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화물연대 광주지부 지회장 자살 관련 조중동 보도에 대한 논평(2009.5.7)한편, 지난 1월 대한통운 광주지사는 대한통운 광주노조지회와 물류 배달 건당 받는 수수료를 현행 건당 920원에서 30원을 인상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채택해 놓고도 3월 15일 합의를 무효화하고, 하루 뒤인 16일 택배기사 78명에게 문자 한통으로 집단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이 때문에 박 지회장은 대한통운 광주지사의 일방적 집단 계약해지에 항의하며 싸워왔고, 경찰은 4월 22일 조합원 2명과 박 지회장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대한통운으로부터 문자 한통으로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 그리고 이들의 복직을 위해 싸우다 수배를 받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 지회장의 처지는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들이 요구한 대로 수수료 30원을 인상할 경우 월 10만원의 임금 상승 효과가 있다고 한다. 택배기사들은 극심한 경제난에 10만원 정도의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다가 문자 한통에 무더기 해고를 당했고, 이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싸웠던 노조간부는 목숨을 끊어 노동탄압에 항의해야 했다.
조선일보는 8면 단신에서 “수배 중이던 화물연대 간부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며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대한통운 광주지사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80여명의 택배기사와 함께 지난 3월 중순부터 광주 등지에서 시위를 벌이다 업무방해 및 불법집회 등 혐의로 지난달 18일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 중인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 역시 10면 단신에서 “3일 오전 11시 50분경 대전 대덕구 대한통운㈜ 대전영업소 인근 야산에서 경찰에 수배 중인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 박모 씨(37)가 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보도하는 데 그쳤다.
중앙일보는 16면에 <불법시위로 수배 중이던 화물연대 간부 자살>이라는 제목의 단신을 싣고, “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수배 중이던 화물연대 간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이 짧은 기사에서도 중앙일보는 박 지회장이 ‘불법시위’를 벌였다고 강조한 것이다.
4일 이후 조중동은 박 지회장의 죽음이나 대한통운 해고노동자들과 관련한 기사를 일절 싣지 않았다.
그러면서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4일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최근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걱정하고, “건강한 가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고 일자리를 지키는 일에 모든 정성과 힘을 쏟겠다”는 등의 발언을 하자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5일 기사로 실었다.
특히 중앙일보는 8면에 <MB “충동 자살 늘어 걱정…죽을 각오면 뭐든 못 하겠나”>라는 제목의 4단 기사를 싣고 “어려울 때일수록 끈끈한 정으로 뭉쳐 이겨냈던 우리의 정신이 다시 살아나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는 등의 대통령 발언을 비중있게 전했다.
한겨레신문은 4일 9면 <화물연대 간부 목매 숨진채 발견>에서 “대한통운한테서 계약을 해지당한 택배기사들의 투쟁을 돕던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 박아무개(38)씨가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며 “박씨가 목을 맨 나무에는 ‘대한통운은 노조탄압 중단하라’고 적은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고 전했다.
5일에는 7면 <“30원만도 못한…” 택배기사들의 눈물/배달료 30원 인상 요구했다 ‘문자’로 해고통지>에서 “대한통운에서 계약 해지된 택배기사들의 ‘복직’을 요구해 오던 박종태(38)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택배기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며 “(해고된) 택배기사들이 대한통운 광주지사에 요구한 내용은 자신들에게 남는 몫인 건당 920원을 950원으로 30원 올려 달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사설 <누가 화물연대 지회장을 죽음으로 내몰았나>에서 한겨레신문은 “박씨의 죽음은 1970년 전태일이 노동3권 보장을 외치며 스스로를 불사른 이래 4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이 땅의 노동 현실은 큰 변화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또 “화물연대 광주지부는 대한통운 쪽의 조처를 화물연대를 와해시키기 위해 사전에 계획된 것으로 의심한다”며 △화물연대 조합원이 가장 많은 대한통운 광주지사가 대상이 됐고, △택배기사 해고 즉시 대체차량이 즉각 투입됐으며,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화물연대 탈퇴를 내세웠다는 등의 근거를 제시했다.
사설은 “박씨를 죽음으로 내몬 일차적 원인은 이런 대한통운의 비인간적인 조처”라고 비판하는 한편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불안한 고용 상태를 방치하는 정부도 그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며 특수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법적 지위를 보장할 것을 주장했다.
6일 1면에서 경향신문은 “대한통운에서 계약 해지된 택배기사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38)의 죽음이 사회 문제로 비화할 조짐”이라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김종인 운수노조 위원장이 “사측은 교섭에 응하지 않고 경찰은 합법 집회조차 막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박 지회장은 이런 숨막히는 상황에서 극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정부의 반노조 정책이 박 지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구조적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며 “경제가 어려울수록 취약 노동자의 노동권을 강화해야 하는데 정부는 기업과 손을 잡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비판을 전했다.
같은 날 칼럼 <[여적] 어느 노숙자의 죽음>에서 경향신문 박성수 논설위원은 박 지회장의 죽음을 전하며 “박씨는 택배기사에게 지불되는 배달료를 건당 920원에서 950원으로 30원 올려 달라고 협상을 벌여왔다고 한다. 단돈 30원 때문에 목숨 거는 피폐한 노동자의 요즘 모습”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들의 죽음은 어두운 우리 사회의 뒷면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도움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된 이웃을 찾아 그들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7일 경향신문은 1면에 대전 읍내동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대한통운 노조원들과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박종태 열사 추모집회 후 거리행진을 벌이는 사진을 실었다. 또 10면 <“화물노동자 죽음은 정부의 타살”>에서는 “계약해지된 택배기사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38)의 죽음에 대해 범진보단체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20여개 정당·사회단체가 6일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박종태 열사의 죽음은 대한통운의 노조 탄압, 경찰의 폭력, 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이명박 정부의 탄압이 저지른 타살”, “범진보진영 차원에서 대책위원회를 꾸려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조중동이 서민의 권리, 노동자들의 권리를 대변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자 한통에 수 십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해고된 노동자를 위해 싸우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적어도 조중동이 ‘신문’의 간판을 달고 있다면 박 지부장의 죽음을 둘러싼 전후 사정, 즉 대한통운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엇이었는지, 대한통운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박 지부장은 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노조탄압에 항의했는지 정도는 사실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극심한 경제난에 무능한 정권으로 인해 더욱 고통 받고 있는 서민과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요즘 조중동은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 ‘주식시장이 살아나고 있다’는 등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에 안간힘을 쓰고, 대통령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대서특필하면서 허울뿐인 ‘녹색성장’을 홍보하는 등 그야말로 ‘정권 엄호’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조중동의 이런 행태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날이 올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