 등급으로 분류해 발표한 것이 학교별 정보는 전혀 제공되지 않아 ‘반쪽자리 정보공개’라는 비판이 일었다”, “나머지 학교에 대해서는 ‘학교 서열화’에 대한 우려를 감안해 공개 여부를 점차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는 등의 주장을 폈다. 학교별 순위를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보 제공인양 호도하는 한편, 자신들이 서열화의 우려를 고려해 대단한 배려라도 한 듯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내놓은 기사들은 일반고와 특목고 사이의 서열화를 넘어 ‘특목고도 서열을 매기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1면 <‘수능 국영수’ 대원외고 1위, 민사고 2위>에서 수능성적이 좋은 학교들 중 상위권은 대부분 외국어고와 자사고가 차지했다면서 “대원외고가 401.63점으로 가장 높았고, 민족사관고, 한국외대부속외고, 한영외고, 명덕외고, 대구외고, 대일외고 등이 그 뒤를 이었다”고 전했다. 수능성적 상위 30개 학교는 표로 정리해 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학교별 수능성적 공개로 학부모와 학생들 입장에서는 매우 유용한 정보를 얻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 “같은 시도의 학교사이에서조차 심각한 학력 격차가 확인된 만큼 정부는 뒤처진 학교를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개혁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한 이화여대 박정수 교수의 발언을 덧붙였다.
참으로 교활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가 학교 이름을 이런 식으로 공개하지 않아도 정부는 학교별 성적을 다 알고 있고, 학교 사이의 학력격차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보도로 ‘학력격차의 실상’이 드러나기라도 한 듯 전문가 발언을 끼워 넣어 “정부 대책” 운운한 것이다.
 
조선일보의 ‘학교 서열 매기기’는 3면에서도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예상했던 대로 상위권 학생이 많은 학교는 수도권 지역 특목고와 비평준화 지역 명문고, 서울 강남·서초구 소재 학교에 많았으며 이들 학교는 지난해 입시에서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 합격생을 다수 배출했다”며 서울대 상위권 대학 합격생을 다수 배출한 학교들의 순위를 매겼다.
3, 4면에서도 각 영역별 1등급자 비율 상위 100위교, 각 영역별 표준점수 평균 상위 100개교의 명단을 표로 정리해 자세히 공개하고 이를 분석했다.
 
도대체 조선일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등학교의 서열을 매겨 공개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뻔하다. 고등학교들은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점수 높이기’ 경쟁에 혈안이 될 것이며, 중학교에서는 ‘높은 서열의 고교’에 많은 학생들을 보내기 위해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는 ‘좀 더 서열 높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육양극화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일제고사, 0교시 수업 등으로 학생들은 더 가혹한 입시 경쟁에 내몰렸다. 또 ‘학교자율화’라는 명목 아래 국제중, 특목고, 자사고 등 ‘부자만을 위한 교육정책’이 추진되면서 사교육비는 더욱 증가하고 공교육은 위기에 내몰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일보가 학교별 수능 점수를 공개한 것은 성적에 따라 학교의 서열을 매기는 반교육적 행태일 뿐 아니라, ‘고교 서열화’를 공공연하게 만들어 공교육의 근간인 평준화와 ‘3불제도’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교과부의 무책임한 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코드’로 처리된 교과부의 자료를 자체적으로 확인해 학교 이름을 알아냈다는 조선일보의 말이 사실인지 의심스럽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일개 언론사가 ‘별도의 확인’을 하면 학교 이름을 모두 알 수 있을 만큼 허술하게 자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교육부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져야한다.
수능성적 공개와 교과부와 외부유출을 금지하는 서약서를 작성하고도 외부에 공개한 조전혁 의원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악용해 공교육 파괴에 앞장선 국회의원, 학교별 수능성적 자료를 허술하게 유출한 교과부, 학교들의 서열을 매겨 1면 톱기사로 공개한 조선일보는 이번 사태로 초래될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끝>
 
 
 
 
2009년 10월 1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