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언론의 김대중 정신 계승 보도에 대한 논평(2009.8.25)하지만 공론의 장을 제공해야 할 언론이 상황 나열식 단편적 보도로 일관하거나 급기야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오히려 사회적 논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23일 사설에서 ‘화해’와 ‘의회주의’ 회복을 강조했다. 사설 <김 전 대통령을 보내며 화해를 생각한다>는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사회의 갈등을 수렴하고 국론을 원만하게 모아가는 민주주의의 실천에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불과 얼마 전에도 여·야는 국회에서 육탄전을 벌였고 야당은 아직까지 장외투쟁을 하고 있다”면서 “여·야가 지금 당장이라도 의회주의 회복 방안을 놓고 마음 터놓고 대화 하는 것이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뜻을 진정으로 기리는 길”이라며 민주당 등원을 압박했다.
중앙일보는 24일 <DJ 영면, 화해와 역사 계승으로>
같은 날 동아일보도 사설 <이제 민주화 넘어 선진화로 가자>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도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했던 고인의 적자임을 자부한다면 대화와 타협, 다수결 원칙에 근거한 의회민주주의 복원에 앞장서야 한다. 즉시 국회로 복귀해 내달 1일 개회하는 정기국회의 원만한 운영에 협조하길 바란다”고 민주당의 등원을 압박했다. 또 “야당과 정권에 반대하는 일부 세력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듯이 국민을 선동해 분열과 대립을 부추기는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스스로 민주화를 부정하는 이런 행태에서 탈피하는 것이 국가 선진화에 협조하는 길”이라며 정권을 비판하는 것을 ‘민주화 부정’으로 매도하며 비난했다.
반면,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진정한 ‘화해와 통합’의 선결조건을 지적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이 내세우는 제 논에 물대기 식 ‘화해와 통합’을 비판해 차이를 보였다.
한겨레신문은 25일 사설 <아전인수식 ‘화해와 통합’을 경계한다>에서 “여야의 모습을 보노라면, 제 논에 물대기식 화해와 통합을 외치고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며 여권이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앞세워 야당에 국회 복귀를 압박하면서도, 정작 정국 파행의 원인인 언론관련법 날치기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없다”고 비판했다. 또 “이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화해와 통합을 강하게 역설했지만, 분열과 갈등의 원인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했다”며 “진정한 화해와 통합은 원인 제공자 쪽이 먼저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같은 날 <국정기조 전환이 화해·통합의 첫걸음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서 “화해와 통합”을 거론한 것을 두고 “이 대통령 등 집권세력과 고인 사이에 드리워진 현격한 인식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을 핍박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용서해 한 사례를 언급한 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두 정권의 업적을 송두리째 묻으려 하고 있다”며 “이런 국정운영을 계속하면서 화해와 통합을 거론하는 건 고인의 유지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구호에만 그치는 화해와 통합은 국정의 실패를 은폐하고,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방송3사는 정치권의 목소리를 전하는데 있어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KBS는 다른 정치권 소식은 전하지 않고 <주도권 경쟁 돌입>(김덕원 기자)에서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두고 민주당이 내부 주도권 경쟁에 돌입했다고 전하는데 그쳤다.
MBC는 <“민주대연합 유언”>(박범수 기자)에서 ‘야권 단합 방법론’을 놓고 민주당 내부에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국 주도 탐색전>(김재용 기자)에서는 한나라당이 여야 대표 회담 등을 제안하며 야당의 국회 등원을 촉구했고, 이에 민주당은 “용산참사 사건도 해결하지 못하고 미디어법에 대해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들어 화해를 얘기하는 건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SBS는 <국회 정상화 촉구>(김윤수 기자)에서는 한나라당과 김형오 국회의장이 국회정상화를 촉구했다고 전한 뒤, <야권 결집‥진로모색>(허윤석 기자)에서는 민주당의 반박을 전했는데, “여권이 갈등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가 만나 협의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피상적인 발언을 전하며 정작, 국회파행의 직접적 원인인 언론법안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한편, KBS는 21일 <의회주의 ‘열정’>(박에스더 기자)에서 김 전 대통령의 의정활동 내용을 전하며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하던 김 전 대통령에게는 의사당보다 거리가 더 익숙했지만, 고인은 결코 의회주의의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며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 민주당 지도부에 등원을 충고하는 등, 때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원내 원칙을 중요시한 것은 정치인의 최종 종착점은 국회라는 확신 때문”이라고 ‘국회등원’을 강조했다.
그러나 조중동 수구언론은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정략적으로 이용하며 고인을 욕되게 하고 있다. 이들 언론이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원한다면 고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동안 민주주의를 훼손하는데 앞장서왔고 현재에도 여론을 왜곡하고 있는 자신들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현재 우리 민주주의가 어떻게 퇴보하고 있으며 고인이 일생동안 추구해왔던 한반도 평화와 서민경제가 어떤 위기에 있는지를 정확히 보도해야할 것이다. 이런 가치들이 파탄에 이르렀는데 ‘화해와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민주당과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다수 국민들에게 무조건 ‘정권을 따르라’고 윽박지르는 행태와 다를 바 없다. 더욱이 조중동 수구언론은 고인이 마지막까지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국민들에게 당부했던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이 써먹기 좋은 ‘화해와 통합’은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들에게 불리한 고인의 유지를 무시하고 감추려는 얄팍한 태도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방송보도 역시 실망스럽다. 화해와 통합 등을 거론하는 정치권의 목소리와 상황을 나열하거나 전달하는데 급급할 뿐이었다. 고인이 남긴 유지가 현재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남긴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성찰은 찾기 힘들었다. 현재 정치권의 분열과 국회 파행은 한나라당의 언론악법 날치기로 빚어진 것이지만, 방송은 국회 등원에 대한 여야의 주장을 나열하는데 그쳤다. 심지어 공영방송 KBS는 고인을 ‘의회주의자’라며 교묘하게 야당의 ‘등원’을 촉구하는 보도행태까지 보였다.
민주주의 없는 화해와 통합은 억압되고 강요된 것에 불과하다. 국회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여 국민 주권을 유린하는 국회는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 진정한 의회주의자는 무조건 국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수렴할 기능을 상실한 국회를 바로잡아 국민의 국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국민의 힘으로 국회를 심판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나라당이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원한다면 7개월째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용산참사 문제를 비롯해, 언론악법 날치기, 대북 압박 등 그동안 자행해 온 반민주적·반서민적·반통일적 행태부터 반성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정치권과 언론이 ‘화해와 통합’부터 강조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며, 진정성이 결여된 한낱 ‘통치 술수’일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