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주가는 1년 전의 절반 수준인 1천 포인트대로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은 1400원 선을 돌파했다.
주요 신문들은 오늘(24일) 보도에서 패닉 상태에 빠진 금융시장의 급박한 모습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조선일보도 1면, 2면, 3면, 4면, 5면과 사설, 별지 섹션인 <조선경제>에서 경제 위기 관련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경제위기의 심각성 자체는 부정하지 못하면서도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다거나, 경제의 기초체력(fundamental)은 튼튼한데도 심리적 공황 때문에 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는 식의 분석을 내놨다. 특히 이날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한국 경제가 ‘이유 없는 열병’을 앓고 있다는 주장을 펴, 이명박 정권에 대한 ‘묻지마 지지’를 고집하던 조선일보가 패닉 상태에 빠졌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주가 폭락에도 “선방했다” 주장
사설 <‘이유 없는 열병’ 앓는 한국 경제를 구하라>는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잘못된 외신 보도가 시장의 불신을 부추겼다는 얘기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정부가 최근 금융시장 안정대책과 건설업 지원 방안을 쏟아내는데도 시장에선 먹히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은 (브라질, 태국, 말레이시아 등 보다) 더 높은데 위험이 더 크다는 식의 비(非) 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식시장의 ‘셀 코리아(Sell Korea)’ 현상에 대해서는 “수치만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탈주’를 감행하고 있는 인상”이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국내 주가는 38% 떨어진 반면 일본 주가는 43% 떨어졌고, 타이완, 인도, 태국 주가 하락률도 40%를 넘었다. 외국인 주식 매도 부담이 우리보다 훨씬 적었는데도 주가는 더 많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 주식 시장이 오히려 선방한 셈이다”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또 원-달러 환율의 폭등 현상은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많이 팔았다는 것만으론 원화 환율이 이렇게까지 기를 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며 원인이 뚜렷하지 않다는 논조를 폈다. 그러면서 예대율 증가와 외화 차입 비중 증대에 따른 국내 은행들의 부실화 우려가 있지만 이는 “외국 언론들이 돌아가면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며 “여기에는 과장되거나 잘못된 부분이 적지 않다”고 거듭 외신들을 탓했다. 나아가 “정부가 내놓은 은행의 해외 차입에 대한 지급보증 대책으로 불안요인은 대부분 해소됐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조선일보는 단기외채 상환 부담에 따른 외환위기 가능성도 일축해버렸다. 사설은 “일부에선 단기외채 규모가 1750억 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국내은행들이 내년 6월 말까지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는 800억 달러 정도다. 24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으로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조선일보는 우리의 주식시장은 “선방”했고, 은행들도 부실하지 않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하다는 주장을 늘어놓더니 “결국 한국 경제와 국내 금융시장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열병의 원인이 심리적이라는 말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 하나마나한 주문을 내놓았다. “이럴수록 정부는 정책 대응의 시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경제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면 그걸 바로 세우는 데 망설여서는 안 된다. 국제 금융시장과 외국 언론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시장의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한 국제 공조 문제도 말만 겉돌게 만들 게 아니라 실제 가동되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설만이 아니다. 일반 기사들에서도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권을 위한 ‘전천후 요격기’처럼 나섰다.
1면 기사 <증시패닉 “바닥이다” “더 빠진다”>는 “불과 1년 사이 주가가 ‘반토막’ 나면서 증시에서는 ‘바닥론’도 시작됐다”며 증시가 반등할 것이라는 주장을 소개하고, “지금이 오히려 국내 증시 체질 개선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며 ‘주식시장 체질 개선론’까지 들고 나왔다.
이어 3면 기사 <[외국인 주식매도 공세, 왜] 돈 급해진 헤지펀드, 손실 무릅쓰며 자금회수>에서는 외국인의 ‘셀 코리아’ 움직임을 과도한 불안감과 헤지펀드의 ‘음모’ 탓으로 돌리는 한편, 정부의 ‘홍보부족’을 비판했다.
5면 기사 <주가 1000 위협받던 날… 정쟁만 한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왜 이명박 정권을 도와주지 않느냐는 일종의 ‘투정 부리기’처럼 보인다. 조선일보는 “국정감사장은 곳곳에서 정쟁으로 하루가 갔다”, “국회 차원에서 현재의 경제위기 원인을 분석하고 범정치권 차원의 공동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대책 기구나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대응하자는 논의는 찾아보기 힘든 정치권이다”, “여야 정당의 지도부도 경제위기에 오불관언(吾不關焉?나는 상관없다)이긴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내부에선 ‘연말에 여당에선 누가 누가 입각하느냐’는 한가한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당 관계자들은 전했다” 등등 여야 정치권 비난에 열을 올렸다.
