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이종걸 의원의 ‘장자연 문건' 언론사 대표 공개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논평(2009.4.7)“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자각하고 강조”하기 위해 제정되었다는 이 날, 우리는 ‘신문의 사명과 책임’은커녕 거대수구족벌신문의 횡포와 막강한 영향력을 거듭 확인했다. 아울러 수구족벌신문 횡포 앞에 무기력한 대다수 언론들의 모습을 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국회 동영상회의록에 의하면 이종걸 의원은 행안부 장관에게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당시 조선일보 방 사장을 술자리에 만들어 모셨고 그 후로 며칠 뒤에 스포츠조선 방 사장이 방문했습니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보고 받으셨어요?”라고 질의했다.
그동안 ‘장자연 리스트’에 등장하는 언론사 대표가 누구인가 하는 점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연예계의 비리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사의 대표가 성접대, 성상납 사건에 언급된 것 자체가 충격적인 일이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법적 처벌은 물론 언론계에서 퇴출시켜야 할 만큼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6일과 7일 이종걸 의원이 공개한 언론사 대표 또는 언론사의 이름을 실명으로 보도한 곳은 소수의 인터넷신문들 밖에 없다. 6일 <민중의 소리>가 이종걸 의원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했고,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뷰스앤뉴스>가 간접적인 방식으로 해당 언론사를 밝혔다.
방송3사는 6일 저녁 메인뉴스에서 이종걸 의원이 공개한 언론사 대표가 누구인지 보도하지 않았다. SBS는 ‘이종걸 의원이 문건에 있는 유력 언론사 대표를 공개했다’는 사실조차 보도하지 않았다.
7일 <한겨레>, <경향신문>, <동아일보>는 ‘○○일보’, ‘스포츠○○’, ‘해당 언론사’ 등의 표현으로 이종걸 의원 발언을 다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이종걸 의원의 발언 사실 자체를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프레시안> 등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6일 이종걸 의원의 발언 직후 ‘보도에 참고 바란다’며 “본사 최고 경영자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본건과 관련해,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보도하거나 실명을 적시, 혹은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중대한 명예훼손행위에 해당되므로, 관련 법규에 따라 보도에 신중을 기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고 한다.
‘언론권력의 오만함’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조선일보가 진정 진실 앞에 당당하다면 다른 언론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이런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진실이 명명백백 밝혀지도록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이를 위해 협조해야 마땅하다.
그동안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공인’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은 적어도 언론보도에 있어 엄격한 ‘무죄추정’의 대접을 받지 않았다. 진위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폭로’나 ‘의혹제기’에 대해서도 언론들은 거리낌 없이 당사자들의 실명을 거론하기 일쑤였다. 당장 ‘박연차 게이트’만 봐도 온갖 인물들이 실명으로 보도되고 있다.
비위 의혹이 아닌 경우에도 공직자의 실명과 얼굴을 거리낌 없이 공개하면서 비난 기사를 쓰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일보는 광우병대책회의 활동가를 보석으로 석방한 박재영 판사와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 이메일을 공개한 김기영 판사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비판했다.
거슬러 올라가 2005년 조선일보는 이른바 ‘삼성 X파일’을 보도하면서 당시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홍석현 주미대사를 실명으로 다뤘다. 그러면서 “우리가 투명하고 건강한 내일을 만들어 가려면 먼저 X파일 속의 주연들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병든 모습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X파일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과 관련한 의혹들에 대해 고백할 것은 고백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한다.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식이어선 국민의 역정을 돋울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각종 의혹 보도에서 ‘실명 보도’를 주저하지 않았던 언론사들이 이종걸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만 이토록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데 대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아울러 언론사들이 내세우는 ‘국민 알권리’가 얼마나 이중적이고 편의적일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특히 SBS, 중앙일보 등 이종걸 의원의 발언 사실 자체를 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들의 태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우리는 언론들이 적어도 ‘장자연 리스트’를 다루는 보도의 원칙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공인’인 언론사 대표의 실명 보도에 대해 왜 이토록 몸을 사리는 것인지 합리적인 이유를 밝혀주길 바란다.
경찰의 ‘장자연 리스트’ 수사가 한달이 넘도록 지지부진이다. 경찰은 고 장자연 씨에게 술 접대 등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6명을 조사했지만 유독 3명에 대해서는 소환조사는커녕 1차 조사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6일 KBS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3명”에는 장자연 씨 친필 문건에 거론된 신문사 대표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찰은 “이들에 대한 소환조사 계획에 대해선 유난히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온 나라가 거대수구족벌신문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경찰이 언론사 대표들에 대한 수사를 흐지부지 뭉개면서 이번 사건을 덮는다면 국민들의 의혹은 더 커질 뿐이다. 문건에 언급된 언론사 대표들에 대한 수사는 성역 없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만한 철저한 수사만이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고 땅에 떨어진 경찰의 위신을 세울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