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일부 단체들이 대북 전단 살포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일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러 나섰다가 충돌이 빚어졌고, 이 과정에서 한국진보연대 회원이 폭행을 당해 크게 다치기도 했다.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사실상 방치하는 바람에 남북관계는 남북관계대로 악화되고, 우리 민간단체들끼리도 갈등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날 방송3사는 모두 저녁종합뉴스에서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한 보도를 내보냈다. 그러나 보도의 초점은 전단 살포를 둘러싼 ‘충돌’과 ‘갈등’에 맞춰졌고 여기에 정부 여당 관계자의 발언을 짧게 덧붙이는 정도였다. 지금 대북 전단 살포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단 살포에 대한 정부 대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등등 ‘남북관계’라는 큰 틀에서 전단 살포의 문제점과 대책을 짚어본 보도는 없었다.
MBC는 <전단살포 충돌>이라는 보도에서 전단 살포를 둘러싼 단체들 간의 충돌을 다뤘다. 보도는 “임진각 자유의 다리 입구에서 갑자기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안경을 낚아채자 주먹질과 욕설이 날아들고 급기야 허공을 향해 가스총을 발사하는 사태까지 번졌다”, “숫자에서 밀린 북한인권단체 측이 화물차 위로 올라가 전단 살포를 강행하자 진보단체측이 달려들어 아수라장을 이뤘다”, “양측의 몸싸움으로 9만여 장의 전단지는 북쪽으로 살포되지 못하고 이렇게 길바닥에 흩어지고 말았다” 등등 당시 상황을 ‘중계’하는 데 그쳤다.
한편 진보연대 회원이 둔기에 맞아 머리를 다쳤다는 사실은 전하지 않은 채 “둔기를 휘두른 북한인권단체 회원 1명은 경찰에 연행됐다”고만 언급했다.
이어 보도는 “한편 북측은 최근 군인들을 대거 동원해 전단 수거에 나서는 등 전단내용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짧게 덧붙였다.
SBS는 대북 전단 살포 과정에서 빚어진 충돌 상황을 전한 뒤, ‘해법을 찾아보겠다’는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기자회견 발언을 덧붙였다.
SBS는 <보수-진보 충돌>이라는 보도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거친 몸싸움이 벌어져 진보단체 회원 1명이 머리를 5바늘 꿰매는 등 여러 명이 다쳤다”면서 충돌 상황을 전했다. 이어 “보수단체 쪽은 당초 준비했던 전단 10만 장 가운데 만 장을 대형풍선에 달아 날려보내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며 “계속 전단지 작업을 해서 날씨만 좋으면 매일 보낼 것”이라는 보수단체 회장과 “일단 전단 살포를 하게 되면 남북관계에서 긴장고조가 되면 저희가 도움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한국진보연대 회원의 인터뷰를 나란히 실었다.
보도는 ‘북한이 전단지 수거에 군병력을 동원한다’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 소식을 전한 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외신 기자 회견에서 북한이 내세우는 남북관계 경색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전단 살포라며, 전단 살포 단체와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보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KBS는 <내일까지 인력 철수>라는 보도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둘러싼 충돌과 함께 개성공단 철수 상황, 김하중 통일부장관의 ‘대화촉구 발언’을 다뤘다.
보도는 “개성공단에 상주할 수 있는 인원 880명을 제외한 남측 인원 501명 가운데 436명이 오늘 남측으로 돌아왔다”며 개성공단 철수 상황을 전달했다. 이어 “전단 살포를 강행하려는 측과 이를 막겠다는 측이 맞서면서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며 “격렬한 실랑이 속에 가스총이 발사되고, 둔기를 휘두른 사람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고 애매하게 표현했다. 이 보도로는 누가 폭력을 휘둘렀는지, 누가 부상을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어 보도는 “24시간 전단지 작업을 해서 날씨가 좋으면 매일 보내겠다”는 보수단체 회장과 “긴장이 고조되면 국민에게 피해를 미칠 수밖에 없다”는 진보연대 간부의 인터뷰를 나란히 실었다.
보도 마지막에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지금까지 발언 가운에 가장 적극적인 표현으로 북측에 대화를 촉구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장관 발언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라는 정부 당국자는 설명을 전했다.
그동안에도 방송3사의 대북 전단 살포 관련 보도들은 대부분 ‘전단살포 상황’, ‘정부의 자제요청’, ‘북측 반발’을 단순 전달하는 데 머물렀다.