이러한 보도 행태를 종합해 보면 조선일보의 주장은 △현재 한국의 위기 상황은 해외 언론의 과장 보도와 신용평가사들의 비관적 전망, 헤지펀드의 ‘음모’가 복합되어 발생한 ‘심리적 공황’이 주원인이고 △주가 폭락은 조만간 ‘바닥’을 칠 수도 있고 이 기회에 증시 ‘체질개선’을 할 수도 있으니 △정부는 리더십 세우기, 홍보강화, 국제공조 등을 통해 위기에 대처하고 여야 정치권은 정쟁을 그치고 협력하라는 말이다. 이명박 정권이 ‘원인 모를’ 경제위기를 맞아 할 만큼 하고 있는데도 ‘이유 없는’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신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여기에 정쟁이나 벌이는 여야 정치권은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권 방어하려 자멸의 길 걸어
최근 조선일보가 판단력을 상실하고 때로 정신분열적 보도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쯤 되면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금융위기와 그로인한 실물경제의 위기가 전 세계적 현상이긴 하지만 한국 금융시장이 유독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명백히 이명박 정권의 경제 실정이다. 강만수 경제팀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고환율정책을 쓰다가 투기자본에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됐다. 주식과 환율을 방어하겠다며 연기금과 외환보유고를 쏟아 붓지만 ‘언발의 오줌누기’일 뿐이다. 오히려 투기자본들에게 주식 폭락과 환율 폭등에 한국 정부가 ‘제 살을 뜯어먹는 시장 방어’에 나설 것이라는 인식만 심어주었고, 실제로 한국을 탈출하는 투기자본들에게 ‘노잣돈’을 주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이명박 대통령, 강만수 장관을 비롯한 고위 경제관료들은 잇따른 말바꾸기로 시장의 불신을 더욱 키웠다. ‘촛불정국’에서 갑작스럽게 경제위기를 예고하며 국민을 겁박하다가 막상 경제위기가 엄습하자 ‘IMF 때와는 다르다’며 외신 보도에 반발하고, 그러다 다시 ‘IMF 보다 어렵다’고 말하는 이 정권의 행태에 도대체 누가 신뢰를 보낼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작금의 위기 상황에서도 이명박 정권이 내놓고 있는 경제 정책들이 위기에 대처하기는커녕 국내외 자본들에게 ‘한국 시장에서 탈출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정부의 대책으로 ‘불안요인이 해소됐다’고 말하지만 시중 은행들이 가진 돈보다 빌려준 돈이 더 많다는 것은 상식이다. 23일 뷰스앤뉴스 박태견 대표의 칼럼 <“아마추어들이 나라를 결딴내고 있다” 강만수의 유일한 일관성은 뒷북치기>에 따르면 모 시중은행은 예금이 110조원인데 대출은 무려 140조원이나 해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으니 은행들의 자금 사정이 좋을 리가 없다. 양도성예금증서(CD), 은행채, 정기예금 금리가 줄줄이 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시중 은행이 일반 예금자들에게까지 높은 금리의 은행채 매입을 권유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유동성 부족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 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인위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10?21 대책’을 내놓으며 은행들에게 부동산 담보대출 확대를 닦달하고 나섰다. 은행 예대율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이 무분별한 부동산 담보대출 확대였음에도 이를 규제하기는커녕 수도권 투기제한지역 해제를 통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높이면서까지 은행에 건설사와 가계에 대한 추가 대출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이 달러는 물론 원화 유동성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출을 부추기고 나섰으니 시장의 불신을 사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신기한 일이다.
22일 경제개혁연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펴낸 ‘1995~2006년간 OECD 회원국의 국민계정’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 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건설업이 생산한 부가가치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 한국은 8.8%로 OECD 회원국 평균 5.48%의 1.6배로 “건설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또 은행의 기업여신 중에서 건설업과 부동산 및 임대업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19.23%로 미국의 9.67% 보다 두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개혁연대는 우리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규모가 공식적으로 85조2천억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이런 PF 추정치는 금융업계에서도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이다.
이런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시중 은행들의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시중 은행들의 대출을 다그치기 위해 정부는 한국은행에 대해 금리 인하와 은행채권 직접 매입까지 압박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압박에 직면한 한국은행이 돈을 더 찍어내고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그렇지 않아도 한국 시장을 불신하는 해외투자자들이 한국을 빠져나가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통화량 증가?금리인하 등 금융상품의 수익성 악화를 자초할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누가 ‘셀 코리아’를 안 할 수 있겠는가.
누리꾼보다 못한 현실분석력, ‘신문’의 가치 없어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오직 수구 기득권 세력의 권력 유지와 안위에만 혈안이 되어 ‘한국 경제가 이유 없는 열병을 앓고 있다’는 따위의 주장이나 폈다.
오늘 조선일보 보도는 자신들이 조만간 한국 사회에서 퇴장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 경제의 위기를 진단하는 수많은 분석 글들이 인터넷 공간에 넘쳐나고 있다. 비단 경제전문가들의 글이 아니어도 정부 정책이 미칠 파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누리꾼들의 글이 현실에서 검증되면서 신뢰를 얻고 있다. 또 생활 현장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은 어려운 경제 상황을 피부로 느낀다. 주식폭락으로 펀드가 반토막 나버린 서민들에게 “우리 주식시장이 선방했다”, “위기의 이유가 없다”며 정권을 두둔하는 조선일보의 주장이 통하겠는가?
누리꾼들의 현실 분석력을 쫓아가지 못하게 된 신문은 더 이상 ‘신문’으로서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조선일보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권력을 위해 앞장서다 그들과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