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7월 교육감 선거를 치르며 사설학원 관계자들로부터 거액의 선거자금을 빌린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공 교육감은 7억원을 사설학원 관계자들로부터 빌리고 사학재단 이사에게도 3억원을 빌렸다. 또 은행에서 10억원을 빌리면서 모 사설학원 이사장이 8억원의 대출보증을 서주기도 했다. 공 교육감이 학원과 사학재단 관계자로부터 빌린 돈이 선거비용의 80%에 달한다고 하니 교육감선거를 ‘학원 돈’으로 치렀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공 교육감은 현직 교감·교장 수십명에게 격려금 명목으로 4천만원에 가까운 돈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선거 격려금을 낸 교장과 교감 중 일부 인사가 지난달 ‘초·중등 교육전문직 정기인사’에서 승진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교육관련 단체들은 ‘공교육을 책임진 교육 수장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의심받을 만한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렀다’며 검찰에 직무연관성 등을 따져 철저하게 수사할 것을 촉구했고, 야당들도 검찰에 수사의뢰를 한 상태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공 교육감의 선거비용 문제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공 교육감의 선거자금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주경복 후보의 선거비용 논란을 끌어들여 공 교육감의 문제를 물타기했다. 나아가 ‘교육감 직선제가 맞는 제도인지 회의가 든다’며 공 교육감의 선거자금 문제가 마치 교육감 직선제라는 제도 때문에 벌어진 것처럼 호도하기도 했다.
중앙·동아, ‘여야공방’으로 다루고, ‘물타기’하고
중앙일보는 6일 12면 2단 기사 <공정택 교육감, 학원서 7억 빌려 선거>에서 ‘공 교육감이 교육감 선거에서 사설학원 관계자들로부터 7억여원의 선거자금을 빌린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한 뒤 “공 교육감이 이들에게서 선거자금을 빌린 것은 개인 간 채권·채무이므로 현행법 위반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국회 교과위의 서울시 교육청 국정감사를 다룬 8일 8면 기사 <“학원 돈 빌려 선거…자진 사퇴해야”/“전교조도 주경복 후보에 자금 지원”>에서는 ‘여야가 공 교육감의 선거 비용 문제로 공방을 벌였다’, ‘공정택-주경복 후보의 대리전 양상을 보였다’며 여야간 공방으로 다뤘다.
7일 사설 <학원 돈 빌려 당선된 교육감, 공교육 하겠나>는 공 교육감이 학원 운영자들로부터 선거자금을 빌린 사실이 ‘학원을 관리·감독해야 할 교육감으로서 온당치 못한 처신’이라며 “사교육을 부추기는 정책을 펼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설은 ‘전교조의 지원을 받은 주경복 후보가 당선됐더라면 전교조에 휘둘렸을 것’이라는 양비론을 펼쳤다. 또 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일부 교육감들의 사례를 언급한 뒤 “교육감 직선제가 과연 맞는 제도인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며 교육감 직선제 자체를 문제 삼았다.
동아일보의 보도태도도 중앙일보와 다르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8일 8면 기사 <‘공-주 선거비 차입’ 설전>에서 서울시 교육청 국정감사를 보도하며 ‘야당 의원들은 공정택 교육감이 학원 관계자들에게서 선거자금을 빌린 것을, 여당 의원들은 주경복 후보가 전교조 간부들에게서 선거자금을 빌린 것을 집중 공격했다’고 전했다.
7일 사설 <교육감 ‘단독 직선제’ 이대로 놔둘 건가>도 중앙일보의 사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설은 공 교육감과 주경복 후보의 사례를 언급하며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혼탁상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며 “양 진영이 교육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거액의 선거비용을 동원하며 ‘다걸기’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교조가 주 씨에게 선거 자금을 지원한 행위는 법률 위반의 소지가 있고, 공 교육감이 학원 관계자의 돈을 빌린 것은 윤리 차원의 문제”라며 주 후보의 잘못이 더 큰 것처럼 주장하기도 했다.
사설은 또 ‘교육감 직선제에 소요되는 비용과 이후 치러질 교육감 선거의 타락상 우려를 이유로 들며 ‘지방선거 때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함께 러닝메이트로 나서는 방식을 검토해 보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교육 노선을 공유한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함께 출마해 유권자 선택을 받자’는 것이다.
