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공안기관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수사 관련 주요 신문보도에 대한 논평(2008.10.2)
등록 2013.09.2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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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에 빠진 ‘실용정부’, ‘비판’이 없는 ‘비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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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국가정보원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실천연대 전·현직 활동가들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연행했다. 이어 9월 30일 서울중앙지법은 연행자 중 4명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국정원 등은 실천연대가 ‘북한 찬양’, ‘이적단체 구성’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천연대는 통일부에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고 8년 동안 공개 활동을 해온 단체다. 공안기관이 이런 단체를 갑작스럽게 ‘이적단체’ 운운하며 탄압하고 나선 데 대해 ‘공안정국을 조성하려고 국가보안법을 무리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최근 공안기관들의 움직임을 보면, 평범한 ‘유모차 부대’ 엄마에서부터 시민단체, 언론계, 학계에 이르기까지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은 어떤 식으로든 억압하고 위축시키겠다는 의도가 역력하다. ‘반대세력 탄압을 통한 공안 분위기 조성’은 경제난 등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부가 가장 흔하게 쓰는 수법이다.
따라서 지금 공안기관들의 주장과 수사 내용에 대해 언론들은 신중하고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가보안법 적용 사건의 경우는 국가보안법 자체가 기본권을 침해하는 시대착오적 법일 뿐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가능성,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높고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더더욱 신중한 보도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중동은 공안기관의 주장을 받아쓰기에 바빴으며, 조선일보는 이번 기회에 자신들이 줄기차게 흔들고 반대했던 ‘햇볕정책’까지 공격해보겠다는 듯 ‘친북몰이’ 보도에 여념이 없다.

조선일보, 이 기회에 ‘햇볕정책’까지 공격?
조선일보는 실천연대가 ‘북의 지령을 받아 활동했다’는 공안기관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는 한편 6·15선언과 햇볕정책이 ‘친북단체’들의 보호막이 되었다는 주장을 폈다.
9월 29일 10면 기사 <공안당국, 좌파와 전면전 나서나>에서 조선일보는 실천연대를 “6·15선언과 햇볕정책을 보호막으로 해서 국가보안법상 합법과 불법을 오가며 활동해온 대표적인 친북단체”로 규정한 뒤 “과거 정권의 ‘후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실천연대가 2006~2007년 행자부로부터 ‘한반도 평화구축’ 사업 명목으로 비영리단체 보조금을 지원받았다는 것이다. 또 “이번 수사로 인해 이른바 ‘6·15체제’를 지지하는 국내 좌파 세력과 과거 정권 지지 세력과의 충돌은 물론, 남북관계의 경색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9월 30일 10면 기사 <“실천연대 간부, 北 지령 문건 받아”>와 10월 1일 16면 기사 <‘실천연대’가 받은 北 지령에는 “김영삼·황장엽 응징하라”도 담겨>는 ‘실천연대의 한 간부가 지난 2004년 북한의 통일전선부 관계자를 만나 북측의 지령을 받은 혐의를 포착했다’, ‘김 전 대통령과 황씨에 대한 살해협박이 현실화됐고 북측의 지령인 ‘미군철수공대위’ 결성을 제안했다’는 공안기관의 주장을 그대로 전했다. 또 ‘실천연대가 간첩 수준의 보안을 유지했다’며 실천연대 활동가들이 “대외적으로 가명을 사용했으며, 위조 학생증 등은 필수였다”고 보도했다. 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몰고 있는 공안기관의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간첩단 수준의 조직’으로 몰아간 것이다.

동아일보, “공안기능 정상화됐다” 반색
동아일보도 “실천연대가 친북 이적단체라는 것이 이번 수사의 골격”이라는 공안기관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는 한편 ‘여간첩’ 검거, 사회주의노동자연합과 실천연대에 대한 수사 등을 “공안기능의 정상화”로 규정했다. 심지어 실천연대 사람들이 ‘자녀에도 사상교육을 시켰다’며 악의적인 색깔공세를 펼쳤다.
9월 29일 사설 <‘실천연대’ 공안탄압 논란, 수사 결과로 밝혀야>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의 대북 경계심이 무너진 틈을 타 친북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며 실천연대를 그중 하나의 친북단체라고 지목했다. 사설은 또 ‘과거 두 정권에서 국정원과 경찰의 보안수사 인력과 기능이 크게 줄어든 결과 국보법 위반자의 수가 2003년 152명에서 작년 15명으로 줄었다”며 “북은 대남적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데 우리만 스스로 손발을 묶은 셈”이라고 주장했다.
10월 2일 14면 <실천연대 소속원, 자녀에도 사상교육>은 동아일보의 관련 기사 중 가장 악의적인 기사라고 할 수 있다. 기사는 공안당국이 실천연대 인터넷 홈페이지 ‘집행위방’에서 “어제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아이를 우리 (혁명) 운동의 ‘후기대’로 기르겠습니다”라는 글을 발견했다며 ‘사적인 글에도 사상적 색깔을 씌우는 경향이 있었다’, ‘자녀에게까지 주체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해온 흔적’이라는 공안당국 관계자의 인터뷰를 전했다. 또 수사관들이 실천연대 간부 A씨를 체포할 당시 A씨의 아들이 울자 A씨가 “여기 온 사람들은 미국 놈들과 이명박의 졸개들로 아주 나쁜 놈들”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어린이 앞에서 부모를 체포한 수사관들의 태도는 지적하지 않고 수사관들의 주장을 ‘실천연대 활동가들이 자녀에게까지 사상교육을 시켰다’는 근거로 삼은 것이다.