KBS는 <전단살포 자제요청>(10/8 단신), <전단살포 강행>(10/10), <“전면차단” 경고>(10/17), <전단살포에 항의>(10/27)에서 전단 살포 문제를 다뤘는데,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른바 ‘보수단체’들의 전단 살포 강행, 정부의 자제 요청 사실, 북한의 반발을 전한 것이다.
정부의 대처를 다룬 <‘적극대처’에 반발>(11/19)에서도 통일부와 외교부 등 관계자들이 대책 회의를 갖고 “전단 살포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전한 뒤 각계의 입장을 나열하는 정도였다. 정부의 ‘적극 대처’ 방침에 대한 전단 살포 단체들의 반발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정부 비판, 정부의 적극 대처를 바라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입장을 전하고, “북측의 압박과 해당 단체들의 반발 속에 전단 살포를 둘러싼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마무리하는 데 그쳤다.
MBC도 비슷한 보도 경향을 보였다. 그나마 11월 14일 보도 <안막나? 못막나?>에서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답답한 처지와 함께 대북 전단 살포를 막을 법적 근거를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고, 전단을 뿌리는 단체들과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 사이의 충돌사태가 우려 된다’고 지적하는 데 그쳤다.
SBS 역시 <전단지 살포 강행>(10/10), <전단살포 강행>(11/20) 등에서 전단 살포 단체와 정부 입장을 전하는 정도였다.
우리는 방송들이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이처럼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이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대북 전단 살포를 지금처럼 방치해서는 악화될대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어렵다. 물론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원인이 ‘대북 전단 살포’만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 핵심기조라 할 수 있는 이른바 ‘비핵·개방·3000 구상’ 자체가 북측의 반발을 초래했다. 또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 6.15와 10.4 선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한 발언이 잇따랐다. ‘북핵문제가 계속 타결되지 않고 문제가 남는다면 개성공단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3월 19일 김하중 통일부 장관), ‘제일 중요한 것은 적(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3월 26일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 ‘가장 중요한 남북한 정신은 1991년에 체결된 기본합의서’(3월 26일 이명박 대통령) 등의 발언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정부가 불필요하게 북측을 자극하고, ‘한미동맹’만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남북관계에 대한 일관된 철학 없이 오락가락 대응을 거듭하는 가운데 북한은 ‘통미봉남’으로 나아가면서 남한을 압박했다.
며칠 전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발전돼 가던 남북관계가 경색된 시초가 금강산 총격”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남북관계는 점점 경색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금강산 관광객 피습 사건이 일어나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보수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는 점점 경색되어온 남북관계에 ‘쐐기’를 박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남북관계를 더욱 꼬이게 만들면서 북한의 인권이 개선되기를 바라거나 ‘납북자 송환’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전단을 뿌리는 측의 목적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남북관계만 악화시키는 대북 전단 살포는 정부가 나서서라도 중단시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국민들도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비판적이다. CBS 여론조사에서는 전단 살포를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61.4%로 나타났다. 전단 살포가 ‘표현의 자유’기 때문에 제한할 수 없다는 의견은 22.2%에 그쳤다. 보수적인 기독교계 인사들 중에도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겉으로는 ‘적극대처’를 말하면서도, ‘전단살포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논리로 사실상 대북 전단 살포를 수수방관해 왔다. 여당 인사들도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왜 전단 살포를 막느냐고 정부를 질타하는가 하면, 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야당 의원의 말꼬리를 잡고 물고늘어지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여기에 더해 수구보수신문은 대북 전단 살포를 막으려는 시민단체들에게 색깔론을 퍼붓기도 한다. 오늘(4일)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북한 주민의 귀를 열고 눈을 뜨게 해주겠다는 전단 보내기엔 왜 시비를 거느냐’, ‘북의 대리인’ 따위의 저질 표현을 동원해 색깔공세를 폈다.
그러나 대북 전단 살포야말로 ‘이념’이 아닌 ‘실용’의 관점에서 풀 문제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개성공단 기업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관계마저 꼬이고,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까지 어려움을 겪었을 때 우리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방송사들이 대북 전단 살포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정부의 방치가 왜 문제인지 등을 적극적으로 보도해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 정부가 손 놓고 있다고 방송마저 전단 살포 장면, ‘보수-진보 충돌’ 장면이나 보도한다면 장차 남북관계가 어떻게 될지 참으로 걱정이다. 방송사들이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해 최소한의 견제와 비판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시름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