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를 통해 주요 정책을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한다’며 주례 ‘라디오 연설’을 하겠다고 한다. 라디오 연설의 명칭은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가 유력하고 이르면 13일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의 이런 구상은 미국의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 시기인 1933년 국민들에게 뉴딜정책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실시한 라디오 연설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난롯가에서 주고받는 얘기처럼 친근해 ‘노변정담’이라고 불렸고, 국정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데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정치학계 등에서는 ‘노변정담’이 일방적인 정책홍보와 라디오를 통한 여론조작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라디오 연설을 추진했으나 ‘정권의 일방적 주장만 펼치려 한다’는 보수진영의 반발에 부딪쳐 실행하지 못한바 있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 연설의 방송 여부를 ‘방송사 자율에 맡기겠다’면서도 ‘출근 시간대인 오전 7시 반∼8시에 10분가량 방송될 예정’이라며 방송 시간대까지 언급했다. 방송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은 방송사들에게 방송 시간부터 먼저 제시한 셈이다. 공영방송 사장을 쫓아내기 위해 감사원과 검찰까지 동원하고, 이에 저항한 방송사 직원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사들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문제를 얼마나 자유롭게 판단할 것인지 의문이다.
사실 우리는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청와대가 기대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에 나서겠다면서도 ‘유모차 부대’ 엄마들까지 수사하는 등 정부 비판 목소리를 탄압해 왔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라디오 연설을 시작하겠다니 많은 국민들이 그 진정성을 의심할 것이다. 또 인터넷을 통해 쌍방향적 소통에 익숙해진 국민들에게 일방적인 라디오 연설이 얼마나 호소력을 가질 것인지도 의문이다.
심지어 ‘친이명박 신문’인 동아일보조차 10일 사설에서 “막연한 말로 국민을 안심시키고 시장을 안정시키려 해서는 별 효험이 없을 것”, “말이 많다보면 실언도 늘어나고, 정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증폭될 소지가 커진다”며 대통령 라디오 연설의 효과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여러 측면을 따져 보고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재고하기 바란다.
참여정부 시절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말만 많고 실천은 없다’며 참여정부를 끊임없이 비판해 왔다. 이명박 정부는 국정홍보처를 폐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6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문화부가 내년 홍보지원국 예산을 올해보다 72억원을 늘리고 국정홍보 지원 업무를 위해 64명의 직원 증원을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에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까지 추진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해야할 일은 국정 ‘홍보’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국정운영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적 위기로 확대되고 우리 경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 정부가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마이크를 잡는다고 해서 잃어버린 신뢰가 회복될리 없으며 오히려 역효과를 빚을지도 모른다. 청와대가 라디오 연설을 준비하는 그 시간과 노력을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써주길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