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한나라당이 방송법을 비롯한 7개 미디어 관련 법안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야말로 ‘개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법안들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신문방송 겸영허용’을 핵심으로 하는 신문법 개정안, 방송법 개정안은 우리사회 여론다양성을 붕괴시키고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용이다.
우리는 한나라당이 내놓은 신문법 개정안과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밝히며, 언론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 제 세력과 연대해 한나라당의 개악시도에 맞설 것임을 분명히 한다.
1. 한나라당의 신문법안은 ‘여론다양성의 마지노선을 붕괴시키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번 신문법 전부개정안은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제출한 신문법안 중에서도 가장 퇴보한 내용이다.
신문법 개정안 중 가장 심각한 부분은 제15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일간신문과 방송의 겸영금지 조항 삭제다. 이는 지금까지 한나라당의 신문관계 법안에서 유지되었던 ‘제한적인 신문방송겸영’이란 입장마저 포기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2004년 신문법안, 2006년 신문법안을 통해 신문시장 점유율과 연동된 제한적 신문방송 겸영과 소유를 제시해왔다. 2004년에는 신문시장 점유율이 20%미만인 신문사업자에 한해 방송의 1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어 정병국 의원이 발의한 2006년 신문법 개정안은 시장점유율 20%미만의 일간신문과 시청점유율 20%미만의 뉴스통신사업자만 지상파 방송을 포함하는 방송사업 일반에 겸영과 출자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발의된 신문법 전부개정안은 그동안 한나라당이 주장했던 ‘최소한의 제한장치’까지 포기하고 아예 겸영금지 조항을 삭제해 신문방송겸영을 전면 허용하는 내용이다. 정병국 의원은 다매체의 등장과 방통융합으로 여론독과점의 우려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실증적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신문방송 겸영규제 완화는 우리사회 민주주의의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2006년 헌법재판소도 “미디어환경의 획기적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설령 헌재의 결정이 아니더라도 신문방송 겸영규제를 풀려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철저하게 조사연구하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주장했던 제한적인 신문방송 겸영입장을 포기하고 대기업과 과점신문을 위한 전면적인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고 나서려면 객관적 근거부터 내놓아야 마땅하다.
일각에서는 지상파방송의 여론독과점이 심각하므로 신문방송겸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문방송겸영이나 교차소유가 가능한 미디어는 신문시장이나 방송시장의 과점사업자이다. 이들이 겸영이나 교차소유하면 여론지배력의 전이를 넘어서 ‘융합’현상으로 극대화될 것은 뻔한 일이다. 신문방송 겸영을 통해 여론독과점을 해소한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한편, 한나라당의 신문법 개정안은 일간신문과 방송의 겸영금지 조항 뿐 아니라 신문의 복수소유 규정까지 모두 삭제해 ‘일간신문의 복수소유’를 전면 허용하고 있다.
이 조항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헌재가 신문의 복수소유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시장점유율과 매출액 등 신문시장에서 점하는 비중 등을 불문하고 모든 일간신문에 일률적으로 복수소유를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였다. 즉 일간신문 지배주주에 의한 복수소유의 결과가 신문의 다양성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하라는 것이지 복수 소유를 전면 허용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사실, 한나라당도 2004년과 2006년 신문법안을 제출할 때, ‘신문의 인수합병의 결과로 시장점유율 30%가 넘어서면 안된다’는 조문을 포함한 바 있다. 특히 2006년 신문법안은 헌재의 결정 내용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헌재 결정의 취지까지 뒤집고 신문의 복수소유를 전면 허용하겠다고 나선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나라당 신문법안은 신문법의 자료신고 조항마저도 삭제했다.
자료신고를 통한 신문기업의 경영투명성 확보는 사회적 감시자로서 신문의 위상 정립과 독자에 대한 정보 제공 차원에서 필수적이다. 헌재도 이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ABC협회를 통한 부수공사를 강화하고 대신 신문법의 자료신고 조항은 삭제하겠다’고 공언했으며, 한나라당은 문체부의 이런 공언을 법안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발행부수, 유가부수 등 신문사의 경영자료 없이 언론진흥기금을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여론집중도(법안 제16조) 조사를 하겠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여론집중도를 조사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 내용이 없어 그 의도를 의심케 한다.
신문지원기관 통합의 방향도 문제다.
통합기관인 ‘언론진흥재단’은 문체부 산하의 특수공익법인으로 설치하도록 되어있다(법안 제28조제4항). 통합대상은 신문발전위원회, 언론재단, 신문유통원이다. 언론재단은 사실 신문지원기관도 아니다. 정관 그대로 하면 종합미디어진흥기관이다. 그럼에도 신문지원기관이라고 통합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언론진흥재단의 직무에는 신문지원기관의 것으로는 보기 어려운 언론재단 직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통합방향은 문체부가 통제하기 쉬운 산하 특수공익법인의 형태로 언론재단을 중심으로 신문발전위원회이나 신문유통원을 통합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신문지원기관의 중심이며 법적 위상이 높은 신문발전위원회가 통합의 일개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이번 신문법 개정안에서는 ‘언론진흥기금을 통한 신문지원제도’의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법안에 따르면 언론진흥재단이 언론진흥기금의 지원 기준과 지원 대상을 매년 공고하도록 되어 있고(제35조제3항), 언론진흥기금의 관리운용을 위해 언론진흥기금관리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언론진흥기금관리위원회는 심의권만 있는 위원회로(법안 제35조 제2·3항) 사실상 권한이 없으며, 언론진흥기금에 대한 전권은 언론진흥재단의 이사진에 결정하게 된다. 결국 문체부 산하의 언론진흥재단이 지원의 형식과 내용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 이렇게 자의적인 방식의 신문지원제도가 있는가? 기금을 무원칙하게 나눠주게 되거나 아니면 현재 언론재단 방식의 지원이 될 가능성 높다.
