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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연쇄살인사건 적극 활용 지시’ 의혹에 대한 논평(2009.2.12)
등록 2013.09.2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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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3사, 2004년과 2009년은 왜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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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청와대가 용산 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또 오마이뉴스는 이날 김 의원이 폭로한 청와대 ‘문건’ 내용을 입수해 보도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에 ‘군포연쇄살인 사건 적극 활용’ 지시를 내린 사람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의 한 행정관이다. 문건은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사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란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연쇄살인 사건 담당 형사 인터뷰 ▲증거물 사진 등 추가정보 공개 ▲드라마 CSI와 경찰청 과학수사팀의 비교 ▲사건 해결에 동원된 경찰관, 전경 등의 연인원 ▲수사와 수색에 동원된 전의경의 수기” 등을 홍보의 구체적인 예로 들어 지시하고 있다.
언론사를 직접 상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만 빼면 ‘신종 보도지침’이라 할 만 하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문건은 설연휴 이후 경찰청 홍보담당관과 서울경찰청 인사청문팀에 이메일로 발송됐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11일 “청와대가 경찰청에 공식적으로 문건을 보내거나 지침을 내린 적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12일에는 “사실 여부를 포함해 경위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김 의원의 폭로와 오마이뉴스 보도한 내용이 ‘경기서남부 살인사건’과 ‘용산참사’를 다룬 실제 언론보도와 얼마나 맞아떨어지는지 살펴보기 위해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의 방송보도들을 분석해보았다. 지난 설 연휴 직후인 1월 30일부터 2월 3일경까지 방송보도는 가히 ‘올인’이라 할만큼 경기서남부 연쇄살인사건 보도에 열을 올리며 용산참사를 외면했다.

설 연휴 기간인 1월 25일 경찰은 실종됐던 군포 여대생 실종사건의 용의자를 체포했다. 그러나 29일까지 이 사건은 하루 평균 2~3건에 그치다가 30일부터 급증한다. 반면 용산참사 관련 보도는 설 연휴가 시작되면서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연휴가 끝난 후에도 전혀 늘지 않는다.
30일부터 방송3사의 연쇄살인사건 보도가 급증한 데에는 여대생 실종사건 용의자가 경기서남부 여성 연쇄실종사건의 용의자로 밝혀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군포 여대생 실종 사건’에서 ‘경기서남부 여성연쇄살인사건’으로 파장이 확대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보도량의 증가 정도와 계속되는 ‘올인보도’ 양상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반면 용산 참사의 경우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둔 시점에서도 전혀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2월 3일 MBC <PD수첩>이 경찰이 용역직원을 진압에 동원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경찰과 검찰의 발표가 사실이 아니었음을 폭로했는데도 관련 보도량은 2~3건 늘었을 뿐이다.
가파른 보도량의 증가를 보였던 경기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은 2월 3일을 기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5일부터는 급격하게 줄었다. 2월 3일은 용의자가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된 날이다

 

[표2]는 경기서남부 연쇄살인사건 보도량이 급증하는 1월 30일부터 2월 4일까지 보도의 주요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경찰 수사상황과 수사과정, 범행방법 및 장소, 추가범죄 의혹, 용의자 심리상황과 같이 경찰이 제공한 자료를 참고한 보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총 155건 중 무려 101건(총 보도량의 약 2/3)이 경찰 제공한 ‘소스’와 관련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추가범죄 의혹을 다룬 부분에서 방송3사는 용의자의 네 번째 부인과 장모에 대한 방화 혐의, 용의자의 고향에서 발생한 2004년 ‘서천 카센터 화재사건’, 2004년 화성 노모양 살해 사건 등을 언급한 비슷한 내용의 보도를 반복적으로 내놓았다. 또 경찰이 용의자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22개월의 기간 동안 추가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두고 500여건의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른바 청와대 ‘문건’에서 언급된 내용도 눈에 띄었다. 경찰이 용의자를 잡게 된 과정과 DNA검출 등 과학수사 기법, 프로파일러의 활약상 등 경찰에 대한 “긍정적 프레임”을 적용한 보도가 여러 건 있었다.


우리는 방송3사가 청와대의 ‘문건’에 따라 움직였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연쇄살인을 다루는 범죄보도에서 언론보도는 경찰에 상당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의 청와대 ‘문건’에서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사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란다”는 대목이 의미심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이 언론의 접근이 제한된 연쇄살인 용의자나 연쇄살인과 관련한 정보들을 통해 언론의 과열보도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범죄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연쇄살인 용의자 말은 경찰만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다. 객관적인 뉴스가치와 관계없이 언론이 관심을 가질만한 선정적인 내용을 경찰이 제공했을 때 언론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뻔하다. 실제로 용의자의 ‘책 발간’ 발언은 거의 모든 언론이 다뤘고 이런 말을 한 그의 ‘심리상태’, ‘목적’ 등을 따졌다.
청와대의 ‘문건’이 바로 언론의 바로 이런 반응을 노린 것이 아닌지, 그리고 경찰은 이런 지침에 따라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는 지난 2004년 21명을 살해한 용의자 유영철이 검거되어 검찰에 송치되기까지 방송3사의 보도량 변화와 2009년 경기서남부 연쇄살인사건 용의자가 검거되어 검찰에 송치되기까지 방송3사의 보도량 변화를 비교해 보았다.
 

2004년 방송3사 보도를 살펴보면 유영철이 검거된 둘째 날 이후에는 보도량이 급감했다. KBS는 3건, MBC는 2건, 가장 많은 보도를 한 SBS는 5건이었다. 이후 방송3사는 유영철이 검찰에 송치되기까지 하루 평균 1.1건 정도의 보도량을 보였다.
반면 2009년 경기서남부 사건의 보도 양상은 다르다. ‘군포여대생실종 사건’에서 ‘연쇄살인사건’으로 확대된 것이 1월 30일이라고 보면, 방송3사는 이날부터 검찰 송치일까지 지속적으로 ‘연쇄살인 올인’ 보도행태를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방송3사는 앞서 [표1]에서 보듯 연쇄살인 용의자가 검찰에 송치된 다음날에도 4건에서 6건에 이르는 보도를 했다. 절대적인 보도량은 급감한 것이지만 2004년 유영철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상대적으로 많은 보도량이다.
방송3사의 보도 경향이 이토록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이명박 정권은 언론 보도에 대한 숱한 외압 의혹, 방송장악 시도, 인터넷 통제 등등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는 반민주적 행태를 저질러왔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변종 보도지침’까지 만들어 국민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을 물타기하고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면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연쇄살인범을 내세워 공권력의 잘못을 덮으려 했다’는 발상 자체부터 엽기적인 국민기만이다.
설령 국민소통비서관실의 행정관이 ‘개인적’으로 한 일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직원이 ‘국민소통’을 내세워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을 제 임무로 알았다면 그 자체가 이 정권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의 전말을 있는 그대로 소상히 밝혀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이다. 어물쩍 은폐하려들거나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려든다면 더 큰 분노를 초래할 뿐이다. <끝>
 
2009년 2월 12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