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안경률 사무총장과 함께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성향’을 분류해 놓은 문건을 보고 있는 것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문건은 “이명박 정부의 금융선진화 및 규제개혁 차원의 핵심 개혁 입법안이 야당의 저항이 아닌 ‘한나라당 이견’으로 인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며 산업은행 민영화, 동의명령제, 지주회사법 등에 대한 정무위 소속 의원들의 입장을 ‘절대반대’, ‘반대’, ‘소극 반대’ 등으로 분류해놓았다. 여기에는 원내대표인 홍준표 의원, 국회 정무위원장 김영선 의원 등 당내 지도부들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이상득 위원은 “금융계 인사가 뭘 하나 주길래 받아서 펼쳐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이상득 의원은 ‘만사형(兄)통’, ‘상왕정치’라는 말이 나올 만큼 권력 실세로 꼽힌다. 그런 그가 ‘동생 정권’이 밀어붙이는 법안을 반대하는 의원들의 명단과 성향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법안에 대한 당내의 다양한 의견을 ‘관리’하고 정부에 ‘협조’하도록 만들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상득 의원의 문건 파문과 그 심각성을 적극적으로 다룬 것은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정도였다.
경향신문은 6일 첫 보도를 내보낸데 이어 8일에는 사설 <‘형님’ 이상득, 문건 경위 밝히고 사과해야>를 실었다. 사설은 이번 문건 파문이 “‘상왕 정치’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라며 이상득 의원에게 ‘문건의 경위를 밝히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9일에는 <만사형통·상왕…‘비공식 권력’ 개입의 그림자>(3면)를 통해 이상득 의원의 당내 영향력과 정치 개입 의혹 사례들을 다뤘다. 이날 사설 <문건 파문, 한나라당 침묵이 더 문제다>에서는 이상득 의원의 행태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 하지 못하는 한나라당의 분위기를 비판하기도 했다.
한겨레도 8일 <누가 ‘대통령 형님’에게 줬을까>(8면)에서 “‘형님’이 ‘비공식 라인’을 통해 여전히 ‘상왕정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고 지적하고 당사자들의 반응을 다뤘다. 이날 사설 <대통령 형이 정권의 방첩대인가>에서는 “흡사 내부의 적을 찾아내 분쇄하는 방첩대의 그림자가 이상득 의원의 모습에 아른거린다”며 새 정부 출범 뒤 정치에서 손을 떼라는 당내의견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국회회원 배지를 달았던 이 의원의 행보를 비판했다.
9일에도 <틀어막힌 ‘형님 문건’ 출처조사>에서 한나라당 내 반발을 다뤘다.
조선일보는 8일 <개혁입법 관련 여의원 성향분석 문건 논란>(6면)을 통해 ‘이상득 문건’에 대해 다뤘지만, 기사의 절반가량을 이상득 의원과 안경률 사무총장의 해명으로 채웠다.
이날 조선일보는 사설 <대통령 형이 읽고 있던 국회의원 성향 분석 보고서>도 실었는데, 그야말로 ‘솜방망이’ 비판이었다. 사설은 “보고서가 권력 핵심에서 작성돼 이 의원에게 전달된 것이라면 이 나라엔 법과 제도에 의한 권력 외에 대통령 핏줄에 의한 권력이 따로 있는 거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하며, “이 의원이 그런 눈길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동생인 대통령에게도 득(得)이 될 리가 없다”, “대통령의 핏줄의 행동을 절제하지 못해 생겼던 일들이 정권에 얼마나 부담을 주곤 했는지를 이 의원도 이미 너무 많이 봐왔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데 그쳤다.
동아일보는 8일 <이상득 소지 ‘與(여)의원 성향 문건’ 논란>(6면)에서 문건 파문을 ‘논란’으로 간단하게 다루는데 그쳤다.
중앙일보는 관련 기사를 아예 싣지 않았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조중동이 대통령과 고위관료,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들을 다룰 때 얼마나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는지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참여정부에 들이댔던 조중동의 그 잣대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사돈의 팔촌’의 도덕성까지 따지던 잣대는 어디 갔는지, 이명박의 사람들은 위장전입·부동산투기 등 온갖 의혹을 받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직자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꼬투리 잡았던 그 잣대도 어디로 갔는지,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기자들에게 욕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디 이 뿐인가. 불법경품 규제도 ‘언론탄압’이라고 목청을 높였던 ‘언론자유’의 잣대는 또 어디로 갔는지, 노골적인 방송장악 시도에도 비판의 목소리는 없다. 걸핏하면 ‘경제가 어렵다’고 떠들더니 정작 최악의 경제난이 닥치자 한국경제를 걱정하는 외신을 공격하고, ‘대통령의 눈물’을 1면에 드러내 경제실정의 책임을 슬쩍 덮으려 한다.
우리는 조중동에게 묻고 싶다. 만약 지난 정권에서 ‘대통령의 형님’이 여당 의원의 성향을 분석하다가 들통 났다면 어떻게 보도했을 것인가? 적어도 비판의 일관성은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조중동은 ‘이명박 정권을 어떻게 하면 잘 방어할까’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안에서는 조선일보가 앞서고, 또 다른 사안에서는 중앙일보가 앞선다. 이번 ‘이상득 문건 파문’에서는 중앙일보가 단연 앞선 셈이다.
조중동이 그야말로 ‘죽을 쑤고 있는’ 이 정권을 위해 낯 뜨거운 ‘친여경쟁’을 벌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중동은 혹시 이명박 정권이 ‘협조적인 언론을 위해 준비하는 당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신문방송 겸영’의 성사를 위해 노골적인 ‘친이명박 보도’, ‘친여보도’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만약 방송사를 가져보겠다는 욕심에 ‘친여경쟁’을 벌이는 것이라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조중동의 ‘친여경쟁’은 왜 조중동에게 방송진출을 허용해서는 안되는 것인지 더 분명하게 보여줄 뿐이다.
조중동은 낯 뜨거운 ‘친여경쟁’을 그만두고, 권력에 대해 ‘비판다운 비판’을 한 번 해보라. ‘신문’을 자처하는게 부끄럽지도 않나.<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