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한 논평(2009.8.21)
등록 2013.09.2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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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과 방송3사, 추모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나
 
 
지난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향년 85세로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이 한국 사회에 남긴 유산은 크다.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상징으로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했으며, 선거를 통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며 긴장과 대결로 점철되었던 남북관계를 평화와 화해로 바꾸는 계기로 만들었다. 국민연금 등 서민 복지정책의 초석을 마련하고, 여성·장애인 관련 정책,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등 서민과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을 실시했다.
특히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 신념이었던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화해를 지키고자 마지막까지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고인은 노구를 이끌고 강연과 저술 등을 통해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역주행, 남북관계 파탄을 질타했고, 국민들에게는 이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줄 것을 호소했다. 그가 최근 남긴 말들은 민주사회의 구성원인 우리가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고인의 유훈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정작 언론에서는 이런 고인의 유훈을 제대도 보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왜곡까지 하고 있다.
방송3사는 김 전 대통령을 회고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인 민주주의와 관련된 최근 발언을 제대로 조명하지 않았다. 18일부터 20일까지 방송3사 메인뉴스를 보면 과거 유신독재시절 고인이 당한 고초, 집권 기간에 대한 평가, 고인의 인간됨 등은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반면,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고인의 최근 발언과 행적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실제로 민주주의의 후퇴는 현재진행형인데도 민주화를 위한 고인의 투쟁을 마치 유신정권이나 군사독재 시대의 일로만 치부하는 보도행태를 보였다. 이는 과거 독재정권의 탄압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위기에는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KBS는 아예 관련 사실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는 행태를 보였다. 18일 <퇴임 뒤에도 활발한 활동>(정인성 기자)은 “2007년 대선 당시엔 대통합을 역설했고, 지난해 총선에선 민주당의 공천 결과를 비판하는 등 국내 정치에 대한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며 고인이 민주당을 비판했다고 전한 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강조했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민주주의 위기를 우려했던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은 쏙 빼고, 야당에게 충고하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는 양비론으로 초점을 흐린 것이다.
SBS는 18일 <퇴임 후 원로 역할>(남승모 기자)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우려하는 김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전했지만 ‘정치적 논란을 불러왔다’고 그 의미를 축소하고 비틀었다. 20일 <“갈등 극복 계기로”>(허윤석 기자)에서는 “그의 서거가 민주, 개혁 진영의 결집을 통한 야권 통합과 여야 간의 대화와 타협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명박 정권에 의한 소통단절과 일방통행에 침묵하는 한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는 ‘화해와 통합’을 부각했다.
그나마 MBC가 18일 <“민주주의 지켜달라”>(임명현 기자)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행동하는 양심이 될 것’을 역설했던 6.15 9주년 기념연설 장면을 비추며 “대통령의 자리를 마치고 또 후계자에게 그 자리를 넘긴 이후에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추구해 온 가치에 매달린 것”이라고 평가해 다른 두 방송사와 차이를 보였다. 20일 <논리 빼어난 명연설가>(장준성 기자)에서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다시 한번 전했다.
 
조중동은 더했다. 조선일보는 19일부터 21일까지 관련 보도에서 현 정권을 비판한 김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김 전 대통령의 현 정권 비판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행태마저 보였다.
동아일보는 19일 사설 <역사 속으로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에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현직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며 공격함으로써 공동체의 균열을 키우기보다는, 국민통합에 앞장섰더라면 존경을 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균열’, ‘국민통합에 역행하는 것’으로 몰았다.
중앙일보는 19일 사설 <역사 속으로 떠나간 DJ>에서 “산업화 세력의 역사적 의미를 인정하고, 이를 승계한 이명박 정권을 수용하며,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적 통합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자격과 기회가 있었다”며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막판에 자신을 키워준 ‘투쟁의 과거’로 돌아가고 말았다.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고 국민에게 일어나 행동할 것을 촉구한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정파적 이익’에 따른 것으로 폄하했다.
 
우리는 조중동 수구언론이 김 전 대통령 살아생전에 어떻게 ‘김대중 죽이기’를 자행해 왔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들은 온갖 색깔론과 흠집내기로 고인을 매도하고 폄하하는 데 앞장섰다. 고인의 마지막 대중 연설이 된 6.15선언 9주년 기념 연설마저 이들 신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 국가 원로다운 언행을>(조선), <전직 대통령의 금도(襟度)가 아쉽다>(중앙), <‘민주’ 탈 쓰고 反민주 부추긴 DJ의 정권타도 선동>(동아) 등으로 왜곡하고 비난하는 데 앞장섰다. 조중동은 그동안 수구언론의 자양분이 되어 온 수구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를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명박 정권을 지키기 위해 김 전 대통령의 살아생전은 물론이고, 서거 이후까지도 그의 진의를 왜곡하고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인면수심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방송3사의 보도는 더 실망스럽다.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그의 유지를 받들자면서 민주주의 위기, 한반도 평화·인권 등의 위기를 가져오는 현 정부의 문제를 보도·비판하지 않는 것인가? 특히, 공영방송 KBS가 현 정권에 대한 전직 대통령의 비판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은 씁쓸하다. 이명박 정권의 청부사장 이병순 씨 체제 이후 만연한 ‘현 정권 감싸기’·‘눈치보기’ 라는 공영방송 KBS의 행태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몸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 잘못된 ‘이명박 정권 감싸기’야 말로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권이 얼마나 국민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는 반민주적 정권인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도대체 조중동과 방송은 무엇이 무서워서 이미 생을 다한 전직 대통령의 발언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인가?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거론하는 것조차 이 정권 하에서는 ‘금기사항’이라는 말인가?
조중동과 방송이 진정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마음으로 빌고자 한다면 이제라도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화해와 통합의 가치가 무엇이고, 그가 평생을 지키고자 했던 신념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후대에 남긴 발언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것이다. 조중동과 방송은 추모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도 제대로 갖춰주기 바란다. <끝>
 
 
2009년 8월 2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