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종부세 무력화’ 판결에 정부와 한나라당, 조중동, ‘부동산 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헌재는 종부세의 근본 취지와 정당성은 인정하면서도 가구별 합산과세 규정에 ‘위헌’ 판결을 내려 종부세의 근간을 흔들게 됐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수구보수 세력들은 이런 판결조차 ‘미흡’하다며 국회를 향해 ‘종부세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또 헌재 판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정조사에 나와 “헌재에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구두로 설명하는 것은 기존의 관행인 만큼 앞으로도 헌재에서 필요하다고 한다면 하겠다”며 억지를 부렸다. 조중동도 14일 사설을 통해 쾌재를 불렀다. 바야흐로 ‘부자를 위한 정부’, ‘부자를 위한 법’, ‘부자를 위한 신문’이 판을 치는 ‘부자들의 세상’이 된 듯하다.
종부세가 무력화됐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확실히 ‘부자 정부’와 ‘부자 신문’의 승리다. 특히 종부세가 도입될 때부터 이른바 “세금폭탄”이라는 선동적 표현으로 종부세가 국민 전체에게 과도한 세부담을 씌우는 것인 양 혹세무민했던 조중동은 종부세 무력화의 ‘1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향후 종부세 무력화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미칠 파장을 꼼꼼하게 따져본다면 과연 종부세 무력화가 끝까지 ‘조중동의 승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종부세를 놓고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의 실체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헌재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종부세는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고, ‘2% 부자에게는 불리하되 98% 국민 대다수에게는 유리한 세금’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종부세 무력화에 앞장선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은 2% 부자만을 위한 세력임을 스스로 폭로한 것이다.
오늘 종부세 판결을 다룬 조중동의 사설은 “나는 부자 신문”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종부세가 “노무현 정부가 박아놓은 대표적 ‘부동산 대못’”, “국민 일부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 무슨 스트레스 풀 듯 처벌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세금”이라며 폐지를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제목부터 <종부세는 시급히 폐지돼야 한다>라고 뽑았다. 중앙일보는 민주당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며 “상위 2%를 핍박하면서 나머지 98%의 지지를 노리는 정치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 “눈앞의 반사이익이 아무리 탐난다 해도 정치권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다운 생활을 짓밟을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에게 종부세는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짓밟은 세금’인 것이다.
동아일보는 종부세 폐지를 대놓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헌재 판결로 “징벌적 세금의 뼈대가 무너졌다”, “노무현 정권의 입법이 마구잡이였음을 재확인해준다”며 역시 종부세를 ‘부자들에 대한 징벌’로 몰았다. ‘2% 부자를 위한 신문’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 준 셈이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은 이번 종부세 무력화 과정에서 2% ‘부동산 부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가 언제나 2%의 힘에 좌우되지는 않는다.
미국의 오바마는 ‘99% 감세, 1% 증세’의 슬로우건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부자들에게는 많은 세금을 매기고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세금을 내려주겠다는 오바마의 약속에 미국사회의 ‘마이너리티’들이 움직였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엄청난 변화를 낳는다.
종부세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국민들에게 ‘누가 나의 이익을 대변하는가’를 알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조중동은 긴장해야 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종부세 무력화가 불러올 결과에 대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조중동은 책임을 져야한다.
보도에 따르면 세대별 합산과세 위헌 판결로 정부가 돌려줘야할 종부세는 6천억원, 올해 줄어드는 종부세 세수는 5천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게다가 환급금에도 이자까지 붙여 돌려준다고 한다. 나라살림에서 1조가 넘는 돈이 빠져나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현재의 경기침체 상황을 고려해 ‘종부세 무력화로 인해 당장 부동산 투기가 불붙고, 집값이 앙등할 것’이라는 전망을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정부와 지자체의 살림살이 차원에서 벌어질 부작용은 뻔하다.
종부세 세수는 지자체들에게 교부되어 왔다. 특히 강남지역 등 수도권에 집중된 부동산 부자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이 각 지자체에 교부됨으로써 지역 분배의 효과를 거두었다. 그 세수가 급감하게 되면 재정이 열악한 지방의 지자체는 형편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보도에 따르면 내년 지방세수는 무려 3조 3천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중 종부세 무력화 등으로 인한 부동산 교부세 감소분이 1조 5천억,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 및 목적세 폐지로 인한 세수감소분이 1조 3천억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 예산에 반영된 보전액은 1조 1천억원으로 1/3에 불과하다. 이렇게 지방 지자체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졌을 때 복지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그 일차적 피해는 서민과 저소득층에 돌아갈 것이다.
만약 정부가 종부세의 부족한 세수를 다른 세금으로 채우려한다 해도 그 부담 역시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의 조세정책 기조는 법인세 인하, 상속세 인하를 비롯한 ‘부자 감세’가 아닌가? 이미 지난 9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09년 국세세입예산(안) 및 중기 국세 수입전망’을 보면 종부세가 줄어들 뿐 아니라 부자들이 내는 세금보다 서민들이 내는 세금이 더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이 부담하는 근로소득세·종합소득세 수입은 각각 28.4%, 29.5% 늘어나는 반면 상속·증여세는 7.7%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편 한나라당에서는 종부세를 재산세에 통합하는 방안이 나오고 있는데 이럴 경우에도 중산층과 서민들의 재산세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정부는 종부세 세수 부족분을 재산세로 전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긴 하다. 또 헌재 판결 후 한나라당 인사들은 종부세 세수 부족을 재산세로 전가시키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해 거둬들인 세금이 많이 남아 있고, 세수의 자연증가분을 고려하면 종부세 환급과 종부세 세수 감소가 나라 살림에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해 초과징수된 세금이 근본적인 세수 부족을 메워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서도 서민과 중산층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 방안’이 도대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게다가 건설경기 부양을 비롯한 경기부양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어디서 재정을 확보할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조중동이 좌불안석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 나라 살림살이 뿐이겠는가? 만의 하나 종부세 무력화조치에 금리인하 정책이 결합해 부동산 투기의 불씨를 되살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동산 거품 붕괴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명박 정권은 국민을 도탄에 빠트린 데 대한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헌재가 비록 세대별 합산과세에 위헌 판결을 내렸지만, 종부세의 정당성까지 부정하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종부세 무력화가 초래할 악영향과 자신들이 져야할 책임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과세기준을 낮추고 세율을 높이는 등 종부세의 취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부자감세’의 기조를 접고 서민들의 세부담을 줄이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확산되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경기침체 상황에서 수요를 창출하려면 ‘부자들의 세금’을 늘여 서민들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조중동 역시 ‘승리감’에 도취해 ‘종부세 폐지’ 운운하고, ‘부자 감세’를 부추긴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