신문지원의 근본 취지는 ‘여론다양성 보장’에 있다. 원칙과 기준 없이 정부가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지원금을 나눠준다면 ‘언론진흥기금’은 여론다양성 보장은커녕 권력이 언론을 순치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크다.
2.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은 ‘재벌방송’·‘조중동 방송’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방송법 개정안 역시 민주주의와 여론다양성을 파괴하는 개악안이다.
한나라당은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자유의 신장, 미디어산업의 활성화, 대국민 서비스의 향상이라는 3대 기조” 아래 방송법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무리 뜯어보아도 개정안의 어디를 두고 이런 주장을 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은 방송사업자의 재허가기간 연장과 방송광고 규제완화의 내용을 일부 담고 있지만, 핵심은 신문사, 대기업, 외국자본의 전면적인 방송 진출 허용이다. 신문방송 겸영 수준을 넘어서서 아예 ‘재벌방송’, ‘조중동방송’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은 현행 방송법이 금지하고 있는 지상파방송, 보도·종합편성PP에 대한 신문·통신사와 대기업의 소유를 대폭 허용토록 하고 있다. 지상파방송의 경우는 전체의 20%까지, 보도·종편PP의 경우에는 49%까지 대기업과 신문·통신사가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한나라당은 방송법 개정안 발의 이유로 “새로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국제적 시장개방 조류에 대응”하기 위해서 또는 “우리 방송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는 어처구니없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현행 방송법은 이미 대기업과 신문사의 방송사업 진출을 허용하고 있다.
자산총액으로 재계 순위 7위인 GS그룹이 홈쇼핑방송 사업을 하고 있고, 중앙일보도 계열사인 중앙방송을 통해 Q채널 등 여러 개의 PP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방송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기업과 신문사의 방송 진출은 현행 법제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민주적 여론 형성의 중요성과 그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취재와 보도 기능을 가진 보도전문PP와 종합편성PP, 그리고 지상파방송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신문사의 소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면적인 소유규제 완화의 근거로 ‘방송산업의 경쟁력 강화’ 운운하는 것은 허울에 불과하다. 그 속셈은 혼맥과 학맥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 사회 기득권 중의 기득권인 극소수 거대재벌과 수구언론권력 및 정치권력의 여론 장악과 사회 통제를 위한 것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에 따르면, 2~3개 재벌그룹이 함께 연합하여 지상파방송이나 보도·종편PP의 지배주주로 등장할 수 있다. 아울러 이들 대기업과 수구언론 조중동이 나란히 손잡고 지상파방송과 보도·종편PP를 지배할 수도 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세계관마저 동질적인 대기업·수구언론·정치권력의 입맛대로 중산층과 서민의 생존권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강부자’를 위한, ‘강부자’에 의한, ‘강부자’만의 뉴스가 우리의 눈과 귀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한나라당은 보도·종편PP에 대해서는 외국자본의 출자 및 출연까지 허용하려 들고 있다. 방송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초국적 자본들에게 우리의 미디어시장, 여론시장을 내주겠다는 발상이다. 이럴 경우, 우리 사회의 여론 형성이 어떻게 변질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한편 한나라당은 우리나라의 미디어 분야 규제가 과도한 반면, “현재 선진 각국은 ... 시대적 조류에 발 빠르게 대응하여 ... 규제의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방송법 개정안이 시대적 조류인 양 주장했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 ‘선진국의 대세’, ‘시대적 조류’ 등을 내세우는 한나라당의 규제완화 만능론은 그야말로 철지난 주장이자 미디어 분야의 역주행이다. 한나라당이 그렇게 좋아하는 선진 각국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과도한 규제완화(deregulation)의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해 ‘재규제’(reregul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미디어 정책도 이런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각국이 신자유주의의 조류를 성찰하고 대안을 찾는 상황에서, 특히 대자본에 의한 방송소유·신방겸영의 엄격한 제한을 모색하는 마당에 방송소유·겸영규제 철폐를 ‘글로벌 스탠더드’인 양 포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소유제한 완전 철폐 방침은 최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논란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내세웠던 논리보다 더 퇴행적인 것이다.
얼마 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지상파방송과 보도·종편PP에 진출할 수 있는 대기업의 범위를 자산총액 3조원 미만에서 10조원 미만으로 완화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대기업에 대한 방송소유 규제완화가 민주적 여론 형성에 미칠 부정적 영향력을 여러 차례 지적하며 시행령 개정에 반대했다.
그럴 때마다 방통위는 “자산총액 10조원 미만의 대기업은 재계 순위 20위권 밖이기에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과는 달리 사회적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방통위의 논리마저 뛰어넘었다.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은 아예 “대기업의 자산규모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비유하자면, 자산총액 144조원으로 재계 순위 1위인 삼성그룹이 조중동과 손잡고 ‘9시 뉴스’를 방송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불필요한 규제, 과도한 규제의 개선은 필요하다. 미디어산업의 발전, 방송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내놓은 신문법·방송법 개정안은 극소수 재벌과 과점신문들이 미디어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문만 활짝 열어주겠다는 내용이다. 재벌과 조중동이 방송사를 소유하고, 거대 미디어복합그룹을 만드는 것이 ‘미디어산업의 발전’, ‘방송산업 경쟁력’이라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천박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 재벌과 조중동의 방송진출을 통해 수구기득권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고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겠다는 정략적 의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런 퇴행적 개악안은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거센 저항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집권여당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이 있다면 사회갈등을 부추기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개악안 밀어붙이기를 중단해야 마땅하다.
한나라당이 끝내 의석수를 믿고 악법을 밀어붙인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