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종부세 위헌 여부 결정을 앞두고 “헌재와 접촉했다”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언에 대한 ‘거짓 해명’까지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강 장관은 6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우리(기획재정부가)가 발표한 종부세 개정이유, 관련 통계를 달라고 그쪽(헌재)에서 요청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헌재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강 장관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헌법재판소는 기획재정부 측에 방문을 요청하거나 자료 제출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8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헌재 수석연구관에게 만나달라는 연락을 수차례 했으며, 연구관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만남을 거절했음에도 굳이 세제실장이 수석연구관을 찾아가 만난 것이라고 한다.
기획재정부는 종부세 결정을 앞두고 헌재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도 부득불 헌재를 방문해 비공식적 만남을 가진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종부세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기획재정부의 요구에 결국 비공식적인 만남을 가진 헌재도 책임을 면키 어렵게 됐고, 13일 내릴 종부세 판결의 공정성까지 의심받게 될 처지가 됐다.
조중동, ‘강만수 거짓말’ 언급 안해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8일 조중동은 강장관의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을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강만수 일주일만에 다시 ‘사면초가’>(조선 6면), <‘강만수 헌재 발언’ 국회 진상조사 합의>(중앙 10면), <헌재 “강장관 발언 유감”>(동아 10면) 기사에서 헌재의 보도자료 내용을 실으면서도, ‘헌재가 방문을 요청하거나 자료 제출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은 쏙 뺐다.
이에 대해 한겨레는 <전례없는 ‘대면 설명’ 배경 의문>(5면)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각자의 말과 해명이 엇갈리고 있다”며 강 장관의 발언과 헌재 측의 발언을 짧게 다루는데 그쳤다.
반면, 경향신문은 <강만수 ‘헌재 접촉’ 거짓해명 논란>(1면), <헌재 ‘어쩔 수 없이 만나줬더니…’>·<접촉도 시점도 형식도 관행도 ‘문제 심각’>(3면)에 걸쳐 강만수 장관의 거짓 해명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동아일보, 강만수 감싸고 야당 질타
한편, 강 장관에게 불리한 내용은 ‘걸러서’ 보도하는 조중동의 행태 중에서도 ‘튀는’ 보도가 있으니, 바로 8일 동아일보 사설이다.
8일 대부분의 주요 신문들은 강 장관의 발언 파문을 사설로 다뤘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이 강만수 장관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라’고 촉구했음은 물론 조선일보조차 노골적으로 강만수 장관을 두둔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대놓고 ‘강만수 편들기’에 나서며 오히려 야당들이 헌재를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야말로 강만수 장관을 위해 ‘몸을 던진’ 듯한 행태다.
사설 <헌재 ‘종부세 장외 싸움’에 흔들리지 않아야>에서 동아일보는 “그의 ‘접촉’ 발언은 헌재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 공정성 시비를 낳을 수 있다”며 ‘부적절’했다면서도 “강 장관은 애당초 직원들로부터 보고를 부정확하게 받았거나 부정확한 국회 답변으로 오해를 자초한 셈”이라고 파문을 ‘오해’로 몰았다.
그러면서 “위헌 소송 당사자 측이 헌재 재판관이 아닌 연구관을 만나 의견을 진술하는 것은 합법적인 절차에 속한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청와대 관계자도 헌재 연구관을 만났다”, “종부세 위헌 소송과 관련해서는 노 정부도 헌재에 4번이나 의견서를 냈다”, “2000년엔 당시의 재정경제부 과장이 아예 헌재에 파견돼 2년간 근무했다”, “국세청 과장은 지금도 헌재에 파견돼 있다”는 등의 주장을 펴며 본질을 흐렸다.
그러나 헌재는 일반재판과 마찬가지로 당사자가 의견을 개진할 경우 서류 제출이 원칙이며 직접 의견을 개진 할 경우에는 소송 상대가 모두 참여해 공개변론을 열어 의견을 듣는다. 특히 정부기관의 경우에는 이를 ‘의견서’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의견 진술’을 하는 것과 ‘의견서 제출’을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뿐만 아니라 연구원이라도 재판관들에게 ‘의견 개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비공식적으로 접촉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동아는 이를 ‘합법’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동아일보의 주장과 달리 8일 한겨레신문은 노무현 정부 시절 행정수도 위헌 심판, 대통령 탄핵 심판 등에서 일방 당사자인 정부 쪽 인사들이 헌재를 찾아가 ‘대면 설명’을 한 전례는 없다고 보도했다.
또 종부세 위헌 소송과 관련해서 노 정부가 헌재에 4차례 합법적인 의견서를 낸 것은 헌재 연구관을 비공식적으로 접촉해 빚어진 이번 파문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동아일보가 “2000년엔 당시의 재정경제부 과장이 아예 헌재에 파견돼 2년간 근무했다”, “국세청 과장은 지금도 헌재에 파견돼 있다”는 언급을 한 것에 대해서는 왜 이런 주장을 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동아일보는 사건의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가 연구관을 찾아가 압력을 넣으려고 했다는 의혹과 ‘파견 근무’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강 장관 발언에 대한 야당의 과잉 대응은 문제가 있다”며 민주당이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국기문란, 헌정유린 사태’로 몰아갔”고 “어제 헌재를 방문해 ‘종부세 폐지 반대 100만 명 국민서명’과 ‘종부세를 지켜 달라’는 탄원서까지 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헌재 앞에서 규탄대회도 열었다”고 오히려 야당을 나무랐다.
또 “헌재는 정부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과 압력단체들로부터도 독립돼야 한다”며 “정부가 헌재와 접촉한 것을 헌정유린이라고 규탄하면서 야당은 헌재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권이 사법부의 최후 보루인 헌재의 재판에까지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을 묵과하라는 것인가? 동아일보에게 헌정 질서에 대한 기초 개념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는 강만수 장관의 헌정 유린 행태와 이를 보도하는 조중동의 보도 행태를 접하며 이제 분노 보다 서글픔이 앞선다. 헌정질서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사람이 기획재정부 장관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 이런 장관에게 불리한 내용은 보도하지 않는 언론이 우리 사회의 ‘메이저신문’을 자처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앞뒤 분별 못하고 노골적인 ‘강만수 구하기’에 나선 동아일보의 행태는 이렇게 뻔뻔하고 눈치 없는 신문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잇따른 실정과 실언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강만수 장관, 그를 중용하는 이명박 정부, 그리고 ‘집권세력의 도우미’ 역할에 골몰하는 조중동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인지 국민의 시름이 깊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