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정부 ‘도심 집회 금지’ 방침 관련 방송3사 보도에 대한 논평(2009.5.22)
등록 2013.09.2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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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놓고 ‘국정홍보 방송’ 할 것인가
 
 
KBS가 정부의 위헌적인 ‘도심 집회 금지’ 방침을 비판하기는커녕, 적극 대변하고 있다.
지난 20일 정부는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시위 관련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어 ‘불법·폭력 시위가 예상되는 도심 대규모 집회를 원칙적으로 불허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또 ‘불법폭력 시위자는 현장에서 검거하고, 현장 검거를 못했을 경우 채증 등을 통해 끝까지 추적해 전원 사후처리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19일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죽창 발언’에 따른 조치다. 이 대통령은 16일 대전에서 열린 노동자대회에 대해 “수많은 시위대가 죽창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세계에 보도돼 한국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힌다”며 엄정대처를 주문했다. 화물연대 파업의 발단이 된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요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 없이 ‘불법시위’를 엄단한다는 입장만 강조한 것이다. 그러자 정부는 ‘도심 집회 금지’라는 초강경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경찰은 신고제인 집회를 사실상 허가제로 통제하면서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집회를 무조건 금지했다. 또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집회를 강경 대응해 충돌을 초래하는가하면, 심지어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을 체포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탄압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심 집회를 금지하겠다’고 나섰으니 사실상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불리한 집회는 무조건 막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21조)고 되어있다. ‘불법폭력시위가 예상되는 도심 집회는 원칙적으로 금한다’는 정부 방침은 정권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허가’하는 위헌적 조치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기본권을 제약하는 정부의 방침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
특히, KBS는 정부가 ‘도심 집회 금지’ 방침을 밝힌 20일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태도까지 보였다. 이날 <‘폭력 우려 집회’ 불허>(이근우 기자)라는 보도에서 KBS는 정부가 왜 이런 방침을 밝혔는지 그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나섰다. 보도는 시작부터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여파로 경기 회복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이라며 “영세 자영업자, 상공인 등 모든 계층의 고통이 지속되는 마당에 폭력 시위는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켜 투자와 수출을 막고 결국 국민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의 ‘도심 집회 금지’ 방침을 단순 전달한 뒤, 보도 말미에 다시 한번 “정부의 이번 조치는 민주 사회에서 폭력은 결코 의사소통의 수단이 될 수 없으며 후진적인 시위 문화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의미부여 했다.
21일 KBS는 <일제히 집회 신고>(황정환 기자)라는 보도에서 정부 방침의 문제점을 다루는 듯 했으나 “집회신고도 하기 전에 경찰이 집회금지 방침을 밝히는 자체가 권한을 넘어선 행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언급한 뒤 “항의적인 성격의 이런 집회는 앞으로 못하게 되겠죠”라는 김종서 배제대 교수 인터뷰를 싣는데 그쳤다.
 
KBS처럼 정부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았지만, MBC와 SBS도 정부 방침을 심층적으로 다루거나 비판적으로 접근하지는 못했다.
두 방송사는 20일에만 관련 보도를 내보냈는데, MBC는 20일 첫 꼭지 <도심 대규모 집회 허용 안한다>(권희진 기자)에서 정부 방침을 전했다. 보도는 “불허 기준의 자의성을 둘러싸고 앞으로 노동계와 적지 않은 마찰이 예상된다”며 ‘노동계와의 마찰’을 언급하는데 그쳤다. 이어 <“최루탄 쏠 수도”>(고병권 기자)라는 보도에서는 ‘최루탄을 다시 쏠 수도 있다’는 등 강경대응 입장을 밝힌 강희락 경찰청장 발언을 전하고, 이에 대한 민주노총과 시민단체의 반발을 전했다. SBS는 20일 단신으로 정부방침을 단순 전달했을 뿐이다.
 
지난해 ‘촛불’에 놀란 이명박 정권은 ‘듣기 싫은 말은 찍어 누르면 된다’는 공안통치식 발상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런 ‘국민 찍어누르기’는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 아예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민주주의 유린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법치’와 ‘소통’을 외치면서 정작 정부는 헌법 정신을 어기고 듣기 싫은 국민의 요구는 틀어막겠다고 하니 이런 이율배반이 없다. 이러니 국민들이 제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더 강력하게 외치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의 억울한 사연에 귀를 기울인다면 어떤 국민이 제 목숨을 끊을 것이며,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를 보장한다면 어떤 국민이 경찰과 충돌할 것인가?
그런데도 이 정권은 오로지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기본권을 제약하는 데 골목하고 있다. 이런 정권의 행태야말로 대한민국 이미지를 전 세계적으로 실추시키는 것이다. 이미 이 정권의 언론탄압,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는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방송3사는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하는 이 정권의 ‘국민 찍어누르기’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 KBS의 행태는 눈을 뜨고 보기가 힘들 정도다.
KBS는 20일 정부의 ‘도심 집회 금지’ 방침을 대변하듯 보도한 반면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 목소리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면서 ‘모내기 행사’에 참여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시시콜콜 다뤘다.
MBC와 SBS가 단신으로 다룬 ‘대통령의 모내기’를 KBS는 <“농촌 지원 약속”>(이춘호 기자)이라는 단독 꼭지로 다뤘다. 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이 작업복을 입고 이앙기를 모는 장면, 농민에게 두부를 먹여주는 장면 등을 비추며 “현직 대통령의 모내기 참여는 12년만”, “이 대통령은 이앙기가 들어가지 않는 곳에 손으로 모를 심은 후 친환경 농사를 위해 우렁이 종패도 뿌렸다”, “농촌 지원 대책을 약속했다”는 등등 이날 행사를 상세하게 전했다. 보는 사람의 낯이 뜨거워질 정도의 노골적인 ‘대통령 홍보’ 보도였다.
국민의 기본권 제약은 ‘해명’해주고 대통령의 동정은 자세하고 ‘아름답게’ 홍보해주는 이런 보도행태가 국정홍보 방송이 아니라 공영방송에서 나온다는 현실이 참담할 따름이다.
이명박 정권의 ‘역주행’과 함께 KBS도 ‘역주행’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이명박 정권의 운명과 KBS의 운명도 같을 것이다. 우리는 ‘청부사장’ 이병순 씨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KBS 내부 구성원들이 KBS가 ‘권력비판에는 무력하고 홍보에만 능한 방송’으로 나아가는 데 대해 최소한의 대응이라도 해줄 것을 촉구한다. 그나마 그것이 공영방송 KBS를 국민의 심판으로부터 구하는 길이 될 것이다.
<끝>
 
2009년 5월 2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