중앙일보는 조선·동아일보와 달리 공안기관의 주장을 시시콜콜하게 받아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실천연대 간부들이 북한의 직접 지령을 받고 이적 활동을 해 왔다”는 공안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전한 것은 조선·동아일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겨레·경향, 국정원까지 나선 공안정국 우려
반면 한겨레는 공안당국의 주장에 대한 실천연대 측의 반론을 충실히 전하고 사설을 통해서는 “8년여 동안 공개적으로 활동해 온 단체를 느닷없이 불온시하고 압수수색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폭압이며 표적수사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다”고 지적했다.
29일 8면 기사 <국정원 또 ‘보안법 망령’…실천연대 6명 체포>는 “공안정국 조성을 위해 검·경에 이어 마침내 ‘원조 선수’인 국정원까지 나서고 있다”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과 “공안당국이 우리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촛불을 배후조종했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실천연대의 주장을 전했다.
또 29일 사설 <대공수사 악령이 부활하나>는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남북 화해 협력 시대에 맞지 않는 냉전시대의 유물로 폐기처분해야 한다”며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으로 통일운동 단체를 옭아매려는 기도는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공안기관의 실천연대 수사와 관련해 ‘국정원 주도의 공안정국이 재현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공안당국이 전면에 나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30일 10면 기사 <보안법 위반 ‘실천연대’ 집행위원장 등 4명 구속>은 “법원이 공안당국의 무리한 청구에도 일부 영장을 발부해줌에 따라 시민·사회 단체들에 대한 국가정보원·검찰·경찰의 공안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또 국정원이 “국가보안법의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힌 찬양·고무죄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에서 폭넓게 인정돼왔던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일 사설 <공안 당국의 무리수를 경계한다>는 “(실천연대가) 지난 8년간 6·15공동선언 정신을 표방하며 공개적으로 활동해 왔고 통일부 승인을 얻어 북한과 교류하기도 했다”며 “그런 단체가 어느날 갑자기 국가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하면 이를 방치해 온 공안당국이 오히려 직무유기를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공안당국이 전면에 나서면 자유 민주의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아갈 우려가 크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공권력으로 억압하는 나라라는 국제적인 눈총을 받게 된다”며 “무리한 수사는 훗날 화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일 1면 기사 <“친북좌익 척결없이 선진국 없다”/국정원 2차장 ‘냉전적’ 발언 파문>은 실천연대 수사와 관련한 민주노동당의 국정원 항의방문 과정에서 김희선 국정원 2차장이 “친북좌익세력 척결없이 선진국을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김차장의 발언이 “최근 들어 가속되고 있는 국정원 등 사정당국의 공안 수사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냉전적 ‘색깔론’에 기반해 이뤄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왜 이명박 정부에겐 ‘비판세력 포용하라’ 요구 안하나
이명박 정권은 ‘실용정부’를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 공안기관들의 행보를 보면 이명박 정권은 그 어떤 정권보다 ‘실용’이 아닌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다. 경제가 위태롭고 민생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공권력은 ‘이념몰이’와 ‘반대세력 탄압’에 골몰하고 있다.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반대세력까지 끌어안고 그 역량을 흡수하는 것이 진정한 ‘실용’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공안기관들은 어떻게든 국민의 눈과 귀를 엉뚱한 곳으로 돌려 정권의 실정을 가려보겠다는 생각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다.
국민들은 간첩사건 조차도 냉정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난 7월 터진 ‘탈북 여간첩 원정화’ 사건을 돌이켜보라. 원정화가 전향의사를 밝히기 까지 조중동이 그야말로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냈지만 국민들의 안보 위기감이 증폭되었다거나 간첩 검거로 인해 정권의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분석을 보지 못했다. 하물며 간첩사건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차분하게 반응하는 상황에서 ‘촛불시민’이나 시민단체에 대한 무리한 수사가 설득력을 얻을 리 만무하다. 일반 국민들에게 거의 영향력이 없는 단체까지 보안법으로 얽어 넣으면서 대단한 조직을 검거한 양 구는 모습은 오히려 한 편의 ‘코메디’였다.
우리는 국민이 성숙한만큼 공안기관들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지금 공권력을 정부 비판세력 탄압에 쓰고 있을 형편이 아니다.

자칭 ‘비판신문’ 조선·동아일보도 참 한심하다.
조선·동아일보가 주장하는 이른바 ‘좌파세력’을 아무리 ‘척결’해봐야 이명박 정부가 얻을 것은 없다. 정부 비판세력을 탄압한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하는 것이다. 비판세력에 대한 탄압은 반발만 부른다.
참여정부 시절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보수신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라”며 부자와 재벌 등 기득권 세력을 위한 정책을 요구했다. 이런 충고는 이명박 정권에게 더 필요해 보인다. 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부자들만의 대통령이 되지 말라’, ‘반대 세력도 포용하라’고 충고하지 못하는 것인가? 지금 이명박 정권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스러운 공안기관이 아니라 ‘입에 쓰지만 약이 되는’ 충고를 할 수 있는 ‘비판언론’이다. <끝>

 



2008년 10월 2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