한겨레·경향, 공 교육감 강도 높게 비판
반면 경향신문은 기사와 사설을 통해 ‘공 교육감이 선거비용을 사교육 관계자들에게 빌린 것은 법 이전에 도덕성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7일자 사설 <공정택 교육감의 부적절한 처신>은 공 교육감의 선거자금 채무 관계가 ‘사인(私人)간의 돈 거래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많다’며 그 근거를 제시했다.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서울 시내에서 대형 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그 중 한 명이 공 교육감 선거사무소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점을 볼 때 “단순한 정치후원자가 아니라 선거의 공신”이라는 것이다. 또 공 교육감이 “특목고 확대, 일제고사 부활, 국제중 설립, 자사고 확대, 영어몰입교육 등 내놓는 정책마다 학원의 배를 불려주는 것”이었다며 “정책의 순수성마저 의심받는 형국이 됐다”고 지적했다.
8일자 14면 기사 <공정택 18억 학원·사학서 조달>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의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 “학원 관계자의 보증으로 8억원을 대출받아 선거자금을 마련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며 “학원 관계자로부터 나온 선거자금은 18억여원으로 선거비용의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민주당·자유선진당·민주노동당 등 야3당이 공 교육감을 수뢰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같은 면 기사 <“2억만 받아…스승에 돈 재촉할 수 없잖나”>는 공 교육감에게 5억 984만원을 빌려준 학원장 최모씨가 ‘현재 2억원을 돌려받은 상태며 나머지 3억원은 왜 빨리 돌려주지 않느냐고 (제자 입장에서) 재촉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도 ‘교육자로서의 본분을 버린 공 교육감은 자격이 없다’며 강도높게 비판하고 검찰에 선거비용 차입금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7일 사설 <학원 돈으로 선거 치른 공정택, 교육감 자격 없다>는 “사교육을 잡아야 할 교육감이 사설 학원의 돈으로 선거를 치렀으니, 공교육 정상화는 기대할 수 없다”며 공 교육감이 추진해 온 정책들이 “사설 학원의 이해를 정확히 대변하는 것들이었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또 ‘돈의 성격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학원 관계자들로부터 빌린 돈이 “여러 학원이 업계의 이익을 위해 각출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럴 경우 차입금보다 불법 선거운동 자금에 가까워진다”는 주장이다. 또 현직 교장들이 건낸 ‘격려금’도 ‘교육감의 관리 감독을 받는 이들로부터 받은 금품인만큼 돈의 성격이 뇌물에 가깝다’며 함께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식을 벗어난 조선일보의 침묵
공 교육감은 그동안 사교육을 조장하는 정책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마당에 학원 관계자들의 돈으로 선거를 치렀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또 현직 교장들에게까지 ‘격려금’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았다고 하니, 빌린 돈의 성격이 무엇인지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도덕적 문제를 일으켜 신뢰에 금이 간 공 교육감이 공교육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공 교육감은 공교육의 권위를 훼손하고, 교육 주체들의 신뢰를 떨어트린 데 대해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검찰도 공 교육감의 선거자금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해 빌린 돈의 성격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사적인 채무관계, 대가성 없는 ‘격려금’이라는 공 교육감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믿어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편 상식이 있는 언론이라면 공 교육감의 책임을 묻고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이 정상이다. 조선일보가 공 교육감의 선거자금 문제를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상식’ 밖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공 교육감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공 교육감의 선거자금 문제가 교육감 직선제 탓인 양 호도한 중앙·동아일보도 문제다. 주민직선에 의한 교육감제도는 오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도입되었다. 해당 지역 교육감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도록 해 주민 통제에 의한 교육행정의 민주성을 보장하는 한편, 중앙정부에 의한 획일적인 통제보다는 지역의 특수성과 실정에 부합되는 교육을 펼칠 수 있게 하자는 취지가 있다. 아직 홍보조차 잘 되지 않아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진 않지만, “직선제=돈선거”라는 섣부른 도식은 공 교육감 문제를 ‘물타기’할 뿐이다.
교육 문제 만큼은 교육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모든 사안을 ‘정파’의 틀 안에서 사고하는 조중동의 행태가 우리 교육을 망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