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종부세 무력화 정책을 통해 ‘2% 부자정권’임을 거듭 확인시켜주고 있다.
23일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은 차라리 ‘종부세를 없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소수 부동산 부자들만을 위한 내용이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83.7%에 이르는 국민들이 이번 개편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냉담한 여론을 의식한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종부세 개편안의 재검토 요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강만수 장관 등의 입장은 요지부동으로 보인다.
한편 그동안 종부세를 ‘세금폭탄’, ‘징벌과세’로 왜곡하며 종부세 흔들기에 앞장섰던 조중동은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에 반색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동아일보의 ‘막무가내’ 종부세 무력화 주장
동아일보는 가장 유치하게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동아일보는 종부세 개편안의 재검토를 주장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거세게 질타하는가 하면 헌법재판소를 향해 ‘종부세 위헌 여부를 빨리 결론 내라’고 다그치기까지 했다.
24일 사설 <헌재, 종부세 위헌 여부 빨리 결론 내야>에서 동아일보는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대책이라고 내놓은 ‘2% 부자를 겨냥한 세금폭탄’은 3년만에 대폭 교정되는 운명을 맞았다”고 반색했다. 나아가 동아일보는 종부세의 ‘가구별 합산과세’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내려질 경우까지 전제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종부세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을 빨리 내려 과세 혼란을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5일에는 사설 <중구난방 한나라당, 정권교체 소임(所任) 잊었나>는 이번 개편안을 반대하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사설은 이들을 겨냥해 “좌파 정치세력이 자주 하는 ‘편 가르기’ 선동을 흉내 낸 의원도 있다”, “종부세의 불합리를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인기관리에 급급한 인상을 준다”는 등 비난을 퍼부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엇나가는 것이 신선한 정치인인 양 여기는 풍조마저 있다”며 대통령과 정부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의원들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국민이 왜 좌파정권을 10년만에 종식시키고 한나라당 정권을 만들어주었는지 인식부터 새롭게 하고, 당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마디로 여론 눈치 살피지 말고 ‘부자정당답게’ 종부세 무력화에 한뜻으로 나서라는 얘기다.
중앙일보, 정부 잘못은 ‘세련되게’ 종부세를 무력화하지 못한 것
중앙일보도 정부와 한나라당의 ‘엇박자’를 비판했지만 동아일보 보다는 교묘하게 논리를 폈다.
종부세는 참여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었고, 이를 뜯어고치는 것은 옳은 일인데도 이명박 정부가 좀 더 치밀하게 개편안에 마련하지 못해 여론과 여당 내의 반발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24일 사설 <종부세, 신중함과 지혜 필요하다>에서 중앙일보는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이 기본적으로 옳다”면서 다만 “정부가 좀 더 치밀하게 종부세 개편안에 접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나 고령의 은퇴자에 대한 종부세 감면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과세기준을 9억원으로 올릴 것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고 단정하면서 다만 “종부세 세율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내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개편안의 문제를 지적했다.
사설은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종부세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이미 그 제도에 맛을 들였기 때문”이라며 주장하기도 했는데, 종부세율의 대폭 인하 역시 객관적인 문제가 아니라 “느낌”으로 표현했다.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가 옳은 방향이지만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해 ‘너무 내린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되었다는 게 중앙일보의 시각이다.
25일 사설 <종부세,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한나라당>에서도 이런 시각을 전제로 정부를 비판했지만, 사설이 비난하고 있는 핵심 대상은 한나라당 내 종부세 반발 세력이었다.
사설은 “종부세법 개정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내놓은 대표적인 공약”인데도 한나라당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만든 세금을 뜯어고치겠다면서 또다시 포퓰리즘에 휘둘려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에 대해서는 “법안 개정작업과 당정협의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개정안을 확정했어야 했다”, “종부세를 최종적으로 재산세로 통합하는 것을 전제로 부담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만들었다면 이런 식의 혼란은 피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개편안을 내놓기 전에 당내 반발을 단속하는 한편, 재산세에 대한 보완책 등을 함께 내놓아 종부세 개편안에 대한 국민 반발을 무마시켰어야 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종부세가 국민을 막다른 선택으로 몰고간다”?
조선일보는 24일에만 사설을 실었는데, 종부세 개편안이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그러면서 종부세 폐지와 재산세로의 통합을 주장했다.
사설 <종합부동산세는 재산세에 통합시켜야>에서 조선일보는 종부세 개편안이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 위해 종부세 대상자들의 ‘어려운 처지’를 강조했다. “종부세 납부자의 35%가 연간 소득이 4000만원 미만”이며 “연금 소득자, 고령자”, “오래 전부터 살던 집값이 갑자기 뛰는 바람에 종부세를 내게 됐을 뿐 부유층이라고 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 종부세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세금 내기 위해 빚을 질 것인가 아니면 집을 팔고 옮겨갈 것인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서 “세금으로 국민을 이런 막다른 선택으로 몰고 가는 나라는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종부세는 소득에 따르는 세금이 아니라 부동산 ‘소유’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소득이 적어서 종부세를 내기 어렵다’는 논리는 소득이 없거나 적다는 이유로 자동차세를 못내겠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조선일보는 또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보유세 부담이 선진국에 비해 오히려 더 크다’는 주장도 폈다. ‘보유세 부담(0.5%)이 미국의 1.5%, 일본·캐나다의 1%보다 낮지만 소득은 적은데 비해 집값이 더 비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득에 비해 집값이 비싸다는 사실은 부동산투기로 인해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생겼다는 의미이며,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종부세의 취지가 옳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질적인 보유세 부담이 크니 보유세 부담을 낮추자’는 주장은 치솟은 주택가격을 그냥 두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한편 조선일보 역시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종부세를 재산세에 통합시키고 현재의 재산세 누진세율을 약간 조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종부세를 재산세로 통합할 경우 부동산 소유에 부과하는 세금은 국세에서 지방세로 전환된다. 이렇게 되면 서울 강남권과 지방 지자체들의 세수 불균형은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부동산을 전국에 걸쳐 과다하게 보유했을 때에도 합산 과세가 어렵게 된다. 여기에 단체장이 세율의 50%까지 가감해 결정할 수 있는 탄력세율까지 적용될 경우 부동산 시장의 안정이라는 종부세 도입 취지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동안 조중동은 ‘종부세 무력화’에 앞장서 왔다. 따라서 이들이 종부세 개편안에 반색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종부세 개편안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대통령의 뜻을 따르라’고 압박하고 헌재를 향해 ‘종부세 무력화에 힘을 실어주라’는 동아일보의 행태는 너무나 유치하다.
또 6억 이상 부동산 소유자를 ‘저소득층’ 취급하면서 왜곡된 논리로 종부세 무력화를 정당화하는 조선일보, 정부를 비판하는 척 하면서 종부세 개편안에 대한 여당 내 반발을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고 나아가 종부세를 완전히 없애자는 논리를 펴는 중앙일보는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조중동이 아무리 ‘부자신문’, ‘부자를 위한 신문’이라지만 나라 경제를 흔들수도 있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만큼은 ‘특정 계층’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고려할 수는 없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끝>