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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4일 방송3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방송’에 대한 논평 (2009.5.27)
등록 2013.09.2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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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시청자들의 분노를 직시하라
 
 
26일 방송3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는 29일까지 ‘예능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직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국민들이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진 상황에서 방송3사가 늦게나마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방송3사가 보여준 서거 방송에 대해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방송3사의 보도 태도는 신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상식 수준의 예우를 갖추지 못했다. 방송3사는 뉴스속보를 내보내며 자막과 앵커멘트, 기자멘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이라는 표현을 썼다.
KBS와 MBC는 앵커와 기자멘트, 자막 등에서 한 시간 가까이 “사망”이라는 말을 쓰다가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서야 “서거”로 표현을 바꿨다. 그나마 MBC는 ‘서거’로 자막을 바꾼 후 앵커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앞으로 ‘서거’로 표현하겠다”고 밝혔지만 KBS는 아무런 언급 없이 슬그머니 자막과 앵커·기자멘트를 바꿨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사실을 가장 먼저 보도한 SBS도 오전 10시 20분까지 진행된 뉴스속보와 특보에서 “사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오전 11시에 다시 시작된 속보에서는 ‘서거’로 표현을 바꿨다.
종교지도자, 지도층 인사에 대해 ‘선종’, ‘타계’, ‘작고’ 등의 예우를 갖추는 것이 관행이자 상식이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었다 해도 전직 대통령에게 ‘서거’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방송사들이 과연 ‘사망’이라는 표현을 쓸 엄두라도 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혹여 참여정부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탈권위주의’적 인식이나, 이명박 정권의 ‘참여정부 지우기’ 분위기에 편승해 ‘아무렇지도 않게’ 결례를 저지른 것이라면 더욱 잘못된 일이다.
 
한편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방송사들, 특히 공영방송 KBS가 서거 당일에도 오락프로그램을 방송한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국민들의 정서를 거스른다는 것이다.
 

지난 1983년 아웅산 폭발사건으로 정부 인사 17명이 희생되어 합동국민장이 치러졌을 당시, 방송사들은 5일간 정규방송을 아예 중단하고 추모방송만 내보낸 바 있다. 물론 방송독립성이 철저하게 유린된 군부독재시절의 특수 상황이 반영된 일이다. 그러나 국민적 애도와 추모 분위기에서 적어도 축제 분위기의 쇼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코미디 프로그램 등이 보편적인 국민 정서와 어긋난다는 사실은 달라질 수 없다.
이런 정서를 의식해 MBC는 23일 <무한도전>,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세바퀴>, 24일 <개그야>,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취소했고, SBS도 23일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놀라운 대회 스타킹> 등을 취소하고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교양프로그램 위주로 편성을 바꿨다.
그러나 공영방송 KBS는 23일에도 <해피
투게더 스페셜>, <천하무적 토요일>, <연예가 중계>를 방송했는데, 특히 이 가운데 <천하무적 토요일>에서는 출연자가 트롯 응원가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또 다른 출연자가 불을 이용해 ‘차력 쇼’를 벌이기도 했다.
24일에도 방송사들은 일부 오락프로그램을 편성했다. MBC는 <해피타임>,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등을, SBS는 <순간포착 스페셜>을 방송했다. 특히 KBS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기념’ <열린음악회>를 방송했는데, 프로그램 내내 댄스음악을 비롯한 ‘흥겨운’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1박2일>, <천하무적 토요일>의 한 코너인 ‘천하무적 야구단’도 재방송됐다.
한편 방송3사는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를 23일과 24일 방송하기도 했는데, 특히 서거 당일 KBS는 2TV 주말 드라마 두 편을 그대로 방송했고 재방송 드라마도 두 편 방송했다.
 
우리는 KBS의 이런 편성 행태가 ‘이병순 체제’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편성의 문제는 기자가 ‘추모객’을 ‘관람객’이라고 말실수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이고도 급작스러운 서거 앞에 국민들이 충격 받고 슬퍼하는 상황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내보낼 것인가 하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에서 공영방송 KBS가 이처럼 ‘과감하게’, ‘웃고 떠드는’ 오락프로그램들을 편성한 데에는 어떤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닌가? 그리고 이 때문에 시청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뒤늦게 ‘예능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겠다’고 수습에 나선 것 아닌가?
이런 의문은 우리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가뜩이나 ‘정권 눈치 보기 보도’, ‘정권 홍보 보도’라는 비판을 받는 KBS가 편성에서조차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이자 국민들의 분노는 커졌다. 취재현장에서 KBS 취재진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방송3사 메인뉴스 중 압도적인 시청률을 자랑해 온 KBS <뉴스9>의 시청률이 노 전 대통령 서거 기간에 다른 방송사에 밀리는 경향마저 보였다. 지난 24일 AGB닐슨의 조사에서 전국단위 시청률과 수도권 시청률에서 MBC <뉴스데스크>는 각각 14.5%와 14.7%로 14.4%와 14.5%인 KBS <뉴스9>을 조금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적으로 공영방송을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은 국가 지도자의 서거와 같은 ‘특수 상황’에서의 편성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충분한 논의도 거쳐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방송3사가 보여준 문제점들이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KBS의 서거 방송은 이명박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실태와 ‘KBS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앞서 언급한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 25일 KBS PD협회가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다큐3일> 제작진들이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을 다뤘던 ‘대통령의 귀환-봉하마을 3일의 기록’편의 재방송을 제안했으나 편성본부에서 “이 편은 후에 내겠다”며 미뤘다고 한다. 또 제작팀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다음날 긴급방송을 기획하고 현장취재까지 시작했지만, 편성본부에서 뉴스특보를 방송한다고 통보해 취재를 중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뉴스특보는 방송되지 않고 은 ‘차’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이병순 체제의 KBS’가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다루는 데에서조차 이명박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오늘 KBS는 ‘방송 3사 중 KBS의 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방송시간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KBS가 왜 이런 ‘홍보’에 나섰는지는 알만하다. 그러나 KBS를 향한 시청자들의 불만과 분노는 이런 ‘홍보’로 수습될 문제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후 KBS 구성원들은 과연 KBS의 정치적 독립성이 어디까지 훼손되고 있는지, 왜 자신들의 전직 대통령의 서거 방송이 민영방송보다 더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는지 성찰해보기 바란다. 이대로 가면 KBS는 정말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 <끝>
 
 
(사)민주언론시민연합
2009년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