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법원의 ‘촛불사건 무더기 배당’ 사건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논평(2009.2.25)
등록 2013.09.2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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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사법부 독립성’, 제대로 보도하라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법이 촛불집회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어 소장 판사들의 반발을 샀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MBC <뉴스데스크>를 비롯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촛불집회 참가자 엄단’ 방침 이후 구속된 8건의 촛불사건이 특정 부장판사에게 집중되었다고 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사건을 무작위 배분해왔던 관행을 벗어난 이례적인 일이었고, 촛불사건을 무더기 배당받은 형사13부 판사는 보수성향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시국사건 배당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판사 13명이 집단 반발하고 나섰고,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 판사들에게 사건 배당방식을 바꾸겠다고 약속해 사태를 수습했다고 한다.
 법원이 시국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었다는 것은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시국사건을 정치적으로 배당하는 일은 사법부가 ‘정권의 시녀’라는 비난을 받던 독재정권 시절에나 벌어졌던 일로 여겨졌다. 법원이 왜 촛불사건을 보수적인 판사에게 몰아주었는지, 그 배경은 무엇인지 철저히 따져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검찰은 물론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이 의심받고 있다. 법원의 ‘촛불사건 몰아주기’에 정권의 입김이 작용한 것인지, 아니면 법원이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
 
 MBC 외에는 한겨레․경향신문만 적극 보도
 그러나 주요 방송과 신문들은 이런 중대한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을 첫 보도한 MBC외에는 한겨레·경향신문만이 이 사건을 다뤘다.
 MBC는 23일과 24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건의 경위와 의혹을 각각 3꼭지씩 자세하게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은 24일 1면 톱기사 <‘촛불사건’ 특정 재판부 몰아줘/판사들, 반발 대책회의 했었다>와 11면 <사법부 ‘촛불 코드배당’ 불만/소장 판사들 한때 집단행동>에서 이번 사건을 보도했다. 한겨레는 “소장 판사들이 집단적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대응에 나섰다는 점은 촛불집회 사건의 정치적 함의 때문에 사법부의 중립성이나 독립성 문제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사건의 의미를 분석했다. 또 “재판 배당에 대한 불만 말고도 영장재판과 관련한 불만도 작용했다는 설명도 나오고 있다”며 “검찰과 경찰이 강경몰이로 돌아선 뒤 법원 역시 이에 맞춰 영장을 발부하자 ‘사법부도 코드 맞추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25일 1면 톱기사 <서울중앙지법 수뇌부 ‘촛불재판’ 개입>에서는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신영철 대법관이 이 문제에 대해 판사들의 입단속을 지시했으며, 허만 수석부장판사는 단독판사들에게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벌금형이 아닌 구류형 선고를 요구하고, 구속영장 신청시에도 ‘증거인멸·도주우려가 없다’대신 ‘소명부족으로 기각시키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또 사설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코드 배당’>을 싣고 법원의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경향신문도 24일과 25일 ‘사법부 독립성’ 문제에 초점을 맞춰 적극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24일 1면 톱기사 <‘촛불집회’ 재판 한곳에 몰아주기 배당/소장판사들 반발에 방식 바꿔>, 11면 11면 <민감한 시국사건 전례없는 ‘집중배당’>를 통해 “‘시국사건’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소장 판사들의 반발은 과거 사법파동 때나 있었던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서울중앙지법 촛불집회 사건 재판 결과를 표로 정리했는데, 5건의 사건이 ‘몰린’ 형사13단독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대부분 징역형 실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벌금과 사회봉사명령 160시간, 240시간씩을 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재판부가 바뀐 후 판결에서는 ‘집시법 위헌제청 후 보석허가’가 내려져 차이를 드러냈다. 25일 10면 <“사법부 스스로 ‘정치화’ 중대 사건”>에서 이번 ‘몰아주기 배당’에 대한 법조계의 비판 목소리를 전했다. 또 ‘몰아주기 배당’이 5건이 아니라 8건이라고 보도했다. 사설 <판사들이 법원 독립성을 의심할 정도라면>에서는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우려했다.
 
 ‘공영방송’ KBS의 ‘무기력’과 ‘무책임’ 
 반면, 조중동은 24일과 25일 관련 기사를 싣지 않았다. KBS와 SBS도 25일 관련 보도를 하지 않았다.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이 걸린 문제를 이토록 홀대해도 좋은 것인가?
 이명박 정권과 ‘한 몸’일 뿐 아니라 사법부를 ‘길들이기’ 하려는 조중동이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을 감시하고 비판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KBS와 SBS가 이번 사건을 외면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KBS의 침묵은 ‘공영방송’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최근 KBS가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의제를 던진 것이 있었나? ‘공영방송’으로서 적극적인 의제설정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이미 제기된 의제에 대해서라도 제대로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KBS의 보도행태는 ‘무기력’과 ‘무책임’의 극치라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명박 정부 들어 사회 곳곳에서 ‘역주행’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사법부마저 노골적인 ‘정권 눈치보기’, ‘정권 코드 맞추기’에 나선다면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후퇴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게다가 지금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것은 비단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얼마 전 대법원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사건’ 최종선고 기한이 2개월이나 늦었는데도 재판부를 변경하고 원점에서 다시 심리를 하기로 해 뒷말이 무성하다. 어디 이뿐인가? 수구족벌신문들까지 나서 사법부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길들이려고 준동해왔다. 특히 조선일보의 ‘재판부 길들이기’ 행태는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지난해 8월 광우병대책회의 안진걸 팀장의 재판을 맡았던 박재영 판사가 집시법 위헌재청 후 보석을 허가하자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법복 벗고 시위에 나가라’며 극언을 퍼부었다. 최근 박재영 판사는 ‘법복’을 벗었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이렇게 유린되어도 좋은 것인가? 
 ‘사법부 독립’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KBS와 SBS가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명심해주기 바라며 적극적인 보도를 촉구한다. <끝>
 
 
 
2009년 2월